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 글

[스크랩] 검은 아테나, 피라미드...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35

 

팔라스 아테나 Pallas Athena (1898)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작

75 x 75 cm, 캔버스에 유채

빈시 역사박물관, 빈

 

  업데이트가 또 늦어지네요...일단 신문에 난 좋은 정보라도 올려봤습니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책 "블랙 아테나"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그리스도교와 함께 유럽 문명의 양대 뿌리라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나 페니키아 등의 오리엔트 문명에서 비롯되었으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내용이지요... 

 

  "그게 뭐가 새로운 사실인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포함한 4대 문명이 먼저 탄생했고 그리스 문명도 그것을 기초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거야 학교에서 배우는 상식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가 배운 세계사 - 바로 19세기 유럽에서 정리된 세계사 - 에  따르면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과는 아주 차별화되는 문명입니다. 오리엔트 문명은 신본주의적이고 전제군주적이며 신비롭고 비합리적인 반면에 그리스 문명은 인본주의적이고 민주적이며 합리적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고대 이집트와 고대 그리스에 대해 각각 떠오르는 이미지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고대 이집트 하면 황금빛으로 치장한 파라오 앞에 엎드려 있는 노예들이 떠오르는 반면, 고대 그리스 하면 광장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이 과연 진실일까요? 과연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과 그토록 달랐을까요? 그것에 대해서 이 책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도 읽어볼 생각이에요. 흥미가 갑니다.

 

  이 책에 대한 기사를 보니 저는 몇 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어요. 피라미드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였죠. 우리가 피라미드 건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수많은 노예들이 감독이 휘두르는 채찍을 맞아가며 거대한 돌을 나르고 때로는 돌에 깔려죽고 하는 장면이 아니던가요?  단지 파라오의 무덤을 어리석을 만큼 거대하게 짓기 위해서 말입니다. 얼마 전 DHL 광고만 보더라도 이런 고정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죠...

 

  그러나 그 다큐멘터리에서 이집트 학자들이 발굴해낸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작업 일지를 보면 일꾼들이 생일이라고 쉬고 어젯밤 과음했다고 쉬고 뭐 그런저런 이유들로 곧잘 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피라미드의 건설 인부들은 채찍을 맞아가며 비참하게 일하는 노예들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그 다큐멘터리는 또한 피라미드 건축이 나일강이 불어났을 때만 이루어졌다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즉 불어난 나일강의 물을 사용해서 손쉽게 돌을 운반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없음을 그 다큐멘터리는 강조합니다.

 

  이 모든 점들을 종합해서 그 다큐멘터리에서 이집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피라미드 건축이 일종의 경기 부양 공공사업이었다는 것이죠.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불어났을 때 농토가 물에 잠겨 할 일이 없는 농부들에게 일자리 창출을 해주기 위해 피라미드 건축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일강의 불어난 물을 이용해 돌을 쉽게 나르면서요.

 

  물론 이 가설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이 가설을 보면 고대 이집트인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뒤바뀌지 않나요? 단 한 사람인 파라오의 알 수 없는 사후 안식처를 위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면서 낑낑거리고 돌을 나르는 어리석은 모습에서 근대 미국의 뉴딜정책, 현대 한국의 일자리 몇십만개 창출 정책을 능가하는 공공부양정책을 구사하는 현명한 모습으로 바뀌잖아요! 어쩌면 사후세계에 집착하는 전제군주의 나라라는 고대 이집트의 이미지는 그것을 고대 그리스와 대비시키고자 한 19세기 유럽 학자들의 왜곡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역사적 이미지들에 대해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아래 "블랙 아테나"에 대한 기사를 참고하시고요...

 

 

[중앙일보 BOOK기획리뷰] “그리스 문명 뿌리는 이집트” 논증 …

서양사 뿌리째 흔들다

 

블랙 아테나
마틴 버낼 지음, 오흥식 옮김
소나무, 880쪽, 3만원

 

  1987년 출간돼 서양 문명과 역사학의 뿌리를 뒤흔든 논쟁적인 책이다. 책 제목의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수호 여신. '블랙'을 붙인 이유는 아테나 여신이 본래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이집트 문명, 더 나아가 고대 페니키아를 포함하는 오리엔트(동방) 문명으로 올라간다는 주장을 압축한 표현이다. 저자는 고대 오리엔트인들이 그리스 땅을 수백 년 동안 식민 통치하면서 선진 문명을 전파해 미케네 문명의 싹을 틔웠음을 고증해 낸다. 이런 사실은 적어도 1820년대 이전의 유럽인에겐 상식이었다고 한다.

 

  책의 부제는 '날조된 고대 그리스, 1785~1985'. 저자는 유럽 문명의 뿌리에서 이집트와 오리엔트 문명을 거세해 온 19세기 이후 유럽 역사학계의 '집단 범죄'를 폭로하고 있다. 집단 범죄의 배경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있다. 근대적 휴머니즘.민주주의.철학.과학 등의 뿌리를 그리스 헬레니즘 전통에서 찾아 내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유대계 영국인으로 현재 미국 코넬명예교수인 저자는 "유럽의 문화적 오만을 줄이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될 예정인데, 1.2권은 미국에서 출간됐고, 3.4권은 집필 중이다. 이번 한국어판은 1권을 번역했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BOOK기획리뷰] 학문에 똬리 튼 ‘가짜 신화’

유럽중심주의 해부
유럽은 동방보다 우월한 문명 꽃피웠다 ?
고대 도시국가 아테나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 원래는 이집트의 네이트 여신이 뿌리라서 검은 색깔의 ‘블랙 아테나’로 출발했고 동방문명의 흔적이 짙으나 나중에 ''흰둥이''로 둔갑됐다.

