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스크랩] 에테르체/아스트랄체/멘탈체/코잘체

황령산산지기 2017. 7. 9. 08:09

아스트랄체

 

아스트랄체(The Astral Body)는 상위체들(아스트랄체, 멘탈체, 코잘체...)중에서

가장 에테르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이다.

에테르체가 육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아스트랄체는 에테르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의 역할은 다르다

 

에테르체가 주로 상위체들을 물질계에 실제화하기 위한 매개체라면,

아스트랄체는 보다 상위체(멘탈체, 코잘체...)들의 뜻을 가상화하는 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상화는 거짓의 존재화로 생각하기보다는

물질계에 나타나기 전의 형상화로 생각하여야 한다.)

이로 인해,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관리하지만

아스트랄체의 모든 것이 에테르체에 나타나지는 않는다

 

아스트랄체가 표현할 수 있는 형상이 100%라면

상대적으로 에테르체는 1%미만도 안되는 형상만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스트랄체에서 아무리 100의 형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에테르체에서는 1미만의 형상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테르계의 프라나가 아스트랄계 프라나보다 훨씬 양이 적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상위체들이 최종 형상화가 되는 물질계에 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며

물질계의 현실에 잘 어울리는 상위체들을 선별하여 표현하게 하려는 신의 뜻이다

 

 

이로 인해, 아스트랄체의 모습과 에테르체의 모습은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게 된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을 나타내는 것은 시간의 개념일 것이다.

항상 에테르체는 현재의 개념으로만 모든 것을 인식하여 정보를 다루는 것에 비해,

아스트랄체는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없이 모든 시간대에 동시에 공존하며 정보를 다룬다

 

 

 

하지만 육체를 지니고 있을 때

아스트랄체는 주로 현실과 관계된 정보만을 에테르체에 투영시키기 때문에

육체를 지니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물질세계의 육체를 관리하는 에테르체는

아스트랄체 의식 중 현재의 의식을 우선적으로 투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스트랄 의식을 제한없이 에테르체에 가져오는 방법은

프라나가 남을 정도로 에테르체를 보다 강력하게 발달시켜

프라나의 여분에 아스트랄 의식을 투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테르체에 프라나가 남을 정도로 에테르체를 강력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이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제대로 아스트랄체의 감각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잠시, 육체의 의식을 벗어난 꿈의 의식에서만 겨우겨우 사용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꿈의 의식에서는 대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유용한 아스트랄 의식을 인식하지 못하고 잡다한 의식만을 감지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스트랄 의식인 꿈의 가치를 더욱 무시하거나

부질없는 환상으로 여기게 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에테르체를 강력하게 발달시켜

아스트랄 의식을 투영시킬 수 있는 여유가 만들어진다면

그 사람의 의식은 현재를 넘어 과거와 미래를 감지하게 되어

더욱 강력하게 물질계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일반적으로

항상 에테르체와 연결된 상태에서 물질계에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다.

하지만 아스트랄계와 에테르계의 이질성으로 인하여

아스트랄체의 모든 것이 에테르체에 제대로 투영되지 않는다.

아스트랄 차원의 체험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섬세성 면에서 에테르계와 아스트랄계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에테르계의 해상도가 600*400 이하라면 아스트랄계의 해상도는 1600*1200 이상이다.

아스트랄계의 고선명 모습은 에테르계에서는 모두 저선명 모습인 것이다.

이것은 시각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리와 맛, , 그 밖의 모든 느낌들도 마찬가지다.

에테르계와 아스트랄계가 이러한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두 세계의 포하트를 이루는 프라나의 밀도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질계(에테르계)에서 상위계인 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 등으로 올라갈수록

프라나는 점차 그 밀도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프라나 간의 밀도차이는 자연스럽게 포하트 간의 이질적인 차이를 만들며

에테르계, 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 등의 구분을 만든다.

이러한 구분은 각 차원마다의 변화 상황을 다르게 한다

 

아스트랄계는 모든 영계(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에서 가장 하위 차원의 세계이다.

때문에 모든 물질계(에테르계)의 존재들은

아스트랄계와 가장 쉽게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스트랄계를 넘어서 보다 상위계인 멘탈계, 코잘계 등과의 교류는 점차 어려워져

나중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어진다

 

아스트랄계에서 100의 프라나를 가지고 독수리처럼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멘탈계에서는 100의 프라나 정도로는 굼벵이보다 느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멘탈계와 아스트랄계가 프라나의 밀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멘탈계와 코잘계에서 또한 반복된다.

때문에 물질계의 존재들이 아스트랄계를 넘어 코잘계 이상의 영계와 교류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아스트랄체는 보통 물질계의 존재들이 강력한 에테르체를 만들 때 인식되어지지만,

반대로 아주 나약한 에테르체를 지닐 때도 인식되어진다.

아주 나약한 에테르체로 아스트랄체를 보는 경우는

긍정적인 경우와 부정적인 경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긍정적인 경우는 물질계의 수명이 다한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완벽한 죽음을 이룰 때까지 저세상(아스트랄계)을 조금씩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는 다음 세상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신의 섭리이다.

 

부정적인 경우는 에테르체가 의지의 빈곤으로 매우 나약해진 경우이다.

이것은 매우 불운한 예이다.

의지의 빈곤이 에테르체의 건강을 빼앗고 아스트랄체의 독립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일단, 에테르체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육체적인 모든 질병에 무력해진다

그런 다음, 의지가 빈곤인 상태이기 때문에 잡다한

아스트랄 존재(귀신, 유령, 악마 등)들이 달라붙는다.

