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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은 단지 전설에 불과한가?

황령산산지기 2019. 6. 24. 18:38

거인은 단지 전설에 불과한가?(1)

      

                        


[SOH] 세계 각 민족의 문학작품 중에는 거의 빠짐없이 거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오디세이’를 보면 율리우스는 어느 섬에 표류하여 외눈박이 거인을 만난다.

 

동화 속 ‘젝크와 콩나무’의 거인,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국’ 등 많은 이야기들이 거인을 묘사하고 있다.


근대 인류학의 발전에 따라 이런 이야기들이 점점 소실되어 가고 있으나 20세기에 들어 거인에 관한 고고학적 화석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거인족은 단지 상상속의  산물로만 로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남미 이카(ICA)의 석조


페루 리마대 의과대학 교수인 카브레라(Javier Cabrera)박사는 이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의 산속에서 여러 가지 기이한 그림이 새겨진 돌들이 대량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짓고 만 천여 개의 이런 돌들을 그곳으로 옮겨놓았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돌들을 독일의 본 대학과 페루의 리마 대학 등 여러 군데로 보내 연구 조사한 결과 적어도 수 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일부에서는 수 만 년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돌들에는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그림들이 조각되어 있다.


일부에는 공룡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모습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는데 공룡은 마치 요즘의 가축이나 길들인 동물 같다. 과학자들은 공룡이 소멸된 시기를 6천5백 만 년 전으로 추정하는데, 그렇다면 이런 그림들이 어떻게 이 돌 위에 조각되어 있는 것일까?



▲ 사람이 폭룡에 쫒기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중 하나에는 한 사람이 폭룡 (Tyrannosaurus) 의 습격을 받아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공룡은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본 것과 유사한 종으로 뒷다리가 매우 발달되어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앞다리는 짧아서 거대한 몸체와 서로 걸맞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공룡에게 쫒기는 이 조각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한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공룡의 모습은 발굴된 화석의 분류과정을 거쳐 복원하는 방식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이 원래의 골격을 맞붙여 해부학적인 근거와 합리적인 사로로 당시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이로 인해 추측 가능한 한 가지는 이카돌에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인류 역시 현대 인류와 동등한 지적 수준으로 화석을 복원하여 공룡의 모습을 재현해 내었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그림을 그릴 당시 사람과 공룡은 함께 생활 했었다!


발굴 및 복원을 통해 현대인이 알고 있는 공룡의 모습을 수 천 년 전의 사람들 역시 알고 있었다면? 혹시 어느 시기에 사람과 공룡이 함께 생활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거인은 단지 전설에 불과한가?(2)

[SOH] 이카의 돌에 조각된 것 중 세뿔 공룡(Triceratops)이 있다.


마치 거대한 코뿔소처럼 보이는 이 공룡의 머리에는 세 개의 뿔이 있고 등에는 도끼와 같은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사람이 타고 있다.


또한 익룡의 등에 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알려져 있는 공룡의 유형은 거의 이 돌들 속에 새겨져 있어 당시 인류의 생활과 공룡은 긴밀히 관계가 있어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 속의 사람과 공룡의 키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알려진 공룡을 예로 들면 폭룡은 높이가 2~3층 건물에 달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보는 폭룡 또한 매우 커서 다리 하나가 사람을 밟아버릴 수 있을 만큼 크다. 그러나 돌에 새겨진 그림 속에서는 세뿔 공룡과 사람의 비례는 마치 요즘의 소와 사람의 비례와 같다.

 

우선 폭룡이 사람을 공격하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자료에 의하면 폭룡의 길이는 약 12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그림 속 공룡은 거의 서 있는 모습이므로 꼬리를 1/3 정도로 볼 때 그 키는 8미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으며 이 비례를 적용할 때 이 사람의 키는 5미터 정도로 짐작된다.


세뿔 공룡을 타고 있는 전사 역시 공룡의 높이를 자료에 의거 4~5미터로 본다면 이 전사의 키는 4미터 이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카브레라 박사는 그 지역에서 이카의 돌 외에도 대량의 토우 상을 발굴하였는데 이 중에도 사람과 공룡이 공생하는 조각품이 적지 않게 있다.

