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小의 비밀

황령산산지기 2010. 2. 10. 10:30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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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소호(少昊)족의 문명이 동이(東夷) 즉 고대한국과 유사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고

사마천의 사기에도 [황제헌원씨]가 소전(少典)의 자손이라 했는데 

지금 중국 꽁정파도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소전(少典)이란 압록강 유역에서 홍산지역을 거쳐서 중국 서안, 함양 지역으로 이동한

고대한국인의 통칭인 것이 더욱 더 드러났다 하겠다.

 

압록강 -> 홍산 -> 서안, 함양

 

 

꽁정파가 요하 유역 홍산문화를 중국고대문화라고 우기더니

이제 탐원꽁정 백두산꽁정 어쩌고 하면서 이제 압록강 유역도 중국고대문명이라 우기는 것 같은데 

어쨌던 그들도 중국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 '실토'한 것은

잘된 일로 본다.

그들에 의해서도 이제 소호(少昊)는 물론 소전(少典)도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겠다.

 

저번 글에도 밝혔듯이 요임금은 소전(少典)의 후예이고 순임금은 소호(少昊)의 후예인데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친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에서 중국으로 문명이 전파된 2갈래 즉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통합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국고대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다 하겠다.

 

물론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본격적인 통합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소호(少昊)족인 순임금이 소전(少典)으로 가서 임금이 되었다는 것은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통합을 시작한다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요순임금의 왕위계승은 후대에 중국이라는 개념의 하나의 나라가 탄생할 수 있게 한 초석이 되었다 하겠다.

 

소전(少典)은 이미 [황제헌원씨] 때 고대한국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나라 즉 독립국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하겠는데  

그 과정에서 [황제헌원씨]와 [치우씨]의 대결이 있었다 하겠다.

[황제헌원씨]는 독립에 성공했다고 보는데 그래서 중국인들이 [황제헌원씨]를 그들의 시조라 칭해오고 있다고 본다.

 

사마천 사기의 주석에 보면 소전(少典)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제후국(諸侯國)의 이름이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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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少典)은 제후국 이름이고 사람이름이 아니다.

( 少典者 諸侯國號 非人名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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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천7백년전 인물인 [황제헌원씨]가 제후국(諸侯國)인 소전(少典)의 자손이라는 얘긴데

그럼 당시 본국(本國) 은 어디인가.

 

중국에서는 [황제헌원씨]를 중국의 시조라 칭해오고 있고

그 이전에는 세상(동북아)에 나라가 없었다는 듯이 '이미지 메이킹'을 해오고 있지만

 

사마천 사기만 봐도 [황제헌원씨] 이전에도 '나라'가 있었다.

 

제후국(諸侯國)인 소전국(少典國)이 있었고 ( 또한 소호국(少昊國)도 있었고)

그리고

본국(本國) 이 있었다.

 

꽁정파도 스스로 밝혔듯이 [황제헌원씨] 부족 즉 소전국(少典國)은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고 

그럼 본국(本國)도 만주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겠다.

 

필자는 고대한국 제3차 중심지를 압록강 유역( 특히 집안, 환인 지역)으로 비정해 왔는데 

위 사실과 일치한다 하겠다. 

 

당시 천제의 나라 즉 본국 즉 고대한국의 임금으로 [치우씨]가 거론되는데 필자는 아직 단정하진 못한다.

[치우씨]는 당시 고대한국의 임금이었거나 아니면 군 총사령관

또는 당시 고대한국의 [서방군 총사령관] 또는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제후국의 왕] 이었던 것으로 본다.

 

[황제헌원씨]는 독립하려했고 그 독립을 막으려했던 [치우씨]

사기의 주석을 봐도 [치우씨]를 중국인들은

 

1. 치우는 제후국 임금이었다. (諸侯號)

2. 치우는 옛 천자다. (蚩尤 古天子)

3. 치우는 구리(九黎)의 임금이었다. (九黎君號蚩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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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으로 설명하고 있고

제후였다는 주장과 천자였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구리(九黎)는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 즉 고대한국의 통칭.

 

어찌됐던 제후국 소전의 자손인 [황제헌원씨] 시대에 이미 [원조 황제의 나라]인 본국(本國)이 있었고

본국(本國)은 [황제헌원씨] 부족의 고향인 만주에 있었으며

꽁정파의 백두산꽁정, 탐원꽁정 등을 보아도 본국(本國)은 압록강 유역에 있었다 하겠다.