육체적인 질병은 그런대로 견딜만 하지만,

물질세계에서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잡다한 아스트랄 존재들의 접근은

상상도 못할 고통을 부른다.

잡다한 아스트랄 존재들이 접근하는 이유는

그 에테르체에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자기들의 뜻을 물질세상에 나타내기가 보다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당사자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되고

자신의 판단과는 상관없는 아스트랄계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 보는 아스트랄계는 의지가 나약한 가운데 보는 것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은 가장 지저분한 지옥의 세계들뿐이다.

지옥의 경험은 타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자초한 인과응보일 뿐이다

 

 

 

아스트랄계의 체험은 보통 육신이 없는 경우(죽음)에 가능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를 지니고 아스트랄계를 체험하는 방법은 유체이탈을 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 자칫 잘못하면 육체의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거나

영영 육체로 돌아오지 못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만든다

물질계에 있는 육체에 생명의 프라나를 제공하는 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테르체를 강력하게 단련하게 되면 보다 강력하게 아스트랄계를 체험할 수도 있다.

에테르체가 프라나가 남을 정도로 강력해지면

육체를 지닌 상태에서도 동시에 아스트랄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동시에 물질계와 아스트랄계를 인식하게 된다

물질계의 어떤 대상을 바라만 보아도

동시에 그 대상의 과거 모습과 미래의 모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도 그곳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곳의 이미지가 보이기도 한다.

육체를 지니면서 동시에 아스트랄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능력들이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늘 긍정적인 것만을 보게 되었을 때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부정적인 대상을 보게 되면 부정적인 기운도 그만큼 강하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인물이 되어간다.)

때문에 제대로 근본적인 수련을 하지 않고

얼떨결에 아스트랄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인 경우

인격적인 품위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또한, 육체를 지니고 너무 심하게 아스트랄계만을 보게 될 경우,

현실의 삶에 소홀하게 되어

육체를 지니고 물질계에 있는 가치를 찾지 못해 삶이 오히려 황폐화되어 버리기도 한다.

육체만 살아있지 귀신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를 여행하다보면

물질세계에서 흔히 상상이나 공상으로만 생각하여 실제적 존재로 여기지 않았던

모든 존재들이 생명력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아스트랄계에서 이들과의 만남은 매우 경이롭기까지 하다.

현재에는 없는 과거의 생명체도 버젓이 존재하며,

상상도 못할 미래의 존재들도 아무렇지 않게 자기가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또한, 지구의 생명체라고 생각하기 힘든 존재들도 가끔 만나게 된다.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만약, 이 세계를 물질세계의 영화와 비교한다면

물질세계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들은 이 세계의 답습이며 모방일 뿐이다.

아니 그보다도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물질적으로 이세계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사실 물질세계의 모든 변화는 이 아스트랄계를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스트랄체의 움직임은 물질계의 육체의 움직임과 많은 차이점을 나타낸다.

물질계에서 엄두도 못냈던 많은 일들을

아스트랄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빌딩을 뽑을 수도 있고,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도 있다.

아스트랄계에서는 물질계에서 불가능한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것이다.

불가능이 없는 이 세계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이 세계에서는 부정적인 세계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마음 먹기에 따라 끔찍한 지옥도 만들어진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일까?

영계에서는 물질계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가상세계(여기서 가상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이해하지 말고,

물질세계로 표현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임시적 존재의 세계로 이해하기 바란다.)를 만들어

가장 합당한 모델을 선별하여 물질세계에 표현한다.

이 때 가장 물질세계와 어울리는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약이 없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아스트랄계에 사는 존재들은 오히려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쉽게 나타낼 수 있는 아스트랄 특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질계에 사는 존재라면 이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의 세계를 싫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스트랄계는 다양한 세계를 이루지만

각 세계들의 이질성으로 인하여 각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다른 세계로 이동이 매우 힘이 든다.

 

물론, 멘탈체를 각성하여 이동을 할 수도 있지만

자기가 만든 아스트랄계에 오랫동안 있게 되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쉽게 만들 수 있는 아스트랄계를 벗어나

호흡도 하기 어려운 멘탈계에 가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이든지 쉽게 할 수 있는 이 아스트랄계에 계속 있게 되면

생명력을 강하게 하는 쿤달리니의 활동이 점차 약해지게 되고,

나중에는 프라나의 생성력이 약해져

더 이상 새로운 아스트랄계의 변화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계속 같은 환경 속에 계속 같은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경쟁심이 사라지고

자신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극이 사라진 이 상태에서의 마음은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만이 있다.

무엇이든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때문에 아스트랄계의 일부의 존재들은 답답한 느낌을 해소하고 안정된 마음을 갖기 위해

육체를 매우 갖고 싶어한다

 

육체를 지니고 물질계에 있을 경우, 어려운 면도 없지 않지만

새로운 자극이 주변에서 끊임없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만큼 만족을 이룰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트랄 존재들이 육체를 갖고 물질세계에 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육체를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아스트랄 존재들은 이를 거의 포기하거나, 많은 인내심을 지니고 기다리게 된다

 

아스트랄계 존재들이 그나마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멘탈체를 각성하는 것이지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스트랄계에서도 이를 알리기 위한 전도사업이 활발하다.

