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우주의 자궁 ‘49재(齋)’ / 조용헌

황령산산지기 2019. 8. 31. 14:28

유당(幽堂)

    

 


조용헌의 주유천하 / 우주의 자궁 ‘49재(齋)’

히말라야 요기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우주의 자궁에서 49일 머물다 인간 자궁으로 들어간다 믿어
과학은 종교를 미신으로 만들어
그러나 삶과 죽음에 대한 책임있는 설명은 없어

 

나는 휴대폰 배경사진에 산(山) 사진을 깔아놓았다. 산도 산 나름이다.

산도 다 기운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고 맛도 다르다. 내 휴대폰에는 카일라스(kailas)

산 사진이 들어 있다. 높이는 6638m. 히말라야 산맥의 티베트 고원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은 네개 종교에서 모두 성산(聖山)으로 숭배한다. 힌두교·불교·자이나교,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서 카일라스 산을 최고로 친다.

 수미산(須彌山)이 바로 카일라스다. 왜 이렇게 카일라스를 신성시할까?

에너지 때문이다. 카일라스는 통바위로 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6638m가 모두 하나의 통바위로 이뤄져 있는 산이다. 통바위로 된 산은 에너지가

더욱 강해진다. 조각난 바위는 산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가 분산되지만,

통바위는 하나로 모이니까 묵직하면서도 강력해진다. 조각난 바위의 기운이

권투의 잽에 해당한다면 통바위 기운은 강력한 라이트 훅에 비유된다.

 바위는 여러가지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고, 지구의 지자기(地磁氣)가 철분·구리 등을

포함한 광물질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한다.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체의 핏속에도 철분을 비롯한 광물질이 들어 있다. 바위산을 등산하면 이런

지자기가 인체 핏속의 광물질을 통해 유입된다. 이 지자기가 뇌세포로 들어가 태초

이래의 근원적인 유전자 정보가 저장돼 있는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를

개봉하면 신비체험이 발생한다.


카일라스처럼 7000m급의 통바위 산은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원자력 발전소 같은 에너지가 분출되는 산이니까 네개 종교에서 성산으로 받드는 것이다.

카일라스에 가면 신비체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강력한 지자기를 쐬면 업장이 떨어져나간다. 이걸 ‘자비’와 ‘심판’이 동시에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상처 입은 부분을 보듬어 주고 품어주는 게 ‘자비’라면, 욕망과

에고(ego·자아)를 칼로 치듯이 떼어버리는 게 ‘심판’의 개념이다.

순례자들은 카일라스 산을 한바퀴 돌면서 기운을 받는다. 라운드 트레킹은 ‘탑돌이’와 같다.

 요가의 대가인 석명(石明) 선생은 몇년 전에 필자에게 카일라스에 한번 가보기를 권했다.

“푸루샴(필자의 요가명)이 거기에 가면 아마도 그 어떤 체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비를 느끼거나 심판의 체험이 있을 겁니다.” 석명 선생은 전생에 카일라스 인근에 있는

호수인 마나스로바의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과일만 먹는 과일주의자로 유명한 요기(Yogi)였다.

 “이 산이 그렇게도 영험합니까?”
 “히말라야에 사는 요기들은 카일라스 산이 거대한 링가(男根·남근)의 모습이라고 여깁니다.

양의 에너지가 아주 강하게 뭉쳐 있다는 거죠. 양이 강하게 뭉쳐 있으면 그 허공에는

자동적으로 음의 에너지가 따라온다고 봅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가는 것이죠.


카일라스 위의 허공에는 우주의 자궁인 요니(Yoni)의 에너지가 형성돼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벗은 영혼이 이 우주의 자궁으로 들어갑니다.

우주의 자궁 속에 일정기간 동안 머물다가 다시 인간의 자궁으로 들어갑니다.


죽음이란 인간의 자궁에서 태어나 살다가 우주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태어남이란 우주의 자궁에서 있다가 인간의 자궁으로 돌아오는 것이죠.”

 두개의 자궁 가운데 어느 쪽이 종착점인지는 헷갈린다. 히말라야의 요기들은 우주의

자궁에 머무르는 기간을 대개 49일로 본다. 왜 49일인가?


인체에는 일곱개의 중요한 차크라(氣穴·기혈)가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우주의 자궁인

요니에 들어가면 한개의 차크라에 쌓여 있던 업장을 푸는 데 7일이 걸린다.


일곱 바퀴를 돌아야만 속세에서 쌓았던 업장을 푼다고 한다. 차크라 하나 푸는 데

일곱바퀴를 돌아야 하고, 7일이 걸리니까 일곱개 차크라의 업장을 풀어내려면 49일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해서 49일이 나온 셈이다.


 이 49일을 불교에서도 같이 쓴다. 49재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이내에

다시 인간의 자궁으로 탁태(托胎)돼 들어온다는 입장이다.

 인도의 오래된 사생관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차크라도 일곱개지만, 북두칠성도 일곱개의 별이다. 흥미롭게도 똑같이 일곱개다.

49도 7×7에서 도출된 숫자다. 7의 변주(變奏)다. 북방 유목민족의 전통을 계승한

우리 조상들은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칠성은 인도 힌두교의 일곱개 차크라의 사생관념과도 일맥상통한다.

현대과학은 모든 종교를 근거가 없는 미신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러고 나서는 생과 사를

책임지는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부정은 잘하면서도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게 과학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요 무상신속(無常迅速)이다’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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