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보다
새벽부터 일한 사람은 훨씬 많은 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포도밭 주인은
세상 상식과는 동떨어진 별난 사람이다.
더 이상한 것은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새벽부터 일한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주고 싶다고 한다.
일을 조금밖에 못 한 일꾼도,
최소한의 일당을 받아 가족들 먹거리를
손에 들고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기간에 가장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그 성장의 바로 한 발짝 뒤에는 심각한 양극화가 따라붙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고 하나, 취업 인구의 36%가 비정규직이고
그 비정규직이 얼마나 홀대를 당하는지는 여러 업종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지난 7월
보안업무에 종사하던 2천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히자,
각계에서 상당한 반발이 이어졌다.
공사의 정규직 직원들이 자신들은 힘든 준비 과정과 어려운 입사 시험을 거쳐 합격했는데,
비정규직이 이러한 선발 과정도 거치지 않고 하루아침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정규직 취업 준비생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당한 절차 없이 ‘정규직’ 타이틀을 획득한 것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또 지난 7월 정부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의 단계적 증원을 발표하자
이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비등했다. 찬성 측은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대가 불가피함을 강조했고, 반대 측은 도시지역 의료인력이 이미 공급 과잉이라고 맞섰다.
의사들은 진료를 거부하며 반대했고, 의과대학생들도 의사국가시험에 불참하며 반대했다.
도농 간의 의료인력 공급 불균형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의사만 늘리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의료계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의대생들이 국가시험까지 거부하며 강하게 반발한 이유는 공공의대 학생 선발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었다.
기존의 의과대학생들은 모두 고교 졸업까지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피나는 노력과 경쟁 끝에
전국에서 최고 수준의 수능 등급에 진입하여 겨우 합격했는데,
이런 과정과 무관하게 지방정부 수장이나 사회단체의 추천을 통해 의대에 입학하게 된다면
말도 안 되는 불공정한 선발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성적순으로 우수한 사람을 뽑지 않으면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 성적만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공정일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주로 암기력과 이해력에 의존하는 일이다.
지능이 뛰어난 사람은 책상머리에 오래 붙어 있지 않아도 시험을 잘 본다.
또 지능이 뛰어나지 못해도 훈련과 반복으로 비슷한 시험문제와 해답의 유형을 익혀
높은 점수를 받는 이들이 대다수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지능의 보유자도 그 지능을 자신이 설계하고 일해서 만들어냈을까?
또 훈련과 반복을 통한 교육의 과정과 여건도 부모와 스승이 마련해준 것이지 자신이 개척해낸 것이 아니다.
높은 시험 성적을 얻었다면 공짜로 주어진 능력과 기회에 감사는 해도 자랑하거나 뽐낼 일은 아니다.
더구나 시험 성적 불과 몇 점 더 받았다고 해서
그 성적만으로 평생 다른 사람보다 윗자리에 서고 비교도 안 되는 높은 보수와 혜택을 보장받는 것이
공정일까?
예수님은 아주 별난 포도밭 주인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이 주인은 새벽녘에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만나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주기로 하고 포도밭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 주인은 9시, 12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도 장터에 나가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이들에게
정당한 삯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주인은 관리인에게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주라고 시켰다. 오후 5시에 온 이들부터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맨 먼저 온 이들이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러자 그들은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이에 주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오후 늦게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보다
새벽부터 일한 사람은 훨씬 많은 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포도밭 주인은 세상 상식과는 동떨어진 별난 사람이다.
이 주인은 한 번도 아니고 하루에 여러 번 장터에 나가 우두커니 하늘만 쳐다보는 이들을 일터로 보냈다.
일자리 못 구한 백수들이 걱정되어 도저히 집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이상한 주인이다.
더 이상한 것은 맨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새벽부터 일한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주고 싶다고 한다.
‘데나리온’이란 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었다.
생각해보면 장터에서 하는 일 없이 서 있는 품팔이들이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서 우두커니 서 있었을까?
각자 사정이 있어 늦게야 나타나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은 병중의 가족을 보살피느라 늦게 나왔을 수도 있고,
자기가 아파서 늦게 나왔을 수도 있고, 도중에 길바닥에 쓰러진 행인을 돌보다가 늦었을 수도 있다.
포도밭 주인은 이런 사정을 아는 듯, 일을 조금밖에 못 한 일꾼도, 최소한의 일당을 받아
가족들 먹거리를 손에 들고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시는 공정이다.
나는 회의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에 간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시내 한 구역을 지나는데 광장에 군중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모두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이 많은 이들이 거리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내자에게 물었다. 해외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이주노동 브로커들을 만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라고 했다. 일자리를 찾아 광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고달픈 과정을 거쳐 어렵게 왔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들이 꿈에 부풀어 고국을 떠나도 정작 낯선 땅에 와서는 예상치 못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내국인 비정규직이 받는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적은 임금으로 혹사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공정일까?
공정한 세상이라면 특정한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남자도 여자도, 똑똑한 이도 모자라는 이도,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미국인도 콩고인도, 자국인도 탈북자도, 모두 똑같은 품위와 존엄을 갖춘 인간으로
대등하게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어느 일부 계층만 특혜를 누리는 세상은 공정과는 아직 거리가 멀었다.
참된 공정은 과연 언제 온전히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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