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삶의 종말체험

황령산산지기 2020. 1. 26. 13:00

죽음, 또 하나의 시작

삶의 종말체험

죽음 직전에 보이는 환영 [ Deathbed Vision ]    

삶의 종말체험은 지난 3, 4회에서 다룬 근사체험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대단히 중요한 현상이다. 근사체험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으나 조금 다르기도 한데,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환영(vision)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종말체험에서는 대체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자를 마중 나오는데,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들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final gift)’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멀리 떨어진 가족이나 지인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삶의 종말체험 사례들

영국의 신경과 의사 피터 펜윅 박사가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있었던 ‘삶의 종말체험’ 사례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쓴 책 [죽음의 기술].


과학과 의학을 통합적 차원에서 탐구하는 의사와 과학자들의 집단인 ‘Scientific and Medical Network’의 회장을 역임한 피터 펜윅(Peter Fenwick, 1935~ ) 박사는 영국의 신경과 의사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데,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종말체험담을 수집하여 [죽음의 기술(Art of Dying)]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전공인 신경과(Neurology)는 뇌졸중, 뇌전증(간질), 파킨슨병이나 치매 등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전문 분야이다.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 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왕립과학원 물리학 교수였던 윌리엄 바레트(William F. Barrett, 1844~1925)의 부인이 1920년대에 경험한 것이다.


바레트의 부인은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한 산모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으나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간병인이 보니 그 산모는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띤 채 허공에 있는 무엇인가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물어보니, “사랑스러운 빛, 경이로운 존재들, 아니 아버지잖아? 오! 내가 온다고 너무 반가워하시네.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런데 아버지가 동생과 같이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이 산모의 동생은 3주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가족들은 환자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신의 임종이 다가오자, 오래 전에 타계한 아버지와 최근에 죽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동생의 마중을 받은 것이다.


부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윌리엄 바레트는 이러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임종 시에 나타나는 환영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다.


죽음학의 효시로 불리는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1926~ 2004) 박사의 책 [사후생]에도 비슷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로스 박사는 어린이 환자들의 임종을 많이 지켜봤는데, 한번은 일가족이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차를 운전하던 엄마는 현장에서 죽고 딸과 아들은 중상을 입어 병원에 실려왔다.


 남매는 같은 병원의 서로 떨어진 다른 병동에 입원한 상태였다. 여자아이가 임종이 다가오자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있어요. 엄마와 남동생이 벌써부터 저를 기다려요.”라는 말을 하고 눈을 감는다.


로스 박사는 이 여자아이의 엄마가 현장에서 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동생이 방금 죽었다는 것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사망 직후, 로스 박사는 다른 병동에 있던 아이의 남동생이 여자아이가 죽기 10분 전에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즉 여자아이는 죽기 직전, 현장에서 죽은 엄마와 10분 전에 죽은 남동생의 마중을 받았던 것이다.


몇 년간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임종하기 직전의 상황이 그의 전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는 아이들과 아내 로렌을 차례로 오랫동안 바라본 다음, 그들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고 “오 와우(Oh wow), 오 와우, 오 와우!”하는 감탄사를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가 무엇을 본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으나, 지금까지 연구된 삶의 종말체험 사례를 토대로 추측해보면,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나면서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의 마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엣지 오브 다크니스(Edge of darkness)>의 마지막 장면. 대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살해된 딸이, 범인을 수사하고 임종을 맞게 된 아버지를 마중 나오는 장면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세상을 떠나는 환자가 임종 시에 보는 환영(vision)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복용 중인 약물의 영향을 받아 헛것을 보는 것으로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이 현상을 오랫동안 연구한 펜윅 박사는 전혀 다른 연구 결과를 얘기하고 있다.