아스트랄계 존재들은

물질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스트랄 환경으로 이동하기는 굉장히 어렵지만,

그 이외의 아스트랄 환경의 이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물질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물질계의 과거의 모습이나 현재의 모습, 미래의 모습인 경우를 말한다.) 

 

물질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스트랄체는

다른 아스트랄체의 경우보다 에너지가 매우 강한 편이다.

때문에 물질계에 표현되거나 표현될 이 아스트랄체들은

아스트랄계에서도 아주 특수한 영역에 존재하여,

다른 아스트랄체처럼 쉽사리 변화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멘탈체

 

멘탈체(The Mental Body)

아스트랄 마스터(The Astral Master)로 상위체인 코잘체로부터 명령을 받아

아스트랄체를 관리하여 물질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멘탈체는 물질계에 나타낼 아스트랄체에 대한 상세한 계획과 설계가 있는 체로

아스트랄체에 대한 상징적인 핵심 정보를 담고 있다.

때문에 아스트랄계에 존재하는 모든 아스트랄체들은

멘탈체의 계획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가끔 어떤 아스트랄 존재들은 멘탈체의 명령을 벗어나기도 하지만

벗어난 정도만큼 심한 고통을 부르기 때문에 이내 멘탈체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멘탈체에 아스트랄체의 핵심 정보가 있고,

아스트랄체가 멘탈체의 계획을 무조건 따른다고

아스트랄체가 독자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스트랄체의 입장에서는 멘탈체는 어길 수 없는 일종의 강한 규칙이지만,

규칙 이외의 가상 공간 표현 부분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멘탈계에서의 모든 정보들은 아스트랄체처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형상이 없다.

멘탈계는 아스트랄계에 어떤 테두리를 부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정보들이 상징적으로만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계에서 일종의 문자 구실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계의 문자와는 크게 그 내용과 질이 다르다.

인간계의 문자들은 어떤 대상을 단순히 묘사하고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멘탈계의 상징적 정보들은 그 자체로 강력하게 존재하며

아스트랄계에 방향을 만드는 핵심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인간계에서 어떤 사람이 맑은 하늘을 보고

"하늘에서 지금 비가 오고 있다"라고 말을 한다고

하늘에서 당장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멘탈계에서 만약 이런 상징적인 정보가 만들어지면

아스트랄계를 거쳐 물질계에서는 맑은 하늘에 비뿐만 아니라 날벼락도 친다.

때문에 멘탈계의 상징적인 정보 체계를 보통 하늘의 언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멘탈계의 상징체계를 꿈을 통해 경험할 때가 있다.

대개의 꿈들은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로 잠이 들어 꾼 경우이기 때문에

하위 아스트랄계의 경험으로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에게 커다란 변화가 올 운명이 코잘계에서 만들어지면

그 반동으로 잠시 꿈을 통해 멘탈계의 상징체계를 경험하게 된다

돼지를 몰아오거나 차에 싣고 오는 꿈을 꾸면 재물이 생긴다든지,

누가 죽는 것을 보면 일이 성취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런 상징체계를 살펴보면

인간계의 언어적 표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꿈의 해석을 인간계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잘못된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하늘의 언어인 멘탈계의 상징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의 풀이가 가장 훌륭한 교과서이므로 꿈에 대해 알아보자

 

꿈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평상시 영계와 교류를 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잠을 자게 되면 어느 정도 육체는 휴식과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고

그로 인해 잠시 동안이나마 영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 때 육체의 건강성 여부와 의지성 여부에 따라 순간 다양한 영계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그 중 멘탈계에서의 체험은 강한 상징성을 부여하는 영상으로 이루어져

잠에서 깨어나도 대개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평상시에 잘 이루어지지 않는 멘탈계의 체험이니만큼

이 체험은 물질계의 육체에게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대부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의 꿈은

하늘의 언어로 만들어져 표현되어 물질계에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는

풀기 힘든 수수께끼가 된다.

 

하지만,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영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수세대를 거치면서 쌓인 노하우를 통해

하늘의 언어인 멘탈계의 표현에 일정한 원칙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멘탈계의 상징체계는 신의 언어인 만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인간들과는 많은 차이점을 나타내며 보다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큰 차이점을 느끼는 것은 죽음과 탄생에 대한 해석이다.

이를 살펴보면 신과 인간의 삶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다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인간계에서는 육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음을 매우 싫어하며 두려워한다.

이는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육체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큰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이다

 

반면에, 생명의 탄생은 육체적인 삶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삶의 연장에 대한 기대로 인하여 축복 중의 축복이 된다.

하지만, 멘탈계의 상징체계에서는 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해석을 나타낸다.

하늘의 언어에서는 죽음은 축복이고, 탄생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반되는 해석을 나타내는 것일까?

분명히 말하지만, 하늘의 언어 해석이 무조건 옳고, 인간의 언어 해석이 무조건 잘못됐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인간들이 자연의 순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영적인 능력이 모자라서 생기는 것이다

 

보통 인간계에서는 영계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환상으로 치부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믿을 수 없고, 자신들이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육체의 삶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기게 되어

이기적인 삶을 지향하게 되고,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하여

좀 더 넓은 차원인 영계의 인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간다.

그러한 상황은 악순환이 되어 자신의 육체에 강한 집착을 만들고,

나중에는 육체의 경험이 아닌 모든 것을 부인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상태에서는 육체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성을 잃게 되는 것이 되므로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이다.

