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죽음은 궁극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황령산산지기 2019. 7. 20. 14:59

파라다이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너희는 공동선에 기여했다.

너희는 공통된 그것이, '한 공동 요소'가 좋은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너희도, 신이 하늘과 땅과 땅 위를 걸어다니는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창조하시니, 그것이 대단히 좋았노라고 적지 않았느냐?

 

"좋음" 역시 그 대립물 없이는 체험으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기에,

너희는 좋음의 역운동, 즉 반대 뱡향인 나쁨도 창조해냈다.

또 너희는 삶의 대립물로서 소위 죽음이라 부르는 것도 창조해냈다.

 

하지만 죽음은 궁극의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희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이용하는 단순한 조작물, 발명품,

가상 체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쁨evil"의 철자를 거꾸로 적으면 "산다live"가 되는 것이다!

 

언어면에서 너희는 참으로 현명하여,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감춰진 지혜들을

그 속에 집어넣었다.

 

이 우주철학 전체를 이해할 때, 너희는 위대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리니,

그러고 나면 너희는 더 이상 물질생활의 자원과 필요물을 함께 나누는 대가로

다른 존재에게 뭔가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는 아름다운 거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걸 공산주의라고 부를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정히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게 하라.

하지만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존재들의 공동체community of beings

함께 있음being in community에 대해 알 때까지,

너희는 절대 성스러운 교류를 체험할 수 없고, ''가 누군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주의 고도로 진화된 문화들은 내가 여기서 설명한 것들 전부를 깊이 이해한다.

그런 문화들에서 공유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어떤 필수품이 귀해질수록 점점 더 터무니없는 """매기겠다는" 발상 역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지극히 원시적인 사회들만이 이렇게 할 수 있고,

오직 대단히 원시적인 존재들만이 공동 필요물이 부족을 더 많은 이윤을 올릴 기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진재 체계는 "수요와 공급"에 끌려가지 않는다.

이것이 너희가 삶의 질과 공동선에 기여한다고 주장하는 체계의 일부다.

 

하지만 고도로 진화된 존재의 시각에서 본다면,

좋은 것을 공동으로 체험하지 못하게 하는 너희 체계야말로 공동선을 훼손시키고 있다.

 

고도로 진화된 문화의 또 하나 두드러지고 매력적인 특색은

그 문화들 안에는 "네 것""내 것"을 뜻하는 어떤 말이나 소리도 없고,

그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에는 개인 소유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 언어로 말해야 할 경우라면,

그들은 약정 조항들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 약정을 적용하면, "내 차""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차"가 되고,

"내 배우자""내 아이들"은 그 "배우자""내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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