임종 시 환영은 전혀 혼돈스럽지 않으며, 대부분 의식이 활짝 깨어 있을 때 발생하고, 때로는 장기간 무의식 상태로 있던 환자가 죽기 전에 짧지만 맑은 의식을 회복할 때 보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김자성 선생이 번역한 [사후 세계의 비밀]에도 전형적인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임종을 앞둔 어떤 할머니가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있다가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의식을 회복한 뒤, 30년 전 죽은 남편이 아침에 와서 ‘오늘은 저승 갈 날이 아니고 사흘 뒤 떠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할머니를 돌보아 주던 간호사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고 있었는데, 간호사의 죽은 남편이 전해달라고 했다면서 부부만이 알았던 어떤 사실을 이야기해주더라고 했다. 실제로 이 할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져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호스피스 간호사로 활동한 최화숙 선생이 자신의 경험들을 기록한 책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에도 유사한 체험이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 임종 과정이 시작되면 “이미 돌아가신 동네 어른이 와 계신다”고 하거나 “오래 전에 돌아가신 친지가 와 있다”고 하는 등,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환자들에게는 보이는 어떤 대상이나 존재의 마중을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죽음이 임박한 임종 환자들은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이 세상과 곧 가게 될 저 세상-건강한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을 함께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임종자는 최화숙 선생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면서 누군가와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그럴 때는 방금 전 이야기가 끊어진 그 부분부터 정확하게 다시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삶의 종말체험을 하는 임종기 환자들은 펜윅 박사가 지적한 대로 명료한 의식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 가능성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열린 시각의 첫걸음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에서 극히 일부분이고, 무한히 많은 것들을 우리는 지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자외선과 적외선, X선도 실재()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동수 50에서 2만 헤르츠(Hertz) 범위 안의 소리만 들을 수 있고, 이 범위를 벗어나는 소리는 듣지 못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종말체험의 증상을 보일 때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할 경우, 의료진이나 가족들이 환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환자의 마지막 과정을 편안하게 돌볼 수 있으려면 삶의 종말체험 현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Gettyimages>



실제로 우리 뇌에는 일정 정보를 걸러주는 필터 기능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모든 걸 보고 듣다가는 정작 생존에 걸림돌이 되거나 위험한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구하거나 마실 물을 얻고, 사나운 맹수를 피하는 등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다루기 위해 필터 기능을 발달시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임종이 임박하면 이런 필터 기능이 약화되거나 차단되면서 보통 때에는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차원이나 삶의 종말체험 가능성에 대해 의료진이 전혀 알지 못할 경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이런 증상을 보이면 경험한 것을 더 이상 얘기하지 못하게 나무라서 위축시키거나, 정신 착란 증세로 여기고 진정제 주사를 놓기도 한다. 반면에 이 현상에 대해 미리 알고 있을 경우, 환자들의 마지막 과정을 편안하게 돌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얼마 전 40대 초반의 한 영문학도로부터 그러한 경험담을 들은 바 있다.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분을 만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는데, 다른 가족은 당황해했으나 자신은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을 읽어서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 어머니를 격려함으로써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죽음 직전의 방문

한편 임종을 앞두고 멀리 떨어진 가족 앞에 임종자가 잠시 모습을 나타내는 현상을 체험하는 사람 중에는 간호사나 의사 등 의료인도 많은데, [죽음의 기술]에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직업이 간호사인 한 여성이 자신의 집 침실에서 자다가 새벽 3시에 깨어보니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아 요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가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당시 81살이었는데, 40~50대의 비교적 젊은 시절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나는 이제 괜찮아. 많이 나아졌어.” 하고는 벽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아침 요양원으로부터 아버지가 새벽 6시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세상을 떠나기 세 시간 전에 딸을 방문하고 나서 저쪽 세상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 여성은 기묘한 체험이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방문을 받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죽음의 기술]에는 이런 사례도 등장한다. 어떤 남자가 18세 때 영국을 떠나 호주로 가는 상선에 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침상에서 책을 읽다가 누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어 봤더니 할아버지가 서 있더라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중환으로 병상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을 알고 출항했던 터라, 남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침상을 튀어올라 복도로 뛰어나갔다. 사시나무 떨듯 하며 한참 동안 밖에 있다가 돌아와보니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후 호주에 도착하여 영국 집에 전화를 했을 때, 남자는 그 사이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돌아가신 시각이 자신이 선실에서 할아버지를 목격했던 바로 그 시각이었다. 세상을 떠나는 할아버지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손자를 만나보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임종하는 친척이나 지인들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비슷한 사례들을 꽤 발견하게 된다. 반 년 전 직접 들은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필자가 잘 아는 신장내과 교수 한 분이 십여 년 전에 경험한 일인데,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가 필자에게 비로소 털어놓는 거라고 했다.


콩팥병을 앓는 환자는 몸에 쌓인 노폐물을 걸러내지 못하므로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한다. 미국에 단기 연수를 갔을 때인데, 새벽 2시경 문밖에 인기척이 있어 문을 열었더니 자신에게 복막투석과 심부전증으로 오랫동안 진료를 받아온 환자가 서 있었다.