 

( 탐원꽁정 : 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으로 압록강 유역을 문명의 발상지로 보는 것.

지금까지는 집안 위 통화 지역을 여명문화(시작하는 문화)라 이름 붙이며 발굴하고 있고 

결국 고대한국 피라미드들이 몰려 있는 [집안]을 노리고 있는 듯.

[집안]은 장군총 등 수많은 피라미드가 있는 곳. - 1만기가 넘는다.)

 

[치우씨]가 당시 고대한국의 최고임금이었던 아니던 간에

분명한 것은 제후국 자손인 [황제헌원씨]가 독립할 때 만주에 본국(本國)이 이미 있었고

그 나라는 구리(九黎) 즉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였다는 것.

 

즉 중국에 '나라'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고대한국은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의 시조라 칭해져 온 [황제헌원씨]가 그 본국(本國)의 제후국의 자손이었다는 얘기가 되니

지난 약 2~3천년간 '천하의 중심'이라 스스로 자부해오던 중국인들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는가.

 

필자는 고대한국인의 후손인 [황제헌원씨]가 대단히 훌륭한 인물이라 보는데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그 [황제헌원씨]가 본국(本國)인 고대한국에서 온 인물이라는 것이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문명의 시조가 만주에서 왔다.

 

사실 이 사실은 예전에도 중국 지식인들이 상당히 많이들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하겠는데

그래서 사실 동북꽁정은 현대에 들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최소한 2천년 이상 계속되어 온 것.

 

중국 사서의 고대한국 관련 기록들이 삭제 축소 은폐된 것 많고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의 압력에 의하여 조선 조정이 전국에 영을 내려서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등 한국고대사서들을 모두 거두어 들인다.

( 소각 또는 창고에 쌓아두고 국민들이 못보게 한 것.) 

 

 한국고대사서는 한국과 일본에 아직도 많다?! <- 관련글

 

이러하듯이 동북꽁정이 시작된 것은 2천년이 넘었다 하겠는데

지금의 한국고대사 밝히기가 이리도 험난한 것은 그 영향 크다 하겠다. 

 

수천년 쌓인 장벽을 뚫고 나아가야 하니.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한국인들 자신이 한국의 태고(상고)역사의 영광을

잘 믿지를 못한다는 것.

 

오랜 세월 중국의 압박을 받고 사대주의 시대도 오래였다 보니 

정신적으로 '한국은 원래 중국의 아래였다'는 듯이 '세뇌' 된 것.

 

수십년 일제치하의 찌꺼기 '친일파 문제'도 문제지만

수천년 중국의 동북꽁정에 의한 '세뇌'도 참 문제라 하겠다.

 

그러나 원래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이고

현대의 동북꽁정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도 준다 하겠다.

이제 세상이 점점 더 개명되다 보니 수천년 이어온 꽁정파는 예전 방식으로는 꽁정이 어렵다 판단하고

아예 만주고대사를 중국고대사에 편입시키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보고

무리한 저기를 하는 것 같은 데

어쨌던 꽁정파의 주장들 즉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왔다, 여명문화(시초 문화)는 압록강 유역이다, 백두산이 중국민족의 영산이다 는 등의 주장들은

어쨌던 중국문명의 뿌리는 고대한국에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쨌던 고마운 일이라고도 볼 수 있고

때가 되니 당연히 벌어지는 일들이라 하겠다.

 

6~5천년전은 최근 10만년 동안 지구기온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 압록강 유역이 고대한국의 중심지였던 것이고 

예를 들어 8~6천년에는 6~5천년전보다 지구기온이 추웠기 때문에

( 1만2천년 전부터 6~5천년전까지 지구기온이 크게 보면 계속 올라갑니다.) 

기온상으로도 문명은 [남도 -> 한강 ->대동강 -> 압록강]으로 전파되었다 볼 수 있고 

실제로 1만5천년전 쌀, 2만년전 신석기 등 최고대 유물은 모두 남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즉 꽁정파가 만주꽁정(백두산 꽁정)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그들은 말하자면 '남한꽁정'은 할 수가 없다고 본다.

