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 달송

마야문명의 비밀

황령산산지기 2019. 6. 24. 18:45

마야문명의 비밀(1)


[SOH] 마야문명에 대한 신비는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원래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일부였으나 기원전 3000년경에 과타멜라 지역으로 남하하였다.

 

그 후 기원전 2000년경, 북서쪽과 남서쪽으로 각각 갈라져서 살게 됐다.

 

대규모의 도시 유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형성기 후기(선고전기 후기)부터이다. 우리는 이 시간 마야인들의 거주했던 옛날로 깊이 들어가 그들이 도대체 어떤 민족과 문명이었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발견과정

 

16세기 스페인인들이 남미에 들어가 신대륙을 점령했을 때. 농업생활을 하고 있던 그 곳 주민들은 침략자들의 총과 대포 등의 신무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포교를 위해 도착한 스페인의 란다 주교는 있는 마야문명의 보고인 고서들을 “악마”의 흔적으로 몰아 거의 태워 버렸다. 그러나 일부는 포교를 위해 연구 자료로서 남겨두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마야 문화의 연구 자료는 대부분 그가 남긴 기록을 단서로 하고 있다.

 

깊은 삼림 속의 거석 유적

 

마야의 피라미드는 거대한 계단식 제단을 갖춘 회백색으로 네 주변에 있는 계단의 수는 각 91개며 사면의 계단 수와 맨 꼭대기의 한 개를 합하면 365개로 1년의 날수와 같다. 계단 외에도 피라미드의 각 사면에는 52개의 사각부조가 있는데 마야의 1세기인 52년을 나타낸다.

 

엘 카라콜 천문대

 

멕시코 동부 유카탄 반도 치첸이짜(Chichen Itza)에 위치한 엘 카라콜(El Caracol) 의 마야인의 독특한 천문관측 탑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평대 위에 건축되었다. 작고 큰 평대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둥근 돔이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 덮개가 있다. 이 덮개는 현재 천문대에서 천체 망원경을 설치하는 곳이다. 돔의 네 개의 문은 정확히 4 방위를 가리키며 이곳의 창문과 현관은 6개의 연속된 선을 이루며 3개는 천문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춘, 추분과 관련되며 나머지 두 개는 달의 활동과 연계되어 있다.

 




이 엘 카라콜 천문관측 탑은 유적 중 최대 천문관측 탑으로, 이 탑들은 태양과 달의 위치에 일치하도록 배열되어 있다. 최근 고고학자들은 고대 마야 천문대학자들이 한 지역에 일련의 천문관측망을 세웠다고 추정하고 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것은 17세기이고 대형 천문대가 세워진 것은 그 후로 한참이 지나서이다. 이를 비교해 본다면 마야의 천문망은 대단히 선진적이며 적어도 천문관측에 있어서는 오늘날의 과학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삼림 속에 묻혀 살던 마야 민족이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천문망을 건립했을까? 또한 진보된 교통수단이나 기중기 같은 설비가 없는 그들이 어떻게 10여 톤의 돌을 쌓아 올려 천문대를 완성했는지는 현대 인류의 과학적 사고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마야문명의 비밀(2)


[SOH]


실전(失傳) 된 천문숫자와 역법

 

아라비아 숫자는 아라비아인들이 인도에서 유럽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당시 유럽인은 이런 숫자 개념이 없었다.

 

피보나치수열로 유명한 중세 수학자 피보나치(1170-1250)만 해도 인도의 숫자에 대해 1부터 9까지 언급하면서 0 에 대해서는 따로 임의의 수를 써서 나타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서양인들에게 0 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리스인들은 자모을 이용해야만 숫자를 나타낼 수 있었으며 로마인도 Ⅰ,Ⅴ,Ⅹ 를 조합해 숫자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들 숫자에는 역시 0 이란 개념이 없다. 그러나 마야에는 0 이란 숫자가 있을 뿐 아니라 체계 역시 독특하고 과학적이다.


과학자들은 마야인 들의 숫자 계통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숫자표현과 계산방법이 매우 교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점. 막대기. 그리고 0 을 나타내는 조개모양의 부호. 세 개로 모든 숫자를 계산할 수 있었다.

 

그 원리는 오늘날 전자계산기에 응용되는 이진법과 유사하며, 천문학적 숫자를 나타낼 수 있다. 과테말라의 지리파소에서 발견된 석표라고 불리는 조각기둥에는 9천만년, 4억년 등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마야의 역법 또한 복잡하다. 1년을 260일로 계산하는 ‘탁금력(卓金曆)’이 있고. 6개월을 주기로 하는 태음력, 29일과 30일을 주기로 하는 태음월력, 365일을 주기로 하는 태양력, 365일과 260일을 계산한 달력 2개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순환시킨 장기력 등 여러 다른 주기의 역법이 있다.

 

또한 우리가 관측하는 일년은 365.2422일인데 마야인은 이미 365.2429일을 계산해 놓았다. 마야인이 산출해 낸 금성공식을 살펴보면,  세 천체가 37,960일 후 한 직선상에 배열되며 이를 근거로 한, ‘이때‘신’은 모처에 가서 편히 휴식한다.‘ 는 전설이전해지고 있다.


