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대왕상(전등사)
명부(冥府)를 엿보다
- 여강 최재효
지난달 초에는 가까운 약사사(藥師寺) 대웅님에게
하얀 공양미를 정성껏 올리고 속죄를 청하였답니다
서너 번의 절로 나는 가벼운 날개를 달 수 있었고
하늘 가리던 손을 슬며시 내려놓을 수도 있었지요
엊저녁에 불나비가 되어 버릇처럼 불야성을 찾았고
번개처럼 붉은 루즈(rouge)와 하이힐을 탐색했으며
눈발과 섞여 날아다니는 핑크빛 단어를 수습했지요
눅눅한 솜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몸이 상한답니다
점심때 늦은 아침 들고 타이어를 따라 나섰습니다
일 년 만에 전등사 명부전에 들어 합장하였습니다
내가 시간을 허비했거나 교만해지면 찾는 곳입니다
열 분의 시왕 중 다섯번째 대왕에게 눈을 맞춥니다
할머니는 두 살 손자를 명부에 들기 직전 구하셨고
어머니 치성은 군대 간 막내아들을 살려내셨답니다
십 년 전 조상님 예지로 후손은 항암할 수 있었어요
한 없이 인자해 보이는 대왕님 미소에 안도합니다
눈이 하나인 사람은 언제나 외눈박이만 보려합니다
평인 중에 스스로 한쪽 눈을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해가 쌓일수록 저 역시 한쪽만 보려니 숨이 막혀요
열분 시왕 중에 봉사가 된 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해로하면 서로 닮아 간다고 하는데 맞겠지요
삼십년을 함께한 부부라면 99퍼센트 비슷해야 해요
50% 부부라면 미리 명경대 앞에 서보는 것도 좋아요
내일 아침 해가 뜬다는 보장성 보험상품이 있던가요
‘안녕하세요?’ 우린 매일 마지막같은 인사를 합니다
내가 웃는 소리와 그대 우는 소리가 수시로 바뀌지요
이승에는 사법부가 있고, 저승에는 명부가 있답니다
요즘은 자고나면 양부(兩府) 간판이 바뀌기도 해요
- 2019.2.10. [14;30]
강화도 전등사에서
[주] 지장시왕 - 명부전의 중앙 불단에는 지장보살좌상과 협시상인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입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양쪽으로 시왕상이 5존씩 의자에 앉아
있는데, 지장삼존상의 왼쪽으로는 제1진광대왕(秦廣大王), 제3송제대왕(宋帝大王),
제5염라대왕(閻羅大王), 제7태산대왕(泰山大王), 제9도시대왕(都市大王)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제2초강대왕(初江大王), 제4오관대왕(五官大王), 제6변성대왕(變成
大王), 제8평등대왕(平等大王), 제10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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