동북꽁정만 해도 당황해하는 중국인들도 많은데

'북한꽁정'도 아니고 '남한 꽁정'이라...

 

사실 제발 '남한 꽁정'도 좀 하라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다.

이는 중국고대문명이 남한에서 전파된 것이라는

즉 남한 지역이 문명의 시초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밝히는 것이므로.

 

이리보면 동북꽁정 만으로도 꽁정파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만주고대문명이 전파된 것이 중국고대문명이라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으므로.

 

( 5~6천년 전 문명인 요하 유역 홍산문화가 한민족 근원문화인 것처럼 설명하시는 한국 학자분도 계신데

이는 꽁정에 이용당할 우려도 있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홍산문화는 압록강 유역 고대한국문화의 지류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소전(少典)의 자손이라 전해오는 [황제헌원씨]는 고대한국인의 후손이라 볼 수 있고

따라서 민족적으로도 [황제헌원씨] 역시 우리 한민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치우씨]는 우리편이고 [황제헌원씨]는 남의 편이다' 하는 식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런데 당시 본국인 고대한국 문명의 혜택을 더 많이 받았다 할 [치우천자]의 군대는

당시 중국인들 눈에는 경이적으로 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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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는 노산의 쇠(철)로 병사들을 만들었다." ( 蚩尤受盧山之金而作五兵)

 

" 치우는 형제가 81인 이었는데 짐승의 몸에 사람 말을 하고 

머리는 구리로 되어 있고 이마는 철로 되어있고 돌가루를 먹었고 병장기를 만들었다." 

(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仗刀戟大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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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귀절들은 사기 주석에 나오는 글들인데

 

" 쇠로 병사들을 만들었다.", " 짐승의 몸"  얘기는 [철갑옷]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 머리는 구리로 되어 있고 , 이마는 철로 되어있다"는 얘기는 발달된 [금속 투구]

" 돌가루를 먹었고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철광석을 퍼다가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로 본다.

 

이는 당시 중국땅보다 훨씬 더 발달된 구리(九黎) 즉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

즉 고대한국의 금속문명에 대한 당시 중국 땅에 살던 사람들의 놀라움으로 본다.

 

4천6백여년 전에 고대한국에서는 이미 철과 구리로 갑옷과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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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소전(少典)족은 이미 약 4천6백여년전에 고대한국에서 독립했다 하겠고  

소호(少昊)는 그 후로도 오랬동안 고대한국( 후에는 고조선)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는 소호(少昊)족이 지리적으로 소전보다 한국땅에서 더 가까이 있어서인지 본국인 고대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으로 본다.

 

순임금의 부친은 본국인 고대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들 순임금이 고대한국에서 이미 독립해 나간 소전(少典)의 임금이 되는 것이 탐탁치 않아 반대한 것으로 보는데

그리하여 후대에 중국인들의 미움을 사서 '아버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순임금은 그 부친과 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전(少典)의 임금이 되었고 

이는 후대에 중국이 통일 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겠다. 

 

후대에 거대 중국의 압박으로 우리 한국이 많은 고난도 겪었지만 

본시 명검을 만드려면 수도 없이 두드려야 하듯이 

많이 두드릴수록 명검이 나오듯이 

더욱 훌륭한 한민족을 만드려는 하늘의 뜻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지난 세월 한민족이 받은 고통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현재 한민족은 세계최고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고 (언론 기사)

세계제일의 순발력 적응력 인내심 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즉 대체적으로 그 자질이 세계제일이라 보는데  

이는 숱한 고난을 이겨낸 산물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민 평균 지능지수(IQ) 세계 1위 <- 관련글

 

우리가 수십년간 일제치하라는 수치스런 고난을 겪었지만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독립정신을 더욱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친일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도 많다 하겠는데 

이것도 단지 시간문제로 본다.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인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자들은 결국 그 댓가를 받을 것으로 본다.

그들에게 빨리 뉘우치라 권하고 싶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므로. 

세상에 비밀은 없다.

 

( 필자는 공산독재도 싫어하지만

 외세를 등에 업고 한민족 위에 군림하는 자들도 싫어합니다.

이는 정치적 발언은 아니고 원론적인 발언이라 하겠습니다.)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이 모두 소(少)인데

자신들 부족(또는 국가)의 이름을 함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니  

이들에게 소(少)자는 아주 큰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겠다.