마야인은 384년 동안 관찰한 후 584일이 금성역년이라는 것을 산출해 냈으며 이것은 지구, 금성,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주기가 된다.

 

그들은 또한 금성이 지구의 8년에 다섯 번 돌고 그 후 같은 일이 순환된다는 것을 알았다 (365 X 8 % 5= 584). 현대의 계산에 따른 결과가 583.92일이니 그 오차는 하루 12초가 채 안되고 매월 6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금성력을 계산해 냈는가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마야는 날을 세는 단위가 이상할 정도로 많으며 또 크다. 고고학자들이 알고 있는  마야 달력의 또 다른 미스터리는 왜 이런 천문학적인 숫자를 필요로 하는 가 이다.

 

현대에 있어 이런 단위의 큰 숫자는 일반인이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일종의 과학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는 데에나 사용되는 숫자이다. 천문학이 아니라면 마야인 들에게 이런 큰 숫자들이 왜 필요했던 것일까?


마야문명의 비밀(3)

                   

[SOH]


역법 중의 마야 예언

 

마야역법 중 ‘탁금력’은 1년을 260일로 계산한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태양계 내에서 이런 역법이 적용되는 행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이 역법에 따르는 행성이 있다면 금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탁금력에는 태극음양도와 유사한 마야인이 은하계 중심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

 

호세 아길레스(Jose Arguelles) 박사는 그의 저서 ‘마야인의 원동력, 기술 저편의 길’에서 이 탁금력에 ‘은하계’의 운행규칙이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지구는 최후의 태양기인‘제5태양기’에 속해 있다. 또 우리 태양계는 5125년의 대주기를 지나가고 있으며 시간은 기원전 3113년부터 서기 2012년까지이다.


이 대주기 동안 지구는 태양계와 더불어 은하의 중심에서 나오는 은하빔을 가로질러 이동 한다. 즉 이 은하빔의 길이가 지구시간으로 5125년이라는 것이다. 마야인은 대주기를 13단계로 각 단계를 20개시기로 각 시기는 약 20년으로 세분했으며 각 단계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이러한 역법순환은 중국의‘천간’, ‘지지’와 유사해 순환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서양의 역법처럼 일직선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은하빔을 지나가는 대주기 이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는데 마야인은 이것을‘은하계로의 동화’라고 불렀다.

 

마야 예언에서 말하는 대주기의 최후 시기는 1992년에서 2012년까지로서 오늘날 지구는 이미 이 20년의 최후의 최후시기에 들어와 있다. 마야인은 이 기간을 ‘은하계로의 동화’직전의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믿었으며 이 기간을 지구 재생기간이라고 명명했다.

 

이 기간 중 지구는 완전한 자기정화를 달성할 것이며 지구 재생기간이 끝난 후 지구는 은하광선 경계를 넘어서‘은하계로의 동화’라는 새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마야인의 역법이 정확하다면 그들의 예언 또한 당위성이 있으며, 우리는 마야인의 예언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의 중앙일보 2004 년7월 28일자 신문에 보면 북미인디언이‘중국 은왕조의 후예일 수도’ 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북미 대륙의 인디언이 3000여 년 전 지금의 중국 땅에 살았던 은(殷)왕조 사람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고 중국의 베이징과기보가 26일 보도했다. 그 근거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3000년 전의 돌닻이다.


항해용으로 사용됐을 이 닻은 인디언의 유물이다. 그러나 돌 재질이 미국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서 최근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이 돌은 대만해협 인근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은왕조의 사람들이 항해를 거쳐 미국으로 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또 다른 근거는 문자 기록이다. 1953년 멕시코 올멕 유적지의 인디언 제단에서 6개의 옥으로 만든 홀(笏:왕조시대 조례 때 신료들이 손에 쥐던 막대 모양의 물건)이 나왔다. 홀에 새겨진 상형문자가 은대에 사용됐던 갑골문으로서 문자를 해독한 결과 '치우(蚩尤)'와 '소호(少昊)' 등 은나라를 구성했던 동이족(東夷族) 제왕들의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이 기사에 의하면 마야인이든 다른 미주 인디언이든 동양인이 과거 고대 어느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갔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정통고고학에서도 미주 인디언은 마지막 빙하기에 베링해가 얼어 알라스카와 붙어 있었을 때 중국대륙에서 건너간 것이라고 한다.


마야문명의 비밀(4)

[SOH]


마야인과 동양인

 

일부 유적이 말해주듯이 마야인은 유카탄 반도에서 지구 반대편의 중국인이나 몽골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들은 거대한 석조 유적과 오늘날의 기술로는 따라갈 수 없는 신비스런 예술작품 들을 남겨놓았다.


아래 몇 가지 각도에서 중국인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문자: 마야인은 상형문자를 사용했는데 문자의 발달수준은 중국의 상형문자와 유사하다. 단, 부호의 조합이 한자에 비해 복잡해 아직까지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 예를 들어 대족(大足) 채색 도자기를 보면, 대족 항아리의 꼭지 부분에 선명한 채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색과 검은색의 기하학적 도안이 눈에 띈다.  중국 선사 도자기 중 가장 특색 있는 도자기로 알려진 이 대족 항아리의 특징이 놀랍게도  미주 지역의 많은 인디언의 도자기에서도 볼 수 있다.


