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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탄생

황령산산지기 2019. 5. 26. 07:47

델리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그러나 그것이 권위는 아니다.


나는 그대에게 단 하나의 단어, 단 하나의 개념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내가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그대가 모든 권위자들을 경계하고 조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주변에 어떤 권위가 들러붙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당장 던져버려라.


그대에게 주어진 것, 그대에게 강요된 모든 것을 끝내버려라.


그러면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진면목이 어떤 게 될지, 자신의 진정한 존재가 무엇이 될지 전혀 알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 알게 될 때, 자신과 마주하게 될 때,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그대가 완전히 홀로 남겨질 때에만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 ‘홀로있음’으로부터 모든 아름다운 존재들이 꽃으로 피어났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런 존재로 꽃 피어났다.


아주 드물게...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만

주 드물게 한 사람이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존재계에 신이라는 정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이다.


존재계를 두루 돌보고 지켜보고 보살피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나무들이 있는데 단 한 그루의 나무만이 꽃을 피워낼 수 있단 말인가?


봄이 지나면서 단 한 그루의 나무만이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다른 수많은 나무들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만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정원을 돌보는 정원사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이것은 신이라는 정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회의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그대에게 새로운 차원을 부여한다.


그대 스스로 자신의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대가 스스로에 대한 정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때 모든 책임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는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신이라는 그 가련한 노인네를 탓하지 못하도록 신을 내버리고 있다.


그는 이미 모든 일에 대해 충분히 비난을 받아왔다.


 그는 세상을 창조했고, 이런 저런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 모든 비난을 그에게서 거둬주고 있다.


그대는 자신의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리기 위해서 신을 만들어냈다.


이제 그대의 책임을 다시 자기 자신에게 가져오라. 


자신의 홀로있음을 받아들여라.


자신의 무지함, 자신의 책임을 수용하라.


그러면 기적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전혀 새로운 빛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날 그대는 진정으로 세상에 태어난다.


그 이전의 과정은 탄생 이전의 미숙한 과정일 뿐이었다.


요쇼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