 

소(少)는 무엇인가.

 

소(少) 는 드물다, 귀하다는 뜻.

즉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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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少) - 금문]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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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少) 의 고대한자는 이처럼 [물가(강가)의 소(小)]라 하겠는데 

 

그럼 소(小)는 무엇인가.

 

1,2,3차 삼위태백 (버전3) <- 관련글

 

 

[소(小) - 갑골문]

               

 

위에서처럼 은 갑골문은 점 3개 찍어놓고 [소(小)]라 한다.

점 3개와 작다는게 무슨 관계인가.

 

[소(小)]는 원래는 작다는 뜻의 글자가 아니다.

 

[소(小)]는 원래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의 피라미드가 이집트로도 전파된 것은

이미 많이 드러난 사실이라 하겠다.

 

고대한국계 추정 이집트 왕족들 2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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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小)] - 금문

 

             

 

          

 

위에서처럼 [소(小)]는 뭔가 3개가 서있고

그 앞에서 [자(子)] 즉 젊은 지도자가 하늘의 은혜에 찬양하는 또한 춤추는 모습.

여기서 [춤]이란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춤.

 

한민족 전통의 [어깨 춤]은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앞에서 (아래에서)

젊은 지도자 (하급지도자 : 당하관)들이 하늘에 찬양하고 춤추는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본다.

 

피라미드 위에는 최고지도자들(상급지도자들 : 당상관)이 있었고

피라미드 아래에는 젊은 지도자들이 있었다고 본다.

 

좌우당간(左右堂間)과 서자(庶子)와 산신(山神)  <- 관련글

 

 

[자(子)]란 원래는 아들이란 뜻이 아니고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

 

이러한 뜻이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어

[공자] [노자] 등의 존칭에도 쓰이게 된 것으로 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자(庶子) 환웅(桓雄)]의 표현도 그러한 뜻으로 본다.

 

[서(庶)]라는 말은 지금은 서민 즉 일반사람, 가난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격하됐지만

원래는 피라미드 아래의 젊은 지도자(당하관)를 뜻한다.

 

[서(庶) - 금문]

 

    

 

 위에서 직각돌 모양은 피라미드 아래부분을 뜻하고

ㅂ 자 형은 머리에 2개 깃 또는 꽃가지 등을 꽂은 젊은 지도자를 뜻하는데

지도자의 몸을 그리면서 또한 역시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형상화 하고 있다 하겠다.

 

( 이는 [서자(庶子)]가 아무 피라미드 앞에나 있었던 인물이 아니라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앞에 (아래에) 있던 인물이라는 표현으로 봅니다.)

 

[설문해자]도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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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庶)]는 마룻대() 아래 무리(眾)를 뜻한다.

[서(庶)]는 广 와 炗( 빛 광)이 합해져서 된 글자인데

광(炗)은 원래 광(光)과 같은 글자다.

광(光)은 무리(眾)가 활발한 것을 뜻한다.

 

(屋下眾也 從广炗 炗古文光字 光亦眾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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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도 위와 같이 [서(庶)]가 마룻대 (屋)아래 무리(眾)라 하고 있고

그 무리는 그냥 무리가 아니라 광(炗)즉 광(光)

즉 [빛이 되는 무리]라 하고 있다.

그 무리(眾)가 활발한 것이 광(光)이라 하고 있다.

 

[서자(庶子)]란 고대의 중심 마룻대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아래에 있던 

젊은 지도자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을 [알이(떠오르는 태양같은 사람)] 또는 [알이랑]이라 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도 [서자(庶子) 환웅(桓雄)]께서 수고롭게도 미개한 지역으로 가서 

그 곳의 빛이 되셨으니 [설문해자]의 해석이 틀리지 않다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꽁정파가 '단군조선도 중국 고대사'라 우기고 있는 등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군사도 너무나 탐난다는 얘기. 

단군사에 대한 꽁정파의 연구도 상당히 진척된 모양.  

그들 입에서도 '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다. 역사다.'는 소리가 나올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广 (광)

 

필자는 이 글자를 피라미드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는 모습의

간략형으로 비정해 왔는데 

[설문해자]역시 그와 같은 풀이를 하고 있다.