옥 그릇: 마야문명에는 특히 옥그릇이 많은데, 세계에서 중국인을 포함한 일부 동양인과 미주 인디언들이 옥을 좋아했고 정교한 옥 그릇 조각기술 또한 이들만이  가지고 있다. 더욱 더 일치하는 것은 두 종족이 모두 옥은 생명의 번영과 연관되어 있다는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마야인의 옥그릇은 강남 지역의 선사문화---양저 문화의 옥 장식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신앙:  마야문화 중에 날개 달린 뱀의 형상을 가진 우사(羽蛇)신상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용과 유사하다. 마야 벽화의 신의 두상이나 마야 제사장이 갖고 있는 쌍두곤봉 위의 뱀 머리 조각상은 용의 모습과 상당히 근접하다. 이 외에도 마야인의 우사신에 대한 의식이나 중국인의 용에 대한 제사는 모두 기우제와 연관된다.


인종: 인종학상으로 볼 때 마야인과 중국인은 명백히 몽고인의 특징을 갖고 있고, 손금조차도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태극도: 마야 폐허에서 중국의 태극 음양도 같은 것이 발견됐다.


달의 전설: 마야인과 중국인의 옥토끼 전설이 같다.


마야의 문화처럼 신비롭지는 않지만 마야의 영향을 받은 문화로 남미의 잉카, 중미의 과테말라, 아즈텍 등이 있으나, 건축의 형태나 종류 건조방식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건축물로부터 건축을 만든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격차가 있으며 고증에 의하면 이 문화의 건조 시기도 매우 다르다. 그렇다면 요원한 인류문명사상 독자적인 휘황찬란한 문명을 건설했던 그들의 시조는 과연 누구였을까?


마야문명의 비밀(5)


[SOH]

고고학자들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유카탄 반도 등 세계의 곳곳에서 수수께끼와 같은 마야유적을 발굴하였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당시의 기술이 요즘의 첨단과학기술을 오히려 능가했다는 것이다.


불 뿜는 부조상


멕시코 고고학자 루일러(Alberto Ruz Lhuiller) 교수는 멕시코 고원에 위치한 마야의 고성 팔랑케(Palenque )에 거대한 계단식 피라미드로 이루어져있는 ‘비문의 사원(The Temple of The Inscriptions)’에서 신전 바닥을 조사하던 중,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하고 4년의 작업 끝에, 1952년 6월 5일 드디어 흙과 돌 속에 묻혀 있던, 벽에 화려하고 단정한 9명의 신관이 새겨져 있는 석실을 발굴해 냈다.


무게가 5톤이나 되는 거대한 석관 덮개에는 우주선과 유사한 기기와 그 기기를 조작하고 있는 기이하게 머리장식을 한 청년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루일러 교수는  이 부조가 마야의 비문과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독한 비문 중 한 단락은: 백색태양의 아들이 우뢰의 신을 모방해 양손에서 불을 내 뿜고 …… 라고 되어 있다.


회의적인 사람은 이것이 ‘고대 마야인의 태양숭배사상이 상상해 낸 정경이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루일러 교수가 발견한 이 부조는 인간이 달에 갈 때 이용했던 우주선과 매우 유사하다. 고대유물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비행체 구상과 그의 섬세한 지식은  최근에야 해독할 수 있었으며,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해 크게 놀라고 있다.


만약 이 그림이 당시 마야인이 만든 기기를 보고 그린 것이라면, 그들은 이미 우주탐사 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마야인의 정밀한 역법은 그들이 우주를 유유히 날아다니는데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수정 두개골


1927년 멕시코 벨리제에서 헤지스(Mitchell-Hedges)와 그의 딸에 의해 발견된 마야 유적 중 수정 두개골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 덩어리의 수정을 가공 연마해 완성된 높이는 12.7 cm, 무게는 5.2 Kg이며 턱뼈는 움직일 수 있도록 조각되어 있는 이 두개골은 외관상뿐만 아니라 내부도 사람의 두개골 구조와 일치한다.


공예수준 역시 고난도의 기술로서 바닥에 숨어있는 마름모꼴 거울과 안구 언저리에 수공으로 갈고 닦은 투명한 거울이 잘 조합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현대 광학기술은 17세기에 나타났으며 인류가 두개골 구조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18세기 해부학이 시행된 이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수정 두개골은 인체 두개골의 골격과 구조를 광학원리에 기초해 조각한 것이다. 마야인은 어떻게 이러한 고도의 해부학적 지식과 광학적 지식 및 기술을 구비했을까? 또한 수정은 석영결정체여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하여 구리, 철, 돌 등으로는 가공할 수 없다.


현대인이 이런 수정제품을 가공하려면 다이아몬드 칼 등 현대적 도구가 있어야 한다. 실증연구를 통해 이 수정 두개골은 모종의 충돌하는 힘으로 조각된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은 아직 그러한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