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니라야(niraya)라 한다. 니라야는 어원적으로 ‘산산이 조각나다’'의 뜻이라 한다. 경계에 부딪쳤을 때 산산이 조각났다면 지옥을 체험한 것이다. 이제까지 쌓았던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극심한 괴로움이 뒤따른다. 지옥을 체험한 것이다.
‘십년공부도로아미타불’이라 한다. 사람은 경계에 부딪쳐 보아야 알 수 있다. 그 이전에는 그가 무탐(無貪)인지, 무진(無瞋)인지, 무치(無癡)인지 알 수 없다. 그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 그가 수행자라 하지만 경계에 부딪치면 산산조각날 수 있다. 욕망과 분노가 드러났을 때 그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수행자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통증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더 이상 통증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더 이상 관찰할 대상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통증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어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살다 보면 관찰대상은 차고도 넘친다. 경계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을 때 비로서 공부가 덜 된 것을 알게 된다.
알아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몰라도 되는 것이 있다. 소설가가 감방생활을 알고 싶어서 일부로 범죄를 저지를 필요는 없다. 들어서 알면 된다. 들어서 공감한다면 감방체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범죄수법은 몰라도 되는 것이다. 출가자가 부부생활에 대해 알기 위해 일부로 결혼할 필요없다. 부부간의 갈등에 대하여 들어서 알면 된다. 들어서 알아 공감하면 내것이 된다. 스님들이 신도들 얘기 듣고 공감하면 결혼하지 않아도 꿰뚫어 알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평소 인격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경계에 부딪치면 무너진다. 욕망과 분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명예를 중요시 하는 사람은 비판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서는 칭찬과 비난, 명예와 불명예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럼에도 권위를 내세우려 한다면 유신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자아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 체면이나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그를 비난하면 분노가 폭발할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산산조각 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극심한 괴로움과 함께 지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비난이나 칭찬에도 초연한 사람이 있다. 늘 자애로운 마음을 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접하면 큰 그릇을 보는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바위와 같은 사람이다. 단단히 뿌리 내려 강풍에도 뽑혀 나가지 않은 소나무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경계에 부딪쳐도 산산조각 나지 않을 사람이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2019-03-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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