 

广 은 지금 따로는 안쓰이고 광(廣)으로 쓰인다. 

 

广 = 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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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

 

광(廣)- 殿之大屋也

 

" 전각의 큰 집(屋 : 마룻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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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룻대란 높은 곳을 뜻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조선)

 

설문해자가 설명하는 广 즉 [광(廣)] 즉 전지대옥(殿之大屋)은 후대에는 위와 같이 바뀌었다.

 

그럼 원형은 ?

 

태왕릉 복원도 - (복원전문가 박진호씨 그림)

 

압록강변 집안에 있는 태왕릉.

근거도 없이 고구려 때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대한국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피라미드.

호태왕 방울종이 발견되는 등

광개토대왕도 저 곳에서 [즉위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전 작품 <- 관련글

 

 

 

 

广 은 위와 같은 고대한국 피라미드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는 간략형으로 본다.

 

广 은 지금 따로는 안쓰이고 광(廣)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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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廣) - 금문]

 

      

 

 

 广 즉 광(廣)의 고대형은 위와 같다.

위 형태에서 ㅂ자는 머리에 2개를 꽂은 젊은 하급 지도자를 뜻하는데

 

놀라운 것은 가운데 부분이 동녁 동(東) 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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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東) -  갑골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위에서처럼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 중 하나인 광(廣)자에

동녁 동(東)이 들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피라미드는 동방의 사람 즉 한민족에게서 시작됐다는 뜻. 

 

설문해자는 고대한국인 즉 동이(東夷) 즉 이(夷)에 대한 해석에서

[平也] 라 했다.

 

즉 이(夷)= 평(平)이라 했다.

 

이(夷)는 민족 이름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夷)= 평(平)이라 한 이유는?

 

평(平)은 평평하다는 뜻인데

고대한국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 중 하나.

 

피라미드는 동이(東夷)민족의 것 - 설문해자 <- 관련글

 

 

다시 돌아가서

중국고대문명의 2갈래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이 모두 소(少)

소(少)는 소(小)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가 모두 강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

3한수 즉 한강, 대동강, 압록강 가에.

 

비파형동검과 태극과 3연성 피라미드 <- 관련글

 

[버전2]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 관련글

 

 

근원 원(原)을 보면 

 

 原

 

백(白)의 소(小)

 

고대한국인을 백(白)민 즉 [백(白) 사람들]이라 한 것은 이미 필자의 여러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고대 동방(東方)에 백민(白民)이 살았다. <- 관련글

 

백제의 백(百)도 백(白)이 하늘 즉 ㅡ 에 닿았다는 것.

백(白)의 신성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백(百)

그래서 백(百)은 원래 [모든 것]이라는 뜻.

( 백(百)이 지금 100 으로 쓰이는 것은 [많다] [모든 것] 이라는 뜻의 변형.) 

 

 

 

이 글자는 백(白) 즉 고대한국 지역에 있는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로 볼 수 있다.

이 글자의 广 형태도 물론 피라미드를 가리킨다.

 

즉 근원 원(原)은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가리키는데

당연한 것이 그곳은 당시 정신문명, 물질문명, 정치문명

즉 모든 것의 중심지였기 때문.

 

중국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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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해(황해) 밖 대황(大荒)의 중심에 대인(大人)의 나라가 있다.

대인(大人)의 시(市)가 있는데 대인(大人)의 당(堂)이라 부른다.

준(踆)이라는 대인(大人)이 지도자다."

 

[東海之外 大荒之中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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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대인(大人)의 시(市)]라 한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웅 천왕의 신시(神市)]와 상통한다 하겠고

[대인(大人)의 당(堂)]은 삼국유사 신단수(神壇樹)의 [신단(神壇)]과 상통한다 하겠다.

 

[대인(大人)의 시(市)] = [신시(神市)]

[대인(大人)의 당(堂)] = [신단(神壇)]

 

한국 삼국유사와 중국 산해경의 내용이 상통하고 있다 하겠다. 

 

 

 

이 글자가 지금도 [근원]이라 쓰이는 것은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사마천 사기 주석에도 [황제헌원씨]를 [유웅(有熊)]이라고도 불렀다 하고 (號有熊)

유웅국(有熊國)의 임금이고 소전(少典)의 아들(자손)이다 (有熊國君 少典之子)라고도 하니  

이는 곰토템 [웅(熊)족의 웅녀할머니(여성 지도자)]를 연상케 한다.

