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톨스토이의 영혼을 위한 사색

황령산산지기 2019. 12. 1. 17:16

파라다이스     


 

<톨스토이의 영혼을 위한 사색>

 

!

우리는 산의 높이, 건물의 넓이, 별의 크기, 바다의 깊이를 측정한다. 그리고 그 거대함에 감탄한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과 비교한다면 모두 하잘것없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매 순간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자신은 알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으며 만질 수도 없는 존재이다. 우리의 영혼도 그런 존재이다.

 

!

우리는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대해선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보살피는 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다. 우리 삶의 핵심은 자기 안에 사는 영혼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 영혼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영혼의 목소리에 얼마나 따랐는지에 있다.

 

!

물리적인 세상은 다양한 감각과 느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물리적 세상에 대해서는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혼의 세계에 관한 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인간 안에 똑같은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안에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 감각과 육체를 기준으로 하면 ‘나’라는 존재는 선조와 후손을 잇는 일시적인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내적인 자아, 내적인 영혼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이다.

 

!

모두가 ‘비슷한’ 영혼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똑같은’ 영혼이 있다. 진정한 ‘나’는 나 혼자가 아닌, 모든 생명체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외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내적으로는 모든 존재와 결합되어 있다. 우리는 영혼의 세계에서 오는 어떤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직 우리에게까지 이르고 있지는 않다. 아직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별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듯, 그것은 마침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

우리가 남들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영혼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긴 잠에서 깨어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선량함이다. 그것은 얽혀 있던 것을 풀어주고 어려운 일을 해결해 즐거움으로 바꿔놓는다.

 

!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지 알려주는 유일한 인도자, 즉 내적 영혼이 있다. 나무는 본능적으로 태양을 향해 자란다. 꽃은 언제 씨앗을 만들어야 하는지, 언제 씨앗을 땅에 떨어뜨려 자라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의 내적 영혼은 온 세상 모든 생명체의 영혼과 하나가 되라고 말한다.

 

!

영혼이 없다면 육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도 영혼을 통해 살기 때문이다. 육체를 통해서만 사는 듯 여겨진다면 삶이 무엇인지 진정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라.

 

!

육체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감옥에 갇힌 자와 같다.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은 감옥 문을 열고 자유를 얻게 된다. 다른 사람과 의견이 어긋날 때 그토록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할 때 그토록 당황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남을 사랑하지 않거나 의견이 다를 때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신과 하나가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셈이다.

 

!

남을 사랑할 때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두려울 것도, 더 바랄 것도 없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사랑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신과, 또 세상의 모든 존재와 하나가 된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아쉽겠는가?

나무 열매가 자라기 시작하면 꽃잎이 떨어진다. 영혼이 자라기 시작하면 우리의 약한 모습도 그 꽃잎처럼 다 사라지게 된다.

 

!

진정한 스승은 사랑이 삶의 핵심이라 가르친다. 사랑은 우리 영혼 속에 산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선량한 삶을 살게 된다. 신과 같은 삶을 원한다면 그저 사랑만 하면 된다. 남들 또한 ‘나’임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

우리의 육체는 허약하고 보잘것없다.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위대한 보물이 숨겨져 있다. 그 보물은 바로 사랑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기고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며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다. 진정한 삶은 사랑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

우리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완성으로 가기 위한 거리는 누구에게나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완성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자신이 남들을 가르치는 스승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이들도 때로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진심으로 따르고 싶은 모범을 찾고 싶으면,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을 찾도록 하라. 진정 위대한 사람은 그런 이들 속에 존재한다.

 

!

한여름의 무더운 하루가 지나고 나면 기분 좋은 비가 대지를 적신다. 자아도취라는 뜨거운 햇살이 지나간 후에는 겸손함이 영혼을 식혀야 한다. 선량함이 따르는 겸손처럼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피하라. 오로지 자신을 완전함과 비교하라.

 

!

몸이 건강해야 하듯 영혼은 선해야 한다. 선량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그렇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선을 실천할 때 비로소 삶의 결은 아름다워진다.

 

!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라. 우리의 삶은 모두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타인이나 사회를 제대로 알려면 구체적인 사건을 보지 말고 그 사건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살펴보라.

우리 내면에 이미 세워진 삶의 습관을 바꾸려면 여러 사건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같은 여러 사건을 낳았고 또 지금도 낳고 있는 생각과 싸워야 한다.

 

!

