알송 달송

세계에서 가장 깊은 인공 구멍의 실체

황령산산지기 2022. 5. 29. 10:03
 
 

이 영상을 보라. 인간이 수직으로 파 내려간 최대 깊이의 구멍인 러시아 ‘콜라 슈퍼딥’(Kola Superdeep) 시추공의 모습인데 12.262㎞를 파 내려간 뒤 더 파 내려갈 수가 없어 1995년 작업을 완전히 중단했다.

시추공 위를 용접해 폐쇄해 놓은 모습이 좀 을씨년스럽다고 해야하나. 심지어 러시아 사람들은 이걸 두고 지옥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튜브 댓글로 “영화에서 보면 지하 몇십 미터까지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인류는 지하로 최대 몇 층까지 파 내려갈 수 있나요”라는 댓글이 있어 취재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직으로 가장 깊이 파 내려간 기록은 콜라 슈퍼딥(Kola Superdeep)의 12.262㎞, 안테나를 뺀 63빌딩(249m) 49개를 하나로 이어붙인 깊이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구멍

과학자들 사이에선 세계에서 가장 깊은 구멍으로 이 콜라 슈퍼딥이 인정받고 있다. 콜라 슈퍼딥에서 ‘콜라(Kola)’는 먹는 그 콜라 아니고 러시아와 노르웨이 국경 근처에 있는 러시아의 반도 이름이다. (러시아는 1970년부터 1989년까지 20년을 ‘우랄매쉬-4E(Uralmash-4E)’와 ‘우랄매쉬-15000(Uralmash-15000)’라는 시추 장비를 이용해 세 번에 걸쳐 최종 12.262㎞ 깊이까지 파 내려갔다.

이왕 깊이 팔 것, 왜 더 깊이 못 팠을까? 깊이 파면 팔수록 기대 이상으로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고 암석이 묽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2013년 러시안 과학 아카데미에서 콜라 슈퍼딥 시추 결과를 분석한 논문인데 12㎞ 구간에서 온도 기울기가 급격히 꺾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과학자들은 처음엔 12㎞ 구간에서 지각 온도가 100℃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파보니 웬걸, 실제 온도는 180℃를 넘어섰다. 그러니 땅이 암석이라기보단 녹은 플라스틱처럼 끈적끈적.

세간에는 비용 부족으로 콜라 슈퍼딥 프로젝트가 중단됐다고 알려졌지만 논문에 따르면 암석 성질의 급격한 변화로 시추 장비와 터빈이 파괴됐기 때문이라고 작업자는 인터뷰했다.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뜨거운 죽에 젓가락 돌린다고 구멍이 안 생기는 것처럼…

사실 콜라 슈퍼딥은 미국과 구소련 간 체제 경쟁의 산물 그러니까 ‘누가 더 깊이 땅을 파느냐’ 자존심이 걸렸던 문제였다. 근데 막상 땅을 파보니 뜻밖의 과학적 성과가 많았다고 한다. 과거 화강암층이 현무암층으로 변하는 ‘콘래드 불연속면’이 지하 7㎞쯤 존재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상식이 무너진 것. 7㎞정도가 아니라 12㎞를 파내려가도 현무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지하 6㎞ 부근에서 바다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플랑크톤을 발견했는데 이게 어떤 의미냐면 생명의 바다 기원설을 부정하는 결과일수도 있기에 충분히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번외로 콜라 슈퍼딥이 세계 최대 깊이 시추공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니 사할린 차이보 유전의 ‘O-14’ 시추공이 15㎞를 파 내려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유전의 경우 땅을 수직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파기에 엄연한 의미에서

최대 수직 깊이라고 할 수 없다. 뭐... 세계에서 가장 ‘길게’ 판 구멍이라면 인정.

독일의 데이터 기업인 슈타티스타에 따르면 실제 ‘O-14’ 시추공의 수직 깊이는 1.005㎞(3300ft)에 불과했다.

수직 깊이가 가장 깊다는 멕시코만의 Tiber 유전도 수직 깊이로 10.668㎞(35000ft) 정도이니

12.262㎞를 파 내려간 콜라 슈퍼딥보다 수직 깊이가 깊지는 않다.

결론을 내리자면 인류는 지하 12.262㎞까지 파 내려갔고 그 과정에서 플랑크톤을 만났으며,

더 깊은 곳에서 180℃로 무섭게 끓고 있는 화강암을 마주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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