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0대 “50대 남성이여, 변화에 유연히 대처하라” 직장에서는 “여자 상사도 모신다”… 가정에서는 가사와 자녀 교육에 앞장서겠다는 각오해야 | |
한국 남자 50대. 이미 퇴직을 했거나 혹은 운 좋게도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을 연령이다. 기업에서 강연을 하는 필자는 주로 기업의 현장에서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되어 있는 운 좋은 분이나, 전문기술을 가지고 생산현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 40대 후반에 퇴직을 한 다른 남성에 비하면 그런대로 행복한 남성을 만나고 있다. 강연이 끝나고 나면 대체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내년이면 곧 나가게 되는데 뭐 하면 제일 안전하게 돈을 벌까요?” 두 번째 질문은 “제 아내가 음식솜씨가 좋은데 어떤 음식장사가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똑같다. “원장님 남편 되시는 분은 정말 행복하겠어요. 얼마나 좋아요, 부인이 돈 잘 벌어서. 나 같으면 업고 다니겠네.” 한국 남자가 언제부터 사회생활하고 돈 버는 여자를 좋아했을까? 대체로 한국 남성, 특히 한국에서 1950년대에 태어나 가장과 생계부양자로서의 교육을 받아온 남성은 죽으나 사나 역시 바깥일은 남성의 몫이고 여자는 집안일, 애들 교육, 내조나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 무엇일까? 90살로 치닫는 수명연장 시대에 ‘가정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현실과 불편한 타협을 한 결과라 보여진다. 이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 처지는 참으로 안타깝다. 과거 그들이 살아온 형태와 습관을 부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뼈아픈 법칙이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적용되고 있다. 우선 직장에서는 새로운 인력과의 적응에 몸부림을 쳐야 한다. 여성, 외국계 학력취득자, 신세대 등 다양한 인력과 부딪히며 매일 자신의 다양성과 유연성을 시험 받는다. 여기에서 통과되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인다. 한국에서 50년 이상을 남자로 길러진 이들은 이 땅의 남자, 즉 아들에게 강요했던 ‘남자다운 유전자’를 고스란히 보유하며 살아왔다. 생각이 유연할 수 없다. 군대 같은 직장 분위기에서 길러온 본능적인 서열 감각과 사수ㆍ부사수로 이어온 끈끈한 남자끼리의 전우애는 너무나 견고한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얼마 전 부산으로 3일 일정 강의를 갔을 때의 일이다. 임원 몇 분과 저녁식사를 할 때 한 임원 왈, “원장님, 이렇게 3일씩 밖에서 자고 다녀도 남편이 뭐라고 안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황당하다. 자고 다니다니? 그날 만난 임원은 아무 생각과 눈치도 없는 분인 듯 “그럼 남편 밥은 누가 해줘요?”라는 질문까지 했다. 여성 인력에 대해 아무리 인력으로 보라고 해도 결국은 ‘아직 밥 누가 하나?’가 기어코 궁금한 50대 남성. 10여년간 임원을 많이 모셔본 한 직장 여성은 “그분들은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이라는 분석을 했다. 50년 이상 한국에서 생계부양자요, 가장으로 살다 보면 ‘밥을 누가 하나?’가 정말 궁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조직에서 30% 이상의 여성과 일을 해야 하는 남성 관리자들. “여자 상사와 일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는 40·50대 남성에게는 생존을 위한 유연성이 리더십의 필연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직에서 새로운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따라가느라 진땀을 빼는 그들을 보게 되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들의 30대 때는 상사의 즉흥적인 술 제안을 거의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술 한잔 하지, 오늘 별일 없지?” 이런 상황에 “아니요” 대답 한번 못하고 아내의 결혼기념일까지 포기하면서 온갖 술자리를 따라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상사의 느닷없는 술 제안에 젊은 세대가 보이는 반응은 “부장님, 그런 것은 2주일 전에 미리 컨펌(confirm)하셔야 되는데요”다. 후배에 이끌려 마지못해 따라간 와인바에서 나오면서 “어디 가서 소주로 입가심할까?”라고 던지는 쓸쓸한 한마디 속에 50대가 조직에서 겪고 있는 변화에 대한 본능적 저항과 비애가 느껴진다. |
가정에서는 어떠한가? 아마도 10명 중 9명은 가정에서 더욱 쓸쓸한 경험을 하지 않을까? 한국 남성은 밤 10시 이전에 귀가하면 가족들이 “왜 이리 빨리 들어왔냐”는 반응을 보일 만큼 직장에 올인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정력적으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겪는 50대의 충격은 남성으로서, 남편으로서 사는 정체성에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낸다.
남자는 40대가 넘으면 여성 호르몬의 증가로 인해 감수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자꾸만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별로 벌어놓은 돈도 없고, 애들은 아버지랑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 같고, 아내는 너무 바쁘게 잘 사는 것 같고…. 가정이란 공간은 이미 자신이 들어설 자리도 없는 매우 어색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란 이름으로도, 남편이란 이름으로도 무엇 하나 자신 있게 내세워 가족으로부터 환영 받을 만한 공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참에 사회에서 불리는 명함의 직함 한 줄마저 사라진다면 심리적 공황 상태에 이른다.
선진국의 퇴직 남성에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답한다. 한국 남성에게 물어도 역시 같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아내의 반응이다. 한국 아내에게 “노후에 누구와 여행을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명이 다 “친구들과 가겠다”고 답한다. 평생 남편과 즐겁게 여가를 보내는 것이 훈련돼 있지 않은 아내는 이제 습관적으로 남편과의 시간을 남편보다 더 어색해 한다.
이 땅의 50대 남성은 이제 직장에서의 시간보다 ‘가정으로 돌아온 이후의 삶’이 갖는 가치와 질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이미 가정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잘 훈련된 아내는 오히려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50대 남성은 아이 숙제도 봐주고 운동도 함께 하는 일명 ‘육아’라 불리는 가정 활동과,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된장찌개에 두부를 썰어 넣어주는 일명 ‘가사’라 불리는 활동을 경험하고 학습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거의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숙련도를 보인다. 분명 알아야 할 것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서 가사와 육아를 빼면 할 일이 없다. 대체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아버지들을 보면 이런 가정 활동에 익숙한 남성이다.
평생을 일만 하면서 살아온 한 50대 남성이 친구의 잇단 죽음을 접하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난생 처음으로 긴 휴가를 계획했다. 열흘간의 유럽여행 티켓을 준비해 그간 소홀했던 가족에게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족에게 티켓을 공개하자 아내는 “당신 바쁘다고 해서 두 번이나 혼자서 애들 데리고 갔다 온 곳을 왜 가느냐”며 화를 냈고, 둘째 아들은 “중간고사 기간”이라며 “오히려 관심 좀 가지시라”는 말을 했고, 대학생 큰아들은 “이제 가족여행은 재미없다”며 “돈으로 달라”고 했다 한다. 거실에 덩그러니 티켓과 함께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모습은 이 남자만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죽어라 일만 해온 우리 50대의 모습이다.
이제 50대 남성은 명함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연인으로서의 정체성, 행복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명함을 반납한 퇴직 후에 자연인 아무개의 경쟁력은 과연 있는 것인가? 50대 이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시점이다.
김미경 W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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