 

동북아의 최강 동물이 곰과 호랑이 이므로

곰 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이 많았을 것이고

단군왕검 이전에도 고대한국에서 파견된 [알이] [알이랑]

즉 여러 [환웅 천왕과 그 일행]들이 그들을 교화했을 것이므로

만주에서 건너간 [황제헌원씨] 부족을 웅(熊)이라 한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이 글자의 근본 뜻을 더욱 확실히 하면

 

源 이 된다.

 

도 근원이라는 뜻인데 

 

삼수 변을 왜 붙였을까.

 

필자는 삼수 변이 3한수(漢水) 즉 3아리수(알이수)인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상징한다고 본다.

 

즉 근원 문명이 3한수(漢水)에서 생겨난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1,2,3차 삼위태백 (버전3) <- 관련글

 

원(源)자 뿐만이 아니라 여러 한자들에 흔히 쓰이는 [삼수 변] 자체가 생겨난 원래 이유가

고대문명의 중심이었던 3한수(漢水)를 뜻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차 정리하기로 한다.

 

한자의 근원이 동이(한민족)글자라는 것은

중국학자들도 차차 인정해가는 마당이니

위 주장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하겠다.

 

 갑골문자보다 천년 앞선 동이(한민족) 골각문자 발표 <- 관련글

 

원( )과 원( )의 관계는

제( )와 제( )의 관계와 비슷하다 하겠다.

 

백제(百濟)가 제(齊)가 아닌 제(濟)를 쓴 이유는

한민족 정통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고 본다.

 

백제(百濟)는 왜 백제(百濟)인가.  <- 관련글

 

 

 

위 글자는 [서울 경]인데

역시 [소(小)]가 있다.

 

서울이라면 大 가 들어가야 할텐데

아니면 중심이라는 뜻의 中 이 들어가야 할 텐데

굳이 [소(小)]가 들어간 것은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그런 것으로 본다.

 

즉 원조 서울 즉 중심지는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라는 얘기.

 

 

 

 위의 ㅗ 형상은 피라미드 맨 위의 최고지도자를 뜻하고

口 자는 원래 피라미드의 간략형.

 

피라미드 위에서 하늘의 뜻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입중의 입, 신성한 입]이라 후대에 차차 [입]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고 본다.

 

兄 이라는 글자도 원래는 형, 동생 할 때의 형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을 뜻한다.

즉 고대 당시 중심지였던 피라미드에 있는 지도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자 역시 [세상의 중심]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현대의 한자가 정립된 것은 중국 한나라 때인데

대체로 고대의 모양의 뜻에 충실한 면이 많아서 필자는 고맙게 생각한다.

 

필자는 다른민족이라 해서 배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대한인이라면 홍익인간의 정신 즉 사해동포주의를 근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본다.

 

안중근 의사도 이또를 사살한 이유에 대해서

동양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리했다고 했다.

 

당시 일제의 침략에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했지만

이또를 사살한 것이 단지 그러한 적개심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동양평화 세계평화를 생각해서 불가피하게 그리 한 것이라는 설명.

 

그 때에 비하면 우리 한국도 많이 강해져서

이제 외국이 한국을 함부로 침공할 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 한국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내부의 단결이라 하겠다.

지역화합, 세대화합, 노사화합 등 더욱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내부에 문제가 없으면 외부의 침략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도 있듯이.

 

4×7=27 <- 관련글

 

그런데 [소(小)]가 후대에는 왜 작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을까.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보다

더 큰 피라미드들이 중국 땅에 세워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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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2장 - 유럽에 문명을 전한 [아리안]의 발자취를 찾아 동북아까지 온

독일학자 하우스돌프 등이 찍은 중국 서안(장안), 함양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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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라미드는 중국 서안( + 함양)에 있는 것인데 ( 위 캡처의 경도 위도 참조하세요)

필자가 전에 구글어스로 캡처한 것.

당시 구글어스는 저것을 [피라미드]라고 설명하면서

한 변 길이가 242미터 라고 설명했다.

이집트의 가장 큰 피라미드보다 밑변길이가 더 크다.

- 이집트 대피라미드는 한 변 길이가 230미터 정도.

