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오는 전불前佛터에 관한 이야기
삼국유사에는 전불前佛터에 관한 이야기가 4번쯤 나온다.
신비한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한 번 살펴보자.
1. 삼국유사 탑상 제 4
옥룡집과 자장전 그리고 제가의 전기에는 모두 이런 말이 있다.
“신라 월성 동쪽, 용궁 남쪽에는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다. 이곳은 바로 전불 때의 절터다. 지금 황룡사 터는 일곱 절 중 하나
다.”
연좌석은 황룡사 불전 뒷면에 있었다.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돌의 높이는 5, 6척이나 되었으며 그 둘레는 세 발이 되고
그 위는 편편했다. 절이 두 번이나 불이나 돌이 갈라진 곳이 있다. 몽고 침입 이후에 불전과 탑은 모두 불타버렸다. 또한 이
돌 역시 흙에 파묻혀 지면과 함께 편편해졌다.
2. 황룡사 장육
자장대사가 중국에 유학하여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이 감응했는데 이렇게 말했다.
“너희 나라의 황룡사는 바로 석가와 가섭불이 강의하던 곳이며 연좌석이 지금도 있다.”
3. 피은 제 8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에 공부하러 다니던 원효대사의 스승, 낭지 스님이 영취산 혁목사에 살았다. 영취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낭지가 일찍이 말하길 ”이 암자 자리는 가섭불 당시의 절터였으므로 땅을 파서 등항 두 개를 얻었다.“고 하였다.
4. 아도기라
아도화상의 어머니 고도령은 아들이 신라에 가서 불교를 전하기를 권유하며, 전불 절터가 7군데가 있다고 말한다.
“그 칠처 가람은 천경림 금교(흥륜사), 삼천기(영홍사), 월성동 용궁남, (황복사), 용궁북(분황사), 사천미(영묘사), 신유림
(사천왕사), 서청전(담엄사 터)인데 모두 전불前佛의 가람터이니 불법이 앞으로 이곳에 전해지게 될 것이다.”
전불터에 관한 이야기, 너무 신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불터가 어떻게 신라에 있었다는 것일까?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가 한반도에 살았다는 것이고, 석가모니 이전 부처의 거주
처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가섭불 연좌석”이라니. 가섭불이 고대 역사 언젠가 한반도에서 설법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전불前佛은 인류 문명의 발상을 이루었던 상고시대 성인 신선 부처였던, 환인 환웅 단군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본다.
환단고기를 읽어보면, 전불에 해당할 만큼 도적으로 높았던 분들이 배달국, 단군시절에는 즐비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배달국 1대 커발한 환웅은 주문을 외우고 신을 부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배달국 5대 태우의 환웅이 조식 호흡을 했다는 기록
이 있다. 또 동방에는 적송자, 광성자, 자부선인, 유위자, 발귀리 등의 신선이라 불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 분들은 전부 한민
족의 전통신앙인 신교神敎가 아직 유불선으로 분화 이전이라서, 도교적으로 보면 신선이지만 불교적으로 보면 전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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