인간의 운명은 그 생각의 흐름을 따른다. 인간은 생각으로써 자기 삶을 내다보고 또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생각은 우리를 지옥으로도 천국으로도 보낼 수 있다. 이는 천국이나 지옥이 아닌, 현재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진리를 추구할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 진리 추구를 중단할 때 삶은 끝난다. 우리 삶과 생각은 서로 같다. 삶은 마음에서 시작되어 생각으로 형태 지어진다. 좋은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기쁨은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

필요한 것은 모두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필요치 않은 것들은 힘들게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소박하고 단순할 때에만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풍요로울 수 있다. 그리고 남에게 의지함이 없어야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

우리가 진정으로 사는 것은 현재뿐이다. 미래의 삶은 믿을 수가 없다. 삶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하고 현재만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살았는가이다.

 

!

우리는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다가올 일을 걱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 날마다 순간순간에 온 힘을 다할 때 지나간 날의 괴로움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도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그리고 언제 그와 같은 꿈의 나라로 찾아 들어갈 수 있는가? 현재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내일을 염려하지 마라. 왜냐하면 내일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속에 현재를 위해서만 살아라. 만일 그대의 현재 생활이 선이라면 그것은 어느 때라도 선일 것이다.

 

!

많이 알수록 잘 살 수 있다고들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많이 아는 것은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아는 것만 못하다. 소크라테스는 바보는 조금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은 남들의 생각을 외우고 따라 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대장장이나 목수, 농부 앞에서는 우쭐거린다. 하지만 나는 소위 학자들보다는 이런 장인들을 훨씬 더 존경한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한정된 지식을 ‘학문’이라 부른다 해서 그것이 더 중요해지지는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참된 지식만이 중요하다. 참된 지식을 얻으려면 그중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가를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배우기는 어렵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필요한 것만을 배워야 한다.

 

!

독립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면 남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늘 남의 생각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이는 육체가 부자유한 것보다 더 불행한 상태다. 교만, 분노, 태만 등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켜낼 수가 없다면 마음을 지닌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문제는 스스로가 자신에게 답해야 하는 첫 질문이다. 삶의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수는 없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이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알 수 있다. 인간에게는 인생의 목적을 알 수 있는 이성이라는 기능이 있다. 만일 이성이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사회적 제도의 탓도 아니고, 이성의 모자란 탓도 아니다. 단지 당신이 타고난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우리는 큰 것을 바라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많은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가 운명을 만드는 것이지, 운명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구제자이기도 한 동시에 파괴자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디쯤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도록 투명한 삶을 살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 보이거나 할 생각도 갖지 말라. 잘못은 반드시 그 주인을 찾는다.

 

!

고뇌하지 않으면서 영혼의 성장을 바랄 수 없다. 밤하늘이 별을 드러내듯 고뇌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준다. 고뇌에는 가끔 죽음이 따르기도 하지만 고뇌하지 않는 인생은 쓸모없고 무의미하다. 고뇌는 영혼의 약이 되고 자아를 성장시킨다. 자아 완성의 길에 서 있는 사람에게 고뇌는 달콤한 행복과 다름없다.

 

!

참된 종교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영원을 추구하는 마음과 무한한 세계와의 관계, 즉 인간 생활을 무한한 것과 결합시켜 광명으로 인도하는 그런 것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나를 둘러싼 무한의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만 존재한다. 최고로 고상한 종교에서 가장 야만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그 근본에는 이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나’와의 관계 수립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뭔가 눈에 보이는 일, 이를테면 집을 짓고 밭을 갈고 가축을 치고 과일을 거둬들이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영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영혼을 생각하는 것, 즉 매일 조금씩이나마 선량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진정 중요한 일이고, 그 밖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일들은, 그 영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유익함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자신의 벗을 위해 영혼을 바치는 것, 그 이상의 사랑은 없다. 사랑은 자기 희생을 동반해야 비로소 사랑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 속에 살 때 비로소 그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며, 그러한 사랑 가운데서만 우리는 행복하고, 또한 사랑의 대가를 얻는다. 사람들 속에 그러한 사랑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세계는 존립할 수 있는 것이다.

 

!

양서를 읽음으로써 선을 터득한다. 좋은 예술도 선을 고무시킨다. 기도는 자신에게 선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선의 도입은 선한 생활의 모법을 본받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훌륭한 생활은 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생활의 결과를 보고 그것을 배우는 모든 사람에게도 행복을 주는 것이다.

 

!

예지를 단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축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지는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속성이기도 하다. 예지는 자신의 사명과 그 사명을 실행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

전쟁으로 인한 손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단순하고 생각이 얕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옳지 못한 이해로 말미암은 손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삼라만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숙명이라 생각하며  (0) 2019.12.07
무상의 법칙  (0) 2019.12.07
육신은 버리고 가야만 하는 배  (0) 2019.11.23
저희의 마음과 영혼은 어디에 있나요?   (0) 2019.11.23
인생은 이렇듯  (0) 201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