 

하지만, 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죽는다는 것은 그만큼 할 일을 다했기 때문에

다음 세상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때문에 멘탈계에서는

탄생의 상징적 언어가 만들어지면 힘을 써서 일해야 되는 사건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고,

죽음의 상징적 언어가 만들어지면 모든 일들이 깨끗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아기가 탄생하는 꿈을 꾸게 되면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생기게 되고,

누가 죽는 꿈을 꾸게 되면 원하는 일이 성취되는 것이다

 

 

 

물질세계에 운명을 만드는 코잘계에서 운명록이 만들어지면

멘탈계에서는 그 운명록을 핵심으로 하여 다양한 사건들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인간계에서 영화를 만들기 전에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를 선택한 뒤

상세한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 어떤 영화를 만들지를 선택하는 것이 코잘체의 작업이고,

상세한 시나리오로 만드는 것은 멘탈체의 작업이다

 

물론, 멘탈계에서 만드는 시나리오는 영화의 시나리오와 개념이 다르다.

멘탈계에서는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허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화될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멘탈계에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그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아스트랄계에서는 가상의 장면들이 만들어진다. 다음 여러 가지 가상의 장면들이 만들어지면 물질계에서는 그 중 물질계와 잘 부합되는 아스트랄계의 가상 장면들을 실제화하게 된다

 

멘탈계에서 시나리오를 만드는 작업을 살펴보면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거의 동시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에 일어날 여러 사건들을 만든다.

때문에 멘탈체의 각성으로 어떤 대상을 살펴보게 되면

그 대상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들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멘탈계에서는 어떻게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멘탈체의 시간 개념과 물질계의 시간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질계에서는 시간이 순차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는 나열식 진행이라면,

멘탈계에서는 대략적인 형태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진행되는 공간식 진행인 것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두 조각가가 각기 바위를 놓고 조각을 한다고 해보자.

한 조각가를 멘탈계 조각가라고 하고, 다른 조각가를 물질계 조각가라고 하자.

두 조각가에게 사람을 조각하라고 하고 작업의 진행을 살펴보자

 

물질계의 조각가는 처음에 과거인 얼굴을 만들고, 다음, 현재인 몸통과 팔을 만들고,

다음, 미래인 다리를 만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멘탈계의 조각가는 처음부터 특정한 부분을 만들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금씩 바위에 숨어있는 사람을 찾듯이 사람을 만들어간다.

과거인 얼굴, 현재인 몸통과 팔, 미래인 다리가 동시에 한 바위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때문에, 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 등의 영계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계는 하위 영계(아스트랄계), 중위 영계(멘탈계), 상위 영계(코잘계) 등의

모든 영계와는 다른 활동을 나타낸다.

물질계에서는 물질 포하트와 프라나의 양이 변함없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물질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프라나와 물질 포하트가 분리되어 버린다.

그렇게 해야만 다시 그 프라나로 새로운 물질 포하트와 결합하여

물질계에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보다 쉽게 이해하여 보자. 물질계에는 항상 일정한 양의 진흙이 있다

그 일정한 양을 100 이라고 하자.

100의 진흙에 수 많은 모양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100의 진흙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물을 넣어 100의 진흙을 만들어

다른 모양을 만드는 순서를 계속 반복하여 만드는 수밖에는 없다.

동시에 한정된 100의 진흙에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만들고 파괴하는 작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 100을 가진 진흙은 물질계(에테르계)의 포하트로 물은 프라나로 볼 수 있고,

순서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들어지고 파괴되어지는 것은 탄생과 죽음으로 비유된다

 

하지만, 모든 영계들은 해당 영계를 구성하는 포하트와 프라나의 제한이 없다.

때문에 이미 만든 영계의 형상들을 없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므로

영계에서 창조 작업은 무한대의 공간으로 뻗어가게 된다.

죽음과 소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수정 보완작업은 영계의 형상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동시에 공존하는 영계에서는

이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영계는 창조력의 기량에 따라 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 등으로 구성되어

물질계에 순차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코잘계는 운명을 만들고, 멘탈계는 시나리오를 만들며,

아스트랄계는 가상의 형상을 만들어 물질계에 변화를 준다.

이 때, 물질계의 형상들이 한계적 공간에서 시간에 따라 차례로 만들어지는 것과는 달리,

영계들의 형상들은 무한대의 공간에 그 종류와 품질별로

대략적인 형상에서부터 정교한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때문에 물질계의 존재들이 시간적으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영계의 존재들은 공간적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물론, 물질계의 입장에서 보면 물질계의 시간 개념을 초월하기 때문에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이동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계에서 공간적 이동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형태일까?

모든 영계들은 무한대 공간 속에 무한한 창조물을 만들지만,

상호적인 교류 또한 매우 중요하므로

비슷한 창조물들은 거의 같은 공간에 있게 된다.

그것은 대형 서점에서 종류별로 책들을 배치하여

원하는 책을 쉽게 찾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때문에 영계의 도시들을 방문해 보면, 사람들의 모습들이 굉장히 닮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도시는 사람들의 모습에 굉장한 차이를 나타내는 곳도 있다.

이런 차이는 왜 나타날까? 이런 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나 사상처럼 특정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모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가치관을 중심으로 모인 이 곳도 자세히 살펴보면,

각기 다른 그룹의 형태로 나누어져 있고,

그 그룹들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들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영계들은 이처럼 유사한 패턴으로 모여 헤아릴 수 없는 집단들을 이룬다.