 이 환자는 “이제 다 나아서 아프지 않다”고 얘기했고, 교수는 엉겁결에 밤이 깊었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냥 인사하러 왔어요, 선생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만 갈게요.”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한 달 후 단기 연수를 끝내고 귀국하여 이 환자의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그사이 환자는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고, 사망 시각은 미국의 숙소로 환자가 찾아왔던 바로 그때였다. 오랫동안 자신을 진료해주던 의사를 세상 떠나기 전에 만나보고 저 세상으로 간 것일까?


그런데 이런 사례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니다. 베트남전 때 전사한 군인이 사망한 바로 그 시각에 미국 고향 집의 가족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기록들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1월 필자는 지방에서 죽음학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를 들은 주민 30여 분 중 한 분이 안타깝게도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그분은 사고 당일 자정 무렵, 온몸에 붕대를 두른 아들을 비몽사몽간에 보고 놀라서 잠이 깼는데, 조금 있다가 경찰서로부터 아들의 사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사례도 지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지인의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퇴원하고 싶어하는 본인의 뜻에 따라 집으로 모셔와 지내시게 했다. 그런데 병세가 점점 깊어져 임종이 임박해오자 아버지는 허공을 쳐다보면서 ‘엄마, 아직 갈 때가 안 됐어요’라는 말을 했다.


평소에 아버지가 할머니에 대해 ‘엄마’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와 이야기하시는 거냐고 물어봐도 아버지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장지에 갔을 때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본 묘지 관리인은 “이분이 며칠 전에 와서 자신의 묘지를 둘러보고 만족한 표정을 짓고 갔는데, 그새 돌아가셨나요?”라고 의아해했다.


관리인이 아버지를 봤다고 한 시점은 아버지가 거동을 전혀 할 수 없었던 때였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이야기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숨긴 채 가족들끼리만 가끔씩 그 얘기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인간의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

일본 교토 대학의 칼 베커(Carl B. Becker, 1951~ ) 박사는 종교철학을 전공한 미국인 교수로서 1983년 체외이탈 연구로 미국의 애쉬비 상(Ashby Prize)을 수상한 바 있는데, 2013년 6월 춘천 한림대에서 개최한 생사학 인문한국 연구단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되어 연제를 발표하였다.


 학회가 끝난 후 칼 베커 교수와 그의 저서 [죽음의 체험 - 임사현상의 탐구]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미국의 대학에서는 삶의 종말체험이나 근사체험을 정신 질환이나 난센스라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중요한 영적 체험으로 가르치며 체험자들을 지지해준다고 했다.


2013년 4월, 필자는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에서 “영화를 통한 현대인의 죽음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면서 근사체험과 삶의 종말체험에 대해 언급하였다. 대전 지역에 카이스트 같은 연구 기관이 많은 탓인지, 청중의 70%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난 후 이어진 토의 시간에 이분들이 한 질문은 “이러한 체험이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가?”가 아니었다. 사후 세계의 작동 원리나 초의식 세계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고 싶어했고,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 같은 신비가에 대해 청중의 1/3이 이미 알고 있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인문학을 전공한 분들을 상대로 죽음학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들의 질문은 “근사체험과 삶의 종말체험이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가?”였다. 같은 강의를 듣고도 전공 분야에 따라 질문 내용이 전혀 달라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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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천국에 다녀온 소년(Heaven Is for Real)>은 죽음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예수회 신부이자 고생물학자, 지질학자였으며 종교사상가였던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 그는 우리가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기술한 삶의 종말체험들은 인종이나 지역에 관계없이 임종에 임박하여 관찰되는 현상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공통적인 일이므로,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러한 현상이 관찰됐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밝혔듯이 근사체험과 더불어 삶의 종말체험은 죽음이 꽉 막힌 돌담 벽처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여러 가지 연구 결과와 증거들을 제시해도 여전히 눈과 귀를 막을 사람들이 있겠지만, 인간은 그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닌, 보다 높고 큰 차원에 걸쳐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다.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전공한 과학자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영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을 하고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참고문헌
  • 피터 펜윅, 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죽음의 기술], 부글북스
  • 매기 캘러넌 지음, 이기동 옮김, [마지막 여행-감동으로 엮은 존엄사 실천 가이드], 프리뷰
  • 최화숙 지음,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 월간조선사
  • 마이클 팀 지음, 김자성 옮김, [사후 세계의 비밀], 북성재
  • 바바라 헤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신의 흔적을 찾아서], 김영사
  • 칼 베커 지음, 이원호 옮김, [죽음의 체험-임사현상의 탐구], 생각하는 백성

  • [네이버 지식백과] 삶의 종말체험 [Deathbed Vision] - 죽음 직전에 보이는 환영 (죽음, 또 하나의 시작, 정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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