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결혼
시골 헛간에서 벌어지는 혼인잔치가 흥미롭다. 잔치가 막 시작됐고, 식탁에 앉은 사람은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파란 휘장 밑에 수줍어하는 신부가 앉아 있는데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오른쪽에서 음식을 게걸스레 먹고 있는 이가 신랑일 것으로 추측된다. 철없는 신랑이 분위기를 망치고 있지만 그래도 모두 흥겨운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
피터 브뤼겔이 시골의 잔치 풍경을 통해서 밝고 쾌활하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고 평가받는 그림이다. 브뤼겔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그리면서 정돈된 모습으로 화면을 구성해서 그림 안의 인물과 정경의 일체감을 만들어냈다. 식탁을 원근법적 방식으로 배치하고, 등장인물의 흐름에 통일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림을 보는 우리 시선이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는 입구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있는 악사들을 거친다. 그 후 왼쪽 아래에서 술을 따르는 사람과 접시에서 음식을 긁어 먹는 아이로 이어지고, 끝으로 음식을 나르는 두 사람과 음식이 놓인 상에서 모인다.
바쁘지만 신이 난 두 사람의 동작으로 잔치 풍경이 한결 쾌활해 보인다. 음식을 매개로 다시 잔치 식탁과 식탁 위의 사람들로 연결되는 순환형의 구조가 되면서 그림 전체의 통일성이 두드러진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풍속화의 거장으로 불린 브뤼겔은 주로 농민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상류층의 생활보다 시골의 소박하고 쾌활한 생활 속에서 가식적이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였다. 브뤼겔의 이런 그림이 계기가 돼 북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도 인간의 삶을 다룬 다양한 주제의 풍속화들이 제작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거리두기 일환으로 결혼식장에서도 ‘하객 49인, 식사 미실시 99인’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 다른 집회가 방관되는 데 비하면 방역수칙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예비부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기쁜 출발의 날이어야 할 결혼식인데.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시골 결혼잔치 그림을 바라본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 미학
'그리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움에 대해 (0) | 2021.10.03 |
---|---|
그날 그리워 (0) | 2021.10.03 |
오늘도 그리움 한짐 지고 갑니다 (0) | 2021.08.22 |
참 보고 싶다 (0) | 2021.06.20 |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0) | 2021.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