 

하지만, 영계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영들은 같은 공간에만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영계를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기가 속한 영계를 벗어나 영계의 이동을 할 수 있을까?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 집단을 벗어나 다른 집단으로의 이동을 하려면

스스로 그 집단의 소속감을 버리고 새로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순간 이동하여 그 집단을 떠나 자신이 그리던 곳에 있게 된다.

그리고, 보다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새로운 영계의 모습들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들은

자신이 속한 영계에서는 어느 정도 공간 이동을 보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색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의지의 빈곤과 거부감,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공간 이동이 잘 되지 않는 편이다

 

 

 

코잘체

 

코잘체(The Causal Body)

모든 영계에서 물질계의 개체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영체이다.

물론, 코잘계가 영계의 가장 핵심은 아니다.

코잘계 이상의 영계가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잘계 이상의 영계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으로는 느끼기 어렵다.)

다만, 물질계에 있는 생명체들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모든 개체들의 핵심이 코잘체라는 것이다

 

코잘체는 일반적으로 개체의 운명을 생성하고 관리하는 상위 영체이다.

때문에 중위 영체인 멘탈체, 하위 영체인 아스트랄체, 물질계를 지배하는 에테르체는

순서대로 코잘체의 하부에 존재하게 된다.

코잘체에는 개체를 이루는 운명에 관한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왕이 될 사람인지, 거지가 될 사람인지 하는 운명의 특성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코잘체에는 그 사람에 대한 상세한 삶의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사람의 상세한 삶의 내용은

멘탈체에서 코잘체의 운명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같은 코잘체를 지닌 사람들도 멘탈체가 다르면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코잘체가 같기 때문에 운명의 패턴은 같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멘탈체가 같은 사람들도 아스트랄체가 다르면 삶의 모습이 달라지며,

아스트랄체가 같은 사람들도 에테르체가 다르면 삶이 달라지게 된다.) 

 

사람에 관한 코잘체의 상태를 살펴보면

운명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 요소들은 건강, 지능, 성격, 애정, 직업, 명예 등으로

흔히 사주팔자나 수상, 관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운명의 요소들은 아주 오랫동안(물질계의 입장에서 보면) 코잘계에서 만들어져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 운명의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가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간다

삶과 죽음의 반복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가기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운명이란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구분을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운명에 쉽게 굴복하거나

운명을 아예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너무나 쉽게 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 3의 존재에 의해서

운명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개의 운명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운명의 요소들은 사람들이 보통 어떤 것에 강한 의지를 보이게 되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한다.

그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변화는 더욱 깊고 뚜렷하다.

 

하지만, 코잘체의 운명적 요소들을 변화시킬 정도의 의지를 발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대개의 사람들은 그 운명의 질에 상관없이

이미 만들어진 운명만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코잘체에 변화를 만들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많은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수련을 통한 체계적인 코잘체의 변화를 만들기보다는

뜻하지 않은 자극이나 상황 등으로 인해 코잘체에 변화를 만들게 된다

 

이런 코잘체들은 긍정적일 경우에는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부정적일 경우에는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게 된다.

또한, 그에 상응하는 어떤 변화를 통해

코잘체의 좋지 않은 운명적 요소들을 없애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과 피해가

그 사람의 인생을 계속 방해하며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통 업장소멸이라고 부르며,

불안전한 운명적 요소를 업보 또는 카르마(Karma)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다 좋은 운명적 요소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코잘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만이 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의지의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코잘체는 멘탈체, 아스트랄체, 에테르체보다도 강력하고 밀도있는 프라나로

코잘 포하트를 구성한다.

때문에 코잘계에 변화를 주고, 코잘계를 다스리는 존재들은

강력한 프라나를 지배할 수 있는 그에 상응하는 쿤달리니 파워가 있다

이 쿤달리니는 쉽게 말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집중도에 따라 사물이 달리 느껴지고,

할 수 있는 기량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대개 물질에 대한 집착이나 이기심으로 인해

사람들의 집중도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것에 비해 1%도 못 미치게 된다.

하지만, 특수한 수련과정을 거치거나, 스스로의 강력한 의지를 발휘해

집중력이 1%를 벗어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1kg 무게의 돌을 들 수 있는 능력이

2kg 무게의 돌을 들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기량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집중도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면, 집중하는 만큼의 프라나를 모을 수 있게 되고,

프라나가 밀집될수록 발휘될 수 있는 힘의 차원은

에테르계에서 아스트랄계로, 아스트랄계에서 멘탈계로, 멘탈계에서 코잘계로

올라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집중도가 강해질수록

지배할 수 있는 의식의 차원이 높아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코잘체의 존재성 여부를 정하는 쿤달리니 이상으로

기존에 있는 다른 코잘체들과의 조화이다

기존에 있는 코잘체들을 무시한 상태로 운명적 요소를 만들 경우,

기존의 코잘체들에게 방해를 받아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명적 요소를 새로 만들 때는

먼저 연관성 있는 기존의 코잘체 상태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자신의 코잘체 상태를 먼저 살피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기존의 코잘체 상태를 살피는 방법은

코잘체에 변화를 줄 정도의 강력한 집중으로 연관성 있는 코잘체를 느끼고,

다음 새롭게 형성할 코잘체와의 조화성을 아나하타 차크라로 느끼면 된다.

보다 상세한 설명은 신비문의 초능력 비술 하부 코너에 있는

투시, 염력, 텔레파시 등을 참고 하기 바란다.) 

