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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대화가 필요해요

황령산산지기 2006. 1. 14. 23:08

아버지는 어쩌다 아들에게 묻는다. “너 노래 잘 하냐?” “너 밖에선 말 잘 하냐?” 같이 노래방에 가보고 차 한잔 마시면 알 수 있는데도 묻기만 한다.

아버지는 가끔 딸에게 말한다. “일찍 일찍 다녀라” “결혼하면 이제 우리 식구 아닌거다” 애지중지 키웠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매몰차게 해 버린다.

아버지의 화법은 그랬다. 살가운 대화법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고,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랬다. 아버지는 외롭지만 외롭다고 말하지 않고, 미안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래서 늘 숨겨져 있고 아주 가끔 언뜻언뜻 비칠 때만 볼 수 있다.


연극배우 조영선(52·극단 민예 소속)도 그랬다. 감칠맛 나는 연극대사는 익숙하면서 가족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엔 인색한 한국의 아버지다. 어쩌다 가족 넷이 모두 모이면 “오랜만이다”라고 말하는 아버지, “같은 얘기 5분 이상 하면 부부싸움만 난다”고 생각하는 남편. ‘배고픈’ 연극배우인 탓에 고생만 시켰던 아내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고, 용돈 넉넉히 주지 못한 두 아들에겐 “미안하다”고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가족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연기 생활 30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극은 30년간 단역만 해온 배우의 이야기, ‘삼류배우’다. 30년간 원했던 ‘햄릿’을 맡게 됐지만 공연 직전 역을 뺏기고 ‘배우1’역으로 밀려난 주인공은 공연 뒤 가족을 위한 눈물의 연극을 펼친다.

실제 배우 자신의 이야기가 겹친 까닭에 연극 ‘삼류배우’는 조영선씨 가족에게도 깊은 감동을 줬다. 평소 남편 연극을 잘 보러 오지 않던 부인 백현옥(49)씨는 이 극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고, 평소 얼굴만 비치고 가던 두 아들도 아버지를 꼭 껴안아줬다. 배우 조영선은 30년 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통해 가족들의 피부에 가 닿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한국의 아버지를 대신해 대화컨설턴트 이정숙(‘유쾌한 대화법’ 저자)씨에게 ‘대화법’을 전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