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책!

시간을 기록하다

황령산산지기 2015. 3. 12. 16:16

N/A

니콜라스 뤼섹의 크로노그래프를 재현한 몽블랑(Montblanc)의 Nicolas Rieussec ChronographTime Writer

시간의 측정

‘지금 몇 시인지’ 시간을 바로 보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시간과 시간 사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을 때가 있다. 즉,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 종종 필요하다. 시간은 이성보다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있어서 오랜 시간을 찰나적 순간으로, 반대로 찰나를 영원처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주관의 개입 없이 객관적인 시간의 간극을 알려주는 기능이 크로노그래프(chronograph: 1초 이하의 시간 간격이나 속도나 거리 등을 측정하는 시계의 기능)다. 크로노그래프의 뜻은 시간의 기록자(a writer of time)에서 유래했다. 크로노그래프를 처음 고안한 사람은 니콜라스 뤼섹(Nicolas Rieussec)으로, 1821년 파리의 경마 경주에서 선보인 기계를 시작으로 본다. 이것은 2개의 고정된 바늘 아래 눈금이 그어진 2개의 원판이 돌아가는 형태의 기계로, 판이 멈추면 바늘에서 잉크를 떨어뜨려 시간을 기록하는 장치였다. 몽블랑은 니콜라스 뤼섹의 크로노그래프를 재현한 크로노그래프 손목 시계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오메가(Omega)의 Seamaster Planet Ocean Chrono

론진(Longines), Column-wheel Chronograph Calibre L688.2

드럼 또는 테이프 형태의 크로노그래프는 과학이나 산업 분야에서도 필요한 기구로 이용됐다. 니콜라스 뤼섹도 시계로 제작했지만 도날드 드 칼르(Donald de Carle)이 저술한 시계 사전에 따르면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1862년 영국의 시계제작자 아돌피 니콜(Adolphi Nicole)이 최초로 제작했다고 한다. 크로노그래프를 타이머(timer)나 스톱워치(stop watch)와 혼용할 수도 있겠다. 레코딩 타이머(recording timer)는 전자석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쇠붙이가 짧은 시간 간격으로 일정하게 진동하며 기록 타이머의 먹지 밑을 통과하는 종이 테이프에 일정한 간격으로 점을 찍는 장치였다. 점의 간격이 일정해서 점의 수에 간격당 시간을 곱하면 운동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고, 거리로 속도의 변화도 측정할 수 있었다. 스톱워치는 한 개의 바늘을 작동, 정지시켜서 여러 가지 활동의 소요 시간이나 시간의 기록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한 시계로, 타이머를 휴대용으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이머는 회중 시계의 형태로 제작됐고 지금도 유사한 형태로 기능에 따라 복싱 타이머, 풋볼 타이머, 아이스 하키 타이머, 맥박수를 잴 수 있는 펄스미터 등이 있다.

크로노그래프의 작동

크로노그래프 시계는 시간을 표시하면서 타이머나 스톱워치의 기능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가운데에 시간을 표시하는 시와 분침, 초침을 두고 크로노그래프 기능은 서브 카운터를 통해 표시한다. 크로노그래프의 카운터는 3시, 6시, 9시, 12시 방향에 크로노그래프용 초와 30분, 12시간 등을 표시하는 2~3개의 카운터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을 표시하는 시침, 분침 등과 구분하기 위해서 시간을 나타내는 핸즈는 골드, 크로노그래프를 나타내는 핸즈는 블루나 레드 등으로 시계바늘의 색을 달리해서 표시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작동은 크라운의 위 아래에 2개의 푸시 버튼(push button)을 배치하고 위 버튼은 크로노그래프 기능의 스타트와 스탑, 아래 버튼은 모든 크로노그래프 시계바늘을 제자리에 돌아가도록 리셋하는 기능이 있다. 크로노그래프를 크라운에 함께 두어 버튼 하나로 움직이는 시계도 있다. 버튼 하나로 스타트, 스탑, 리셋이 가능한데 이를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monopusher chronograph)라고 한다.