 

멘탈계의 특징이 아스트랄계에 중심이 될  상징적인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라면,

코잘계의 특징은 멘탈계의 중심이 될 운명적 요소들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코잘계의 느낌은 멘탈계보다도 밀집된 프라나를 사용하기 때문에

꿈처럼 흔히 인식되기 매우 어렵다.

설사 인식된다 할지라도 그 느낌이 워낙 순간적이고,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때문에 물질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느낌대를 느끼면서도

그 느낌의 중요성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만 받아들이는 현대인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성보다는 마음의 상태를 더욱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의 경우,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느낌대를 어느 정도 따르게 된다.

그들은 흔히 이 느낌대를 "육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이 육감을 느끼는 메카니즘을 살펴보자.

육감을 느끼는 메카니즘을 살펴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론을 이해하려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육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아마도 자신에게 커다란 변화가 오거나, 어떤 위기의식을 느낄 때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평생의 반려자를 처음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친근감이 생기는 것,

자신에게 해를 끼칠 인물을 만났을 때 매우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

죽음이 임박했을 때 감정이 쌓인 사람들과 화해하여 정리하고 싶은 것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육감을 느낄 때의 그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면,

왠지 모르지만 몹시 기분이 나빠진다든지,

혹은 기분이 좋아진다든지 하는 기분에 매우 민감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지만

일단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혹은 기분이 좋기 때문에

그 대상을 피하거나 취하거나 하는 조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논리적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냉철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따르지 않고 기분의 상태를 따르는 이런 행동은

매우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러한 육감들은 매우 정확한 적중률을 나타내고 만다. 왜일까

 

이런 육감을 따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사실 이 사람들은 기분만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알 수 없는 어떤 막연한 느낌들이 동반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막연한 느낌들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이 막연한 어떤 느낌들은 인간의 머리로는 대부분 해석이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에는 상당한 동요를 일으킨다.

그것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기분의 차원이 전혀 아니다.

때문에 논리적인 머리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이 때 막연한 느낌을 주는 것이 코잘체이다.

코잘체는 이처럼 막연한 느낌을 주고 강렬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코잘체는 강력하게 밀집된 프라나로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그 느낌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도 마음만은 강하게 동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에서 사장(코잘체)과 평사원(육체)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사회에서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피라미드의 구조로 조직을 만든다.

평사원(육체)이 가장 많고,

다음 계장(에테르체), 다음 과장(아스트랄체), 다음 부장(멘탈체), 다음 사장(코잘체) 순으로

점점 숫자가 적어지는 식이다.

여기서 직책에 따라 하는 일을 살펴보면, 평사원이

가장 실질적으로 사회와 연결되어 업무를 처리하고

사장은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핵심적인 일들을 처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장의 움직임은 평사원들에게는 일일이  알려지지 않지만

사장의 뜻은 일반 평사원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코잘체의 막연한 느낌을 갖지 않고

보다 명확한 느낌으로 코잘체의 뜻을 파악할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코잘체보다 부담이 덜하며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멘탈체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코잘체의 막연한 느낌을 멘탈체로 해석한다.

해석을 하는 요령은

아나하타 차크라(프라나 흐름에 균형을 잡아주는 차크라 센터)에 힘을 주고

코잘체의 막연한 느낌과 잘 어울리는 상징적 이미지를

멘탈체의 기억 속에서 찾아 조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상쾌한 느낌이 들 때까지 계속한다.

(코잘체의 모습이 멘탈체에 제대로 투영되면

코잘체와 멘탈체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순간 상쾌한 기분이 생기게 된다.)

다음, 멘탈체에 조합된 상징적 이미지의 뜻을 번역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이론에 처음 접한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이 원리도 몰라서

수십년 동안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면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로 알아야 한다

 

쿤달리니의 성장으로 코잘체를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운명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운명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상태를 보통 "해탈"이라고 부르는데

더 이상 부정적인 업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만큼

타인의 삶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타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해 나갈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악의 화신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독재자가 되어 악업을 쌓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에는

신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며

선업을 쌓아 내세를 밝게 하고 주변 사람들과 축복을 나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자신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모든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원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대상에 강한 집착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잘체를 자유롭게 지배하게 되면,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인생의 목표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에 부합된 인생의 목표를 강력한 의지로 만들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또한, 어떤 외부적인 자극이나 환경에 의해 마음이 동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내면 속에서 행복과 사랑을 샘솟게 하기 때문에

어떤 대상에 집착을 가질 이유를 못 느끼게 된다

 

하지만 코잘체를 지배할 수 있는 차원에서 쿤달리니 성장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코잘계보다도 더욱 강력한 차원의 영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계는 개체적인 운명을 지배하는 차원의 영계가 아니다.

모세, 예수, 부처, 마호멧 등이 접촉했던 거대한 신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 곳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코잘체를 지배하는 쿤달리니 파워로는 어림도 없다.

만약, 코잘계를 어느 정도 인식하는 사람이 이 곳을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은 폭발하고 만다.

보다 강력한 고차원 영체를 코잘체에서는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엄청난 쿤달리니 파워만이 이 곳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자만은 어리석음을 만드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에테르체

 

에테르체(The Etheric Body)는 육체와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육체의 활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에테르체의 모습은 거의 육체와 같은 모습을 지니지만

육체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에테르체를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수련을 통해 자신의 에테르체를 각성시켜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이 특성 때문에

에테르체는 육체와는 동 떨어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에테르체는 사실 육체 이외의 또다른 신체가 아니다.