 

  부자가 되면 족보부터 만든다던가? 유럽의'역사 만들기'도 그런 혐의가 짙다. 당신이 혹시 학교시절에 "찬란한 유럽문화사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고, 로마시대의 영광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배웠다면, 이제 그것을 의심해볼 때가 됐다. 문제작 '블랙 아테나'(마틴 버낼)의 출현 때문이다. 그 책은 그리스 문명의 뿌리는 아프리카.아시아 등 동방문명이라고 폭로한다. 엄연한 이 학술서의 저자는 놀랍게도 유럽인. 주타격 목표는 유럽중심주의라는 가짜 신화다. 18세기에 급조된 '유럽중심주의 족보'를 들여다봤다.


  문제가 되는 유럽중심주의는 민족중심주의의 한 변형이다. 민족중심주의란 자신의 민족.종교.언어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다른 민족이나 문화를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흔히 벌어지는 '타자(他者) 길들이기'의 방편이다. 문제는 그 중심주의가 서로간의 차이를 우열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중화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중화주의와 비교해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유럽중심주의는 19세기 중엽 이후 그들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했다는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유럽중심주의는 제국주의 시기의 한 세기 이전인 18세기 후반에 이미 체계적인 틀을 갖추었다. 인식이 사실에 선행했던 것이다. 아니 그런 인식이 유럽 중심의 세계를 빚어내는 데 기여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17세기 말까지도 유럽 정체성의 기반은 기독교. 16세기 이후의 이른바 팽창의 시기에 유럽이 타자에게서 발견한 것은 그런 정체성을 반영하는 차이였고, 왕왕 우월감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오히려 열등감의 표현이기 십상이었다. 18세기 중반 이후 중심주의에 변화가 나타났다. 유럽 서북부는 스스로를 '문명'으로 인식하고 자신만이 '근대성'을 이룩하는 '진보'를 성취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우월성을 과거에 투사했다.

 

  스스로 고전문명의 유일한 상속자로 자처하면서 과거의 주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역사없는 족속'이고 아시아는 한때 고도의 농경문경을 가졌지만 이제 '정체'되었으며, 그러기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킨 자신만이 '역사'를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계몽사상은 진보를 발명했다고 하나 사실은 '후진성'을 발견한 것이다. 또 문명과 보편주의의 이름 아래 비유럽세계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더욱이 유럽중심주의는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통합과 배제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유럽중심주의가 비유럽인들에게조차 고질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학문이라는 휘광과 무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을 전후하여 유럽의 전통적인 대학은 근대 대학으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근대 분과학문 체계의 거소(居所)가 됐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심지어 자연과학조차 유럽중심주의를 거대한 지적 체계로 재생산했다.

 

  전통적으로 통치자의 학문이었던 인문학은 이제 국민적(유럽적) 정체성의 관리자가 되어 역사학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한 유럽만을 다루고 유럽 탄생 이전의 과거를 독점하기 위해 고전학이 틀을 잡았다. 역사없는 족속들은 인류학의 대상이 되었고, 동양은 오리엔탈리즘의 포로가 됐다. 학문이 권력관계의 반영임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제 그것들은 유럽의 세계지배를 정당화하는 체계적 지식을 제공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도처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패권이 무너졌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는 대안적 질서로 이어지지 않고 미국의 패권으로 대체된 것이었다. 유럽중심주의는 서양중심주의라는 더 정교한 체계로 바뀐 것이다. 그것을 파열시키기 시작한 계기는 1968년의 혁명이었고, 비서양 지식인의 등장이었다. 1968년 혁명은 서구근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서양 지식인들은 대안적인 지식의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마침 번역 출간된 마틴 버널의 '블랙 아테나'나, 프랑크의 '리오리엔트', 또는 조셉 폰타나의 '거울에 비친 유럽'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중심주의는 아직도 굳건하며, 구미의 세계지배를 뒷받침하고 있다. 학문은 축적된 지식체계로서 문서창고이자 도서관이어서 기후의 변화처럼 현실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권력관계의 변화만으로 유럽중심주의가 바뀌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제 적지 않은 비서양권의 나라들이 지식의 체계적인 축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고, 예컨대 인도의 역사학은 이제 대안적인 역사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의 경우는 다소 복잡하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제3세계로 치부되기 어려운 성취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제국주의 지배를 당했고 유럽중심주의의 아류인 식민사관.정체사관.타율사관의 폐해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의 사학계가 절치부심하여 제시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유럽중심주의의 논리를 재생산하였으니, 그것의 극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식민사관이 우리의 경제성장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식민지근대화론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과연 현실의 변화만으로 학문적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의 성취가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무디게 하고 있어,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을 동남아인들에 대해 역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극복의 방법은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학문재생산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유럽이 밟아 온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음을 구성해 내는 일, 이것이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

출처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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