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ay!!!

시 한편 읽어 보세요!!!

황령산산지기 2005. 11. 15. 22:57

들녘 그리고 아버지


흙 속에 힘을 풀고
힘줄로 자식들을 묶고 끝내,
가을 끝에 묻힌 아버지

들녘은 바람을 풀어
근육질 시간을 재웁니다

그렇지요, 사람들은
조금씩 닳아서
무덤만해지면 비로소 눕습니다
생이란 뭉쳐놓으면 노래 한 소절보다 작습니다

추억을 으깨 외딴 집에 불을 지피니
눈물납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아버지가 오십니다



-김택근의 시 ‘가을엔 아버지가 오십니다’-

아버지는 오직 자식들만을 생각했습니다. 집보다 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가 철이 들었을 때는 아버지가 너무 늙어 있었습니다. 힘을 모두 쏟아내고 오직 힘줄만 남은 듯한 팔뚝으로 낫질을 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가을 벌판에 서면 세상을 뜨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바라보면 눈물납니다. 결코 바람 탓이 아닙니다. 가을이 끝날 때 쯤이면 낫을 들거나 지게를 지고 아버지가 오시는 듯합니다. 해마다 가을이 오듯이, 가을이면 아버지가 오십니다.


<김택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