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神)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ː신(神)의 빛은 무엇을 말하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생애와 사상은 19세기 미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여러 종교 신비주의 선각자들의 삶과 사상을 거의 모두 담고 있다. 참 신비한 일이다. 케이시는 몰몬교를 창도했던 조셉 스미스(Joseph Smith)처럼 유년 시절에 천사와 만나는 체험을 했고,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영매(靈媒)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또, 케이시만이 보고 읽을 수 있었던 하늘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을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미래 역사관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것이다. (역주: 케이시가 최면에 걸려 잠을 자듯 트랜스 상태에 들어가 이 하늘의 문서들을 읽고 말하는 것을 리딩(reading)이라고 하고, 그 리딩을 받아쓴 기록들 또한 리딩(readings)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어록”이라고 번역한다.)
하늘이 보낸 신비주의자 에드가 케이시는 66세가 되던 1944년 11월 말에, 폐수종(肺水腫)이라는 병을 앓아 유령과 같이 말라 있는 모습을 한 채, 죽음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 옛날에 낚시를 즐겼던 호숫가의 휴양처를 찾아갔다. 다음 해 1월 3일, 전장에 나가 있는 두 아들과 자기 인생의 영원한 반려자였던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둔 채 케이시는 자신이 예언한 이 날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후세의 인류에게 이 지상에 ‘초인[神]의 나라’가 다가오는 우주의 시간대에 대해 미묘하고 신비스런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들의 변화는 1958년에 시작되어 1998년에 끝나지만 그것은 신의 빛이 또다시 구름 사이에 보이는 시기로서 선언될 것입니다.
은빛이 감도는 신기루 같은 미래를 가리키는 이 언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대부분의 케이시 연구가들이나, 서구의 철학과 신학에만 매몰되어 진리의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단지 외곽지대에서만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신의 빛이 또다시 구름 사이에 보이는 시기’를 단순히 자신들이 신앙하는 교조가 재림하는 시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다른 위대한 예언가들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으로 숨길 수밖에 없는 말 못할 속사정으로 인해 그의 순결한 영혼이 우리의 순수의식 속에 아름답지만 희미하게만 그려주고 있는 ‘신의 빛’은 그저 자비로운 신의 모습이 아니다. 여기서의 신은 노스트라다무스나 남사고가 전해 준 공포의 대왕도, 구원의 대왕도 아닌 것이다(물론 인격적인 신은 이를 전후로 하여 내려온다). 이 ‘신의 빛’은 불가사의한(미래의 낙원시대에 펼쳐지게 되는) 개벽 시간대의 신성(神性)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그저 똑같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우리의 무지와 감각이 빚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우주만유의 변화 그리고 인류 문명의 대국적인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큰 비밀도 사실은 시간대의 흐름 속에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모든 생활양태와 인식체계까지도 이 시간대의 속성에서 영향을 받는데, 보통 중생은 이 시간대의 한계성을 초월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즉,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이제까지 이러한 시간대의 흐름에 갇혀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면 시간대의 속성에 얽혀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까지의 어떠한 학문과 종교의 원리로도 해결하지 못했던 이 신비의 극치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이나 가르침은 진정 없는 것일까? 이러한 천지생명의 개벽에 대한 수수께끼는 본서를 끝까지 읽어가면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아! 생각컨대 ‘심판의 날에 열리는 신의 빛’은, 이 시간의 신비를 벗길 수 없었던 한 지성이 토로한 정직한 고백이었으리라. 노스트라다무스가 ‘일곱 번째 큰 수가 다 돌았을 때’라고 한 말과 같이 이 불가사의한 신성이 충만한 천국의 시간대는 새로운 순환의 사이클(큰 주기)이 찾아온 후에야 열리는 것이다. 이 지상 낙원의 시간대는 케이시가 들려주고 있는, ‘또다시 구름 사이에 보이는 시기로서 선언될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도 주기적으로 열린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케이시가 순수한 영혼의 빛으로 바라보았던 이 신의 빛은, 지상에서 대이변이 휩쓸고 간 뒤에 마치 영롱한 아침의 서광과 같이 지상낙원의 시간대에 비치게 될 영성(靈性)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신의 빛이 구름 사이에 보이는 시기’라고 한 것은 새로운 시간대로 막 넘어가려는 찰나, 즉 천지가 개벽운동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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