 

그 중 하나는 어린 공룡에게 먹이를 주는 광경으로 당시 인류와 공룡의 관계를 생동감 있게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과거 어느 한 시기 인류와 공룡은 공존했으며 당시 사람은 거인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을 뒷받침 하는 것으로서 고대의 동식물이 지금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었다는 것이다. 그 예로 2억8천 년 전의 잠자리(학명:Meganeura Monyi)는 양 날개를 펴면 70cm에 달했으며 고사리류는 큰 것은 심지어 30m나 되었다.


공룡이 생활했던 시기에 이렇게 거대한 잠자리와 고사리류 식물이 있었다고 했을 때 당시 존재했던 인류라면 오늘의 인류가 거인이라고 일컬을 정도의 큰 체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고고학자들은 과거의 인류는 원인의 두개골 크기 등으로 보아 지금보다 작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최근 발굴된 유골 중에 수만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12세 된 어린이의 키가 178cm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 성인의 키는 2m를 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거인 실존의 증거, 특대형 유골과 발자국

[SOH]


1950년대 후반 터키 동남방 유프라테스 계곡(Euphrates Valley)에서 거대한 골격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사람의 골격과 매우 유사한 이 화석의 한 대퇴골은 높이가 1.2미터였다.  이 비례로 추산해보면 이 ‘사람’의 신체는 5미터에 달하는 것이어서 정말로 거인이라고 부를 만하다.



아래 사진은 도허티(C. N. Dougherty) 박사가 그의 책 ‘거인계곡’에 게시한 사진으로 미국 캔자스 주에서 발견된 발자국이다.


길이가 1m가 넘고  발뒤꿈치 폭 만해도 28cm에  발가락의 길이는 15cm 에서 20cm나 된다. 이것이 사람의 발자국이라면 이 사람의 키는 7.62미터로 추산된다.

 


거인에 대한 전설과 기록


미국 인디언에게는 붉은 머리 거인족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몸집이 거대하며 성질 또한 흉포해서 인디언의 선조는 오랜 전쟁 끝에 정벌하였다고 한다.


1911년 한 광부가 미국 네바다주 르노시 동북부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러브록(Lovelock) 동굴에서 길이가 2.2미터인 붉은 머리의 거대한 미라를 발견함으로서 이 동굴에 살았었다는 거인족의 이야기가 까마득한 세월을 넘어 새삼 고고학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와 네바다주 역사학회가 인디언의 전설에 의거 공동 조사에 나섰으나 산 동굴은 광산 개발로 파괴되어 거인족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후에 광산의 채광 공정 책임자가 대퇴골과 붉은 머리카락을 발견하였는데 그 길이로 보아 이 사람의 키는 2~3미터 정도로 추측할 수 있으며 이 유골은 네바다주 훔볼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말레이지아 샤로웨이 밀림 일대에서도 거인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20세기 초 샤로웨이 밀림에서는 길이가 2.5~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방망이가 발견됐는데 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거인들이 사용했던 공구라고 한다.


인류의 오랜 발전 역사를 살펴보면 거인이 존재했던 흔적은 세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 그들이 지상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서적에 기록된 거인


‘태평광기’ 제463권 ‘금조편’에는 ‘서진(西晉) 영가 2년 두루미가 시안현에 모여들었다.


나무 활로 쏘는데 쇠 화살촉이 6촌 반이나 되었다 이 화살촉의 길이로 추산해볼 때 이 사냥꾼은 키는 1장 5-6척은 된다.’는 기록이 있다.

 

1장 5-6척은 약 4미터로 이 사냥꾼은 거인이다.


반고(班固)가 쓴 중국 한서(漢書)에도 거인과 관련된 기록들이 있다. 제29권 오행지(五行志)에 ‘진시황26년(DC 220년), 키가 11척인 거인 12명이 북방 소수 민족의 옷을 입고 감조에 나타났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이것을 좋은 징조로 여기고 거인들의 모양을 한 12개 금속 동상을 만들었다.’


‘한서’ 제99권 왕망전(王莽傳)에는 ‘서기 14년 흉노족이 중국 변방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숙야(夙夜) 지방관 한박(韓博)이 왕망(王莽)에게 흉노족과 싸울 수 있는 거인을 추천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단기고사에도 ‘단군조선 21세 소태(蘇台) 단제 13년에 동해 바닷가에 역사(力士)가 있었는데 키가 아홉자나 되고 천 사람의 힘을 가졌다하여 임금이 사람을 시켜 수변장을 삼으니 이름을 절인적(絶人跡)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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