 

저것 말고도 서안, 함양에는 피라미드가 많다.

100개도 넘는 것 같다.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2010년 2월에 구글어스로 캡처한 사진.

 

이상하게도 구글에서 피라미드 부분에 화면 상 뭔가를 씌웠다.

꽁정파가 구글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

아니면 돌 피라미드인것을 표현하려고 구글에서 그리한 것인지도... 

 

그런데 구글은 여전히 저것을 피라미드라고 하면서 4천년~5천년 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주 서부 요하유역 홍산문화에서는 5~6천년전 피라미드도 발견했다고 중국이 이미 발표했고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따라서 저 피라미드는 만주 사람들이 와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중국당국의 '고뇌'도 짐작할 수 있다 하겠다.

 

그들이 자랑하던 중원문화가 그들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만주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라니...그들은 큰 쇼크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 쇼크를 받은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겠지만.

 

꽁정파가 [황제헌원씨] 부족 즉 [소전(少典)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실토'하면서 

만주꽁정, 백두산꽁정에 열을 올리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일 것.

 

즉 이제 '역으로 선수(어거지)를 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

세상이 개명될수록 그들은 급해진 것.

 

위의 중국 피라미드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보다 더 큰 것으로 본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하는 [소(小)]자가

왜 [작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하겠다.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즉 [소(小)]는

중국에 세워진 대형 피라미드보다 작다는 얘기.

 

중국땅에 더 큰 피라미드가 세워졌으니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는 그에 비해 작다는 얘기.

 

중국땅에 고대한국보다 더 큰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이 

구글의 설명으로 보아도 4~5천년전.

 

서안, 함양의 피라미드들을 세운 사람들은 [소전(少典)부족]일 것인데

홍산에서 이미 5~6천년전 피라미드들이 발견되었으니

시대적으로 보아도 홍산 -> 서안, 함양의 전파가 확인된다 하겠다.

 

 

 

 

홍산 보다 더 이른 시기의 피라미드들은 압록강변 (특히 집안)의 것들인데

시대가 비슷하다.

홍산문화는 압록강변 당시 중심지의 변방문화라 할 수 있다 하겠다.

 

물론 압록강변보다 더 빠른 시기의 피라미드는 대동강변에서 발견될 것이다.

필자는 고구려 장안성 터를 주목하는데

땅위의 것은 없어졌을 지라도

땅아래 기단석은 분명 남아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기단석

 

대동강변보다 더 빠른 것은 한강변에서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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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제 때 것으로 '둔갑' 되어 있는 서울 석촌동 저 피라미드들.

그리고 발굴기록으로 보아도 저것보다 더 큰 피라미드들도 있었는데

지금도 땅 밑의 [기단석]은 남아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꼭이 서울 석촌동 뿐만이 아니라

한강변에는 숱한 피라미드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피라미드들의 [기단석]이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고

그 연대는 8천년 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 땅 곳곳에 8천년 전 고대 피라미드의 [기단석]이

아직도 땅 밑에는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땅을 파다가 넓은 4각형 구조의 기단석들을 발견하면

문화재청 같은 곳에 제보를 하는 것이...

 

진짜 원조 피라미드는 바다 속에. 

 

 

나일강 옆에 있는 이집트 대 피라미드의 원형이 저 지역에 있을 것으로 본다.

저 원조 피라미드는 바다 속에 있으므로 비교적 온전히 있을 것이다.

발견은 시간문제로 본다.

 

마문명 제2중심지였던 부산, 마산, 울산 앞바다에도 상당히 큰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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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인 고대한국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만들겠다고 한 것 중

가장 큰 것이 위 것인데 - 한변 길이 242미터

벌을 받아서인지 한 쪽이 무너져 버렸다.

 

독일학자 하우스돌프가 찍은 사진 중 하나

 

위에 보이듯이 한쪽이 무너져 버렸다.

 

중국판 바벨탑.

하늘의 노여움을 샀다고 볼 수 밖에.

 

꽁정파는 저러한 무너짐을 교훈삼아

진실 앞에 겸허하길 바란다.

 

그대들은 국가에 충성한다고 꽁정을 하고 있겠지만

국가에 충성도 진실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와 화합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짜 충성인 것.

그래야 중국의 앞날에도 좋은 것.

