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
만법이 평등하다고 들어 알지만 저는 여전히 편안한 게 좋고 불편한 건 싫습니다.
< 답변 >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드러난 모양 속으로 향하지 않소.
싫다고 제가 지어놓고 그 싫음 속으로 마냥 좇아 들어가고, 좋다고 지어놓고
그 좋음 속으로 마냥 좇아 들어가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소리요.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니라면서도(諸相非相) 전부 상만 좇고 있는 거요.
모든 상은 그림자요.
좋고 싫고, 편안하고 편안하지 않고 하는 것은 내 참마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소.
내 참마음은 편안하지도 않고, 편안하지 않지도 않소.
그것은 일체 만법 밖으로 본래 벗어나 있소.
그 마음에 비친 업의 그림자를 다만 편안하다, 편안하지 않다고 지어놓고,
그게 움직임 없는 제 참마음에 비추어진 업의 그림자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는,
‘내 마음이 편안하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고 있는 거요.
여여부동한 제 본래의 청정한 자성불(自性佛)은 등지고 거기에 비친 업의 그림자만을
보고 울그락불그락 전전긍긍 하고 있는 거요.
마음 밖에는 진실로 한 법도 없소. 상대할 경계가 본래 없는 거요.
그게 틀림없는 진실인데도 미혹한 중생이 계속 마음 바깥에 뭔가가 실제로 있다고 보고
온통 거기에 코가 꿰여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거요. 그게 도견(倒見)이오.
전혀 뒤바뀌었다 소리요.
마음 바깥의 경계는 전부 자기가 지은 거요.
제가 짓지 않으면 산하대지가 절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설칠 수가 없소.
산이니, 물이니, 단풍이니 등등, 온 삼라만상이 몽땅 제 마음에 비친 업의 그림자인 줄
모르고 그게 전부 바깥에 실제로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소리요.
산하대지 뿐 아니라, 싫고 좋고, 기쁘고 괴롭고 등등의 모든 심리작용 또한 마찬가지요.
우리가 보고 듣고 해서 안 바가 있고 깨달은 바가 있는 것은
전부 자기 업을 제가 지어서 제가 보는 거요.
이 말을 참으로 절절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앉은 그 자리에서 바로 만법밖으로 벗어날 수 있소.
더 이상 만법이 그 사람의 마음을 얽매는 일은 없소.
그게 소위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旨人心 見性成佛)이오.
곧장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면 바로 부처요.
- 현정선원 대우거사 / 가산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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