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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깼더니 부활이 왔습니다"

황령산산지기 2006. 4. 14. 12:37


“‘나’라는
이 완고한 돌문을 열리게 하옵시고
당신의 음성이 불길이 되어 저를 태워 주십시오.”

박목월(1916~1978) 시인의 시 ‘부활절 아침의 기도’ 중의 한 구절이다. 부활절(올해는 4월 16일)이 되면 그 많은 시구 중에 이 구절이 기도문처럼 떠오른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자신을 여는 일로 출발해서 삶의 온갖 장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삶의 너름새와 자유를 체험하기 위해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리라.


부활주일에 미주가 부활계란을 바구니에 담아 집을 찾아왔다. 몇 해 전 졸업한 그는 내 수업 중에 느닷없이 울어버려 친해진 사이다.


“부활절이 다시 왔구나.”


미주는 밝아 보였다. 미주가 졸업반 시절 ‘시에 나타난 가족의식’에 대한 강의 중에 질문을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려 연구실로 불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들은 이야기다. 오빠는 아버지의 아들이고 자기는 어머니의 딸인데 늘 집안에는 충돌의 파도가 넘실거렸다. 미주는 새아버지와 오빠, 어머니까지 늘 한패고 자기만 유독 혼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집에 있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일기를 보게 되었고 내친김에 아버지의 일기장도 고의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미주가 놀라웠던 것은 새아버지도 혼자인 것 같다는 외로움의 표시가 너무 많이 눈에 띄었고 어머니는 거의 전부가 사막에 혼자 있는 느낌이라고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생님도 혼자라는 느낌 아세요?”


아마도 미주는 선생은 화려하고 사랑에 넘치게 사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라는 말에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부글거렸지만 무슨 고백이나 연설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다음해 부활절에 미주는 카드 한 장과 부활계란을 가지고 왔다. 그의 카드에는 ‘혼자라는 느낌을 트고 함께라는 의식으로 끌어 올리니 부활이 왔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미주에게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부활의식은 반드시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어 가장 자신이 하기 힘든 벽을 허물어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활이라는 종교적 해석이 우리 삶의 가난하고 복잡한 변두리에 와서 저마다의 무너진 현실에서 눈을 뜨게 하고 정신적으로 일어서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가운데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나를 부수고 우리라는 공동체로 이끌어 올리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부활의 힘이 아니겠는가. 생활 속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저마다의 작은 인내도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일이며 곧 그것은 부활에 한 발짝 다가서는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부활은 무겁고 거대한 것이 아니다. “이리와!”하고 우는 아이를 거리에서 안아주는 일, “미안해”하면서 마음을 열어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 필요를 느끼는 사람에게 몸을 움직여 걸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사소한 일들의 작은 마음에서 부활은 눈을 뜰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부활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탄생이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에 있고 부활이 모든 생명이 꽃피는 계절에 놓인 것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는 일일 것이다. 세계 속에는 위기촉발의 화약 냄새와 총성이 울리지만 세상에는 눈부신 꽃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피어나고 있다. 박목월 선생님의 시처럼 완고한 돌문을 열고 나와 그분의 목소리로 나의 자만과 이기심을 불태워 지지는 화형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조용히 부활사랑으로 타오르기를 빈다.


미주가 해묵은 상처를 지우고 자기의 가정의 균열된 벽의 틈을 인내와 희생의식으로 메워 사랑의 터를 넓히는 그 공간에 부활의 축복이 모든 이를 치유하는 봄비처럼 적시기를 기대해 본다.


신달자 · 시인 · 명지전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