크로노그래프의 종류

몇 가지 기능을 더 갖춘 크로노그래프 시계들도 있다. 타키미터(tachymeter)ㆍ타코메터(tachometer)는 시간의 간격을 통해 거리 대비 시속을 가늠할 수 있는 기능으로, 다이얼 위에 나선 원형 눈금 또는 다이얼 가장자리나 베젤의 눈금, 숫자를 통해 측정 가능하다. 타키미터의 눈금은 보통 400에서 시작해서 300, 240으로 내려가다 60~55로 끝난다. 예를 들어 1km를 지나가는데 걸린 시간을 측정했다고 보자. 크로노그래프의 초침이 45초에서 멈췄을 때 타키미터 80의 눈금에 있다면 1시간에 80미터를 갈 수 있는 셈이 된다. 눈금은 보통 미터 단위이지만 시계에 따라 마일을 표시하기도 한다.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flyback chronograph)는 겉모습은 여느 크로노그래프 시계와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크로노그래프 초침을 움직인 다음 크라운 아래의 리셋 버튼을 누르면 초침이 12시 제로 방향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움직이는 기능을 가졌다. 예를 들어 20초를 잰 후 바로 30초를 재고 또 20초를 재는 식의 일정한 시간을 연속해서 측정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한 기능이다.

크로노스위스(Chronoswiss), Timemaster Split Second GMT

브레게(Breguet), Classique 5247 Chronograph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split second chronograph)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수행하는 초침을 2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름 그대로 초를 나눠서 측정할 수 있는 시계다. 초침은 위와 아래 2단으로 장착되어 있으며 버튼도 케이스 왼쪽, 오른쪽에 2개가 있다. 오른쪽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2개의 초침이 함께 움직이다가 케이스 왼쪽의 버튼을 누르면 초침이 분리되면서 한 초침은 멈추고 다른 한 초침만 움직이면서 시간의 간극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더블스피릿(double spirit)ㆍ라트라팡테(ⓕrattrapante), 독일어로 도플 크로노(dopple chrono)라고도 한다.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진화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수행하는 초침 2개가 장착된 아 랑게 운트 죄네(A.Lange & Söhne)의Datograph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태그호이어(TAG Heuer)의 Mikrotimer Flying 1000 Concept Chronograph

크로노그래프 셀프와인딩 무브먼트가 개발된 건 1969년이다. 해밀튼을 비롯해 브라이틀링-레오니다스, 뒤브와 데프라즈, 호이어의 조인트벤처는 1969년 크로노마틱(Chronomatic)이라 불리는 마이크로 로터를 가진 크로노그래프 칼리버 11을 내놓았다. 이는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로 같은 해 제니스-모바도가 내놓은 PHC3019, 일명 엘 프리메로(El Primero)와 운명적으로 부딪혔다. 당시 칼리버 11은 진동수 19,800vph, 이를 개선한 칼리버 12는 21,600vph였는데 엘 프리메로는 36,000vph로 성능면에서 더 앞섰다. 전자는 마이크로 로터를 사용했고 후자는 풀 로터를 사용했다. 마이크로 로터의 태생적 이유는 얇은 무브먼트를 위한 방편이다. 무브먼트의 절반을 덮는 센터 로터에 비해 작은 크기로 무브먼트 두께를 감소시킬 수 있지만 대신 로터의 굵기 자체는 두꺼워 이를 넣는 공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때문에 다른 필요한 부품의 위치를 이동해야 했고 결국 무브먼트의 직경을 작게 할 수 없었다. 또한 계속 움직여야 하는 로터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잡아주는 지지대의 확보, 기존의 풀사이즈 센터 로터에 비해 떨어지는 회전력 등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까지는 풀 로터가 보편적으로 쓰이게 됐다. 2010년 제니스는 엘 프리메로의 탄생 10주년을 기념했고, 2011년 태그호이어는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수준을 몇 단계 올려 1/100초까지 측정 가능한 마이크로타이머와 1/1000초까지 측정 가능한 콘셉트 시계인 마이크로타이머 플라잉 1000 콘셉트 크로노그래프를 내놓았다.  

정희경 이미지
글/사진
정희경 | 시계 전문기자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을 전공하고 <노블레스>, <마리끌레르>, <마담 휘가로>에서 일했다. 2007년부터 매년 스위스 제네바와 바젤에서 열리는 시계 페어를 취재해왔고, 2009년 <A Date with Noblesse: Watch Guide>를 기획, 출간했다. 현재 다양한 매체에 원고를 기고하며 시계 전문 기자로 활동 중이다.

'책!책!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스모스  (0) 2015.03.12
모래시계의 원리  (0) 2015.03.12
시간의 심리학  (0) 2015.03.12
시간의 방향성  (0) 2015.03.12
동물 전기의 발견  (0) 201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