에테르체는 또다른 특성을 가진 육체의 한 부분일 뿐이다.

에테르체에 변화가 일어나면 육체도 그와 대응되는 변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에테르체는 일곱 차크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일곱 차크라는 쿤달리니를 통해 프라나를 흡입하여 육체에 변화를 만든다.

물론, 일곱차크라는 에테르체뿐만 아니라

아스트랄체, 멘탈체, 코잘체 등의 고차원적 체에도 있지만,

육체에 직접 변화를 나타내는 차크라는 에테르체의 일곱 차크라이다

 

이 에테르체의 일곱 차크라는 물질 세계와 대응하는 육체를 만들고 육체로 하여금 물질세계에 변화를 만들도록 조종한다. 이 때 프라나는 물질 포하트를 결합시켜 육체의 경험과 외부의 변화를 만든다. 때문에 에테르체의 상태를 잘 관리하는 것은 육체의 삶의 질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에테르체의 쿤달리니 밀집 상태는 육체에 매우 큰 영향력을 준다.

지나치게 쿤달리니가 밀집되어도 육체는 활력을 잃으며,

부족하게 쿤달리니가 밀집되어도 육체는 활력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쿤달리니는 태아가 모체의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하듯

마니퓨라 차크라에서 대부분의 프라나를 흡수하여

차크라와 경락(經絡:일곱 차크라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온몸으로 뻗은

차크라의 연장 경로 또는, 차크라의 다른 명칭)을 통해 온 몸에 프라나를 분배한다

 

이 때 육체의 세포들은 역할에 따라 각기 필요로 하는 쿤달리니 힘이 다르기 때문에,

쿤달리니 힘이 지나치게 그 부분에 많이 밀집된 경우에는

활동이 정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부족하게 밀집될 경우에는 원래 활동력이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육체의 질병들은 쿤달리니 힘의 분배에 균형을 잃어 발생이 된다.

쿤달리니 힘의 분배에 균형을 잃는다는 것은 기()의 분배

, 기분(氣分)이 좋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방에서는 침 하나만으로

기가 지나치게 몰려있는 부분이나 기가 부족하게 몰려있는 부분을 찾아

균형을 잡아 만병을 고치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육체가 망가져있을 경우 침술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적어도 약만을 맹신하는 바보 짓을 하기보다

평소에 기분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바르게 쓰려고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건강을 얻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쿤달리니 힘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쿤달리니 힘을 균형있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먼저 자신에 대하여 보다 근본적인 이해를 하라"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자신에 대한 이해에서만이 보다 유익한 삶의 방향을 판단하게 되고,

알고 있는 이상 그것을 위하여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테르체는 육체와 직접 연결되어 육체의 모든 움직임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보다 상위체인 아스트랄체와도 연결되어

상위 의식을 육체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에테르체의 기본 각성이 없이는 아스트랄체와의 교류도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스트랄체의 개념이 없다.

단지, 육체의 중요성만을 생각하여 자신의 몸만 살피는데 급급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육체의 건강을 방해하게 된다

 

에테르체의 모든 변화는 아스트랄체를 근본으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좀 더 근본 의식인 아스트랄체 의식이 상실하게 되면

에테르체를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활력을 잃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장 없이 사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고로, 에테르체의 정상적인 발달을 위해서는

보다 상위의 체들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육체는 음식의 소화를 통해 대부분 자신을 만들어 간다.

인간의 육체에 필요한 주 영양소들을 살펴보면

, 산소, 무기질, 비타민,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칼슘 등이다.

이 영양소들은 대부분 다른 생명체들로부터 얻는 것으로

단순히 영양소들이란 개념 이상이 존재한다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자신의 생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프라나를 흡수하기 때문에

영양소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다.

산삼과 인삼을 비교해보면 영양소 면에서는 별다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나 인삼보다 산삼이 귀한 것을 알고 있고,

먹었을 때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같은 영양소를 흡수하더라도 육체에서 반응하는 것은

천지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생명체의 프라나 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마니퓨라 차크라를 통해 주요 프라나를 흡수하는 것 이상으로

음식의 소화흡수는 육체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생명체의 프라나는 단순한 생명체에서 복잡한 생명체로 갈수록

점차 그 생명체의 기질을 강하게 포함하게 된다.

프라나도 음식처럼 일단 흡수되면 육체의 특성에 맞게 분해하고 재조합하게 되는데,

복잡한 생명체를 흡수할수록 그 작업이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프라나에 그 생명체의 특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육체에 필요한 프라나가 많은 생물체를 흡수할 경우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필요하거나 해악이 있는 프라나가 있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화와 흡수에 많은 힘이 들게 된다

 

또한, 흡수한 생명체의 프라나를 지배할 힘이 없을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육체에 녹아있는 그 생명체의 특징대로 활동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때문에 가능한 같은 영양소라도 복잡한 생명체보다는

단순한 생명체를 먹는 것이 육체의 건강에는 유익하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수도를 위해서 동물성보다 식물성 음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프라나는 모든 물질이 그 특성을 생성하고 유지하는데 쓰이는 물질의 근본 에너지이다.

에테르체의 프라나는 물질의 특성을 생성하고 유지하기 때문에

부패하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도

프라나가 들어가면 다시 생기를 찾아 향기로운 냄새를 퍼뜨린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부패되지 않는 것은

에테르체를 통해 이 프라나를 끊임없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음식의 맛에 손 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마니퓨라 차크라로부터의 프라나 흡수는

훈련되어 성장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 흡수량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에테르체 존재들은 가능한 프라나의 재구성 작업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보다 완벽한 물질을 얻으려 한다.