그대들의 조국 중국을 역사왜곡이나 하는 비열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어찌 충성일 것인가.

 

중국이 생존 발전하려면 민주화 개방화를 더더욱 안할 수 없고

차차 제3국 학자들도 중국 땅의 피라미드들을 본격 연구할 것이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역사왜곡 꽁정은 중국을 비참하게 만들 뿐.

 

꽁정파는 진실에 입각해서 진정한 충성을 하길 바란다.

진실 앞에 한없이 겸허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학자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수천년간 스스로 대국이라 칭했던 중국의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사필귀정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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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전체메일 발송 후 며칠안에 상당한 내용이 다듬어지고 보완되기도 합니다.

몇달 후에 다듬어지고 보완되기도 합니다.

내용이 아주 많이 보완되면 [버전 2] 등이 붙어서 새로 전체메일 발송되는데

그런 정도까지 아닌 경우는 새로 공지해드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사람이 쓴 글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고

필자 글들도 부분적인 오류는 있을 수 있다 하겠습니다.

특히 오래전에 쓴 글에 지엽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바로 보실 수 있는 안목을 가져주신다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즉 모든 분들께서 스스로의 안목으로 제 글의 지엽적 오류까지 보실 수 있는

자각을 확립하신다면 저로서도 참 감사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제 글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어지럽히는 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틈나는대로 옛 글들도 다시 손보고 있지만 아직 손닿지 못한 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황해평원문명이 세계고대문명의 원조가 아니겠냐는 주장 자체는 저보다 더 먼저 솔본님이 하셨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나아가 그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확립해 나아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언젠가는 제대로 된 세계고대사가 나와야 할 것인데

필자가 그동안 한국 고대사를 보다보니 황해평원 마문명과 후대의 한반도 한문명(환인문명)이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고대문명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이 계속해서 더욱 더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즉 한국 고대사를 소중히 캐다 보면 세계고대사가 저절로 밝혀지는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필자의 글을 많이 읽어주신 회원님들께서는 대체로 어느 정도 이상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본 카페의 회원님들께서는 지역, 나이, 종교, 국적에 상관없이

그냥 그저 한국고대사를 알고자 모이신 분들이시고

본 카페는 계속해서 끝까지 그냥 순수한 한국고대사 밝히기 카페일 것입니다.

 

제가 한국고대사를 보는 이유는 그냥 저 스스로 좋아서이고

대한민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필자(운영자)가 지난 수개월 이상한 상황이 엎치고 덮쳐서 글들을 거의 못 쓴 것을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역시 한국고대사 밝히기는 많은 방해공작을 뚫고 나가야 하는 모양입니다.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밝히자면

필자가 한국고대사 카페의 카페지기이고 운영자입니다.

 

필자 이외의 운영자가 있어 본 적 없습니다.

어떤 분도 운영자로 위촉한 적 없습니다.

 

한국고대사 카페는 항상 카페지기인 필자 혼자만 운영자였습니다.

 

어떤 분에게도 운영자 위촉을 안한 이유는 예를 들어

'혹시나 약주라도 한 잔 하시고 잘못 누르시면 자료 다 날아가는' 상황을 우려해서입니다.^^;

'운영자가 2인이 되면 1인일 때보다 자료 다 날아갈 가능성이 2배가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 혼자만 운영자로 있었습니다.

 

필자가 청룡백호 고견원려왈지 흐르는강물처럼 등 여러 필명으로 글을 써 왔지만

[밝은 앞날] 붙어있는 것은 모두 필자의 글입니다.

각 글들이 필명이 다르더라도 글쓴이의 [회원 정보]를 눌러보시면

모두 동일인임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자료는 필자가 스스로 찾아서 글을 써 왔습니다.

3번 정도 회원님들에게서 자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덕은 음덕이 크다는 생각에 (좋은 일은 남모르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에)

그 회원님의 필명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자료를 받으면 그 사실과 그 분의 필명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한국고대사 밝히기는 대단히 신중하고 섬세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면 갈수록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소중한 유물을 발굴할 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 유물이 손상되지 않게

소중하게 발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한국고대사 밝히기는 결국 방대한 분야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방대한 분야를 관통하고 종합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회원님들의 성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하겠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원대한 계획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성의있게 카페운영을 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댁내 평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高百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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