완벽한 물질을 얻게 되면 그만큼 재구성 작업을 할 때 소비되는 프라나를 절약할 수 있어

더욱 효율적인 에테르체 운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한 물질만을 계속 흡수하다 보면

마니퓨라 차크라로부터 프라나를 흡수할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에테르체의 활력을 죽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좋은 환경과 좋은 음식만을 먹었던 사람들이

환경과 음식이 나빠지면 괴로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프라나는 마니퓨라 차크라로부터 주로 받아들이고,

부속적으로 나머지 차크라로부터 받아들어야 능률적이게 된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모든 에테르체들은 한계적 공간에서

물질계의 자신들에게 생명성을 부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비슷한 에테르체끼리는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게 된다.

비슷한 에테르체끼리는 같은 종류의 프라나를 흡입해야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비슷한 모양을 지닌 존재들이 같은 공간에 모이면

화합보다는 분열이 일어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서로를 죽이기까지 한다.

서로에게 프라나 흡수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이 있게 되면

프라나는 우세한 기량을 가진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전달된다.

그렇게 되면 열세한 기량을 가진 사람은 역시 기가 죽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힘이 좋은 사람도

자신보다 우월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기가 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테르계는 상위계들 중 아스트랄계와 가장 교류가 활발하지만,

에테르계 프라나의 양이 한정되어 있어

아스트랄계의 모습들이 물질계에 모두 투영되지는 못해,

한정된 에테르계의 프라나는 아스트랄체 모습들 중

보다 강력한 것을 우선적으로 물질계에 투영시키게 된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젖어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아스트랄 힘보다 강력하며

에테르체가 없는 아스트랄 존재들이 이러한 에테르계의 표현 한계를 극복하여

자신의 에테르체를 통해 그들의 뜻을 물질계에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이 때 일정한 목표를 지닌 강력한 아스트랄 존재가 접근하여

체계적으로 지배를 받을 경우에는

지배를 받는 사람은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 경우, 그 존재가 긍정적인 아스트랄 존재일 때에는

일종의 수호령이 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아스트랄 존재일 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험난한 삶이 평생토록 만들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강력한 의지로 자신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을 경우에는

오히려 이러한 현상들을 역 이용할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을 이용하여 자신의 에테르체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의 아스트랄체도 자신의 뜻대로 지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에테르계에서 친밀한 존재들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의 프라나를 공유하는 일이 많다.

프라나의 공유는 생명체에게 많은 이득을 주게 되는데,

상호의 에테르체가 독립적으로 만들지 못하는 프라나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공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복잡한 생명체로 갈수록 심해진다.

복잡한 생명체일수록 어느 프라나는 잘 만드는데 비해서

어느 프라나는 잘 만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생명체들은 서로의 부족 프라나를 채우기 위해 집단을 이루게 되며,

그 속에서 서로에게 부족한 프라나를 가진 다른 생명체를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부족한 프라나가 특이한 것일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한 편이다.

하지만 대개는 서로의 부족 프라나를 채울 수 있는 경우보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부족 프라나를 채우는 경우나, 전혀 채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아

효율적인 인간관계를 이루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사람의 경우, 종족번식을 위한 방법으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매우 뚜렷하다.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질적이라는 것을 뜻하며

상호간 밀착성이 중요함을 반증한다.

사람들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성의 구분이 매우 강해지며

이성과의 만남을 본능적으로 갈구하게 된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성적 특성을 이루는 만큼

반대의 성을 만드는 프라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성과의 만남 없이 평생을 보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자손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많은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

남자의 경우는 음(-)성이 부족하게 되어 매우 폭력적이게 되며,

여자의 경우는 양(+)성이 부족하게 되어 매우 히스테리컬하게 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로 부족한 프라나를 흡수하기 위해 사람들이 만났을 때

사람들은 알 게 모르게 서로 닮아간다.

상대방의 특성을 담은 프라나가 흡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특성을 담은 프라나를 계속 흡수할 경우,

타인에 대한 의존이 높아져 타인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지는 면이 있다.

심할 경우는 항상 그 사람과 있어야만 안정이 된다

 

이 경우 타인의 프라나가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피해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이 비슷한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스스로 생성하지 못하는 프라나를 타인의 도움을 통해 받는 것도 좋겠지만, 가능한 자생적으로 프라나를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늘 의존하여 타인이 생성한 프라나를 흡수하게 되면 오히려 독립적인 프라나의 생성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의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독자적인 에테르체를 갖고 있다.

우리는 보통 식물이나 동물이외의 다른 존재들에게는

생명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물질적 관념이다.

산이나 강, 바람, 태양, ...처럼 우리가 환경으로만 알고 있는 존재들에게도

엄연히 에테르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존재들은 강력한 생명력으로 자연의 일부를 거대하게 다스리며

우리가 그들의 존재여부를 논쟁하는 것을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만, 보다 큰 관점으로 우주에서 할당 받은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진행할 뿐이다.

때문에 그들이 펼치는 여러 가지 자연현상들은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리없이 말하고 있다. 나는 신의 뜻을 따르는 존재일 뿐이라고... 

 

출처 : 파라다이스 테라 (Paradise Terra)
글쓴이 : 파라다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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