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좋아요....

사비추해(士悲秋解)

황령산산지기 2020. 10. 4. 10:28

설촌(김용욱 청주)

 

선비는 가을을 슬퍼한다
출전 : 이옥(李鈺)의 사비추해(士悲秋解)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사비추해(士悲秋解) 글에서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비추해(士悲秋解) 이옥(李鈺)

선비는 가을을 슬퍼하니, 서리 내리는 것을 슬퍼함인가? 초목이 아닌 것이다.
장차 추워지는 것을 슬퍼함인가? 큰기러기와 겨울잠 자는 벌레가 아닌 것이다.
만약 때를 만나지 못해 멋대로 행동하여 찬찬하지 못함에 이른 고향과 나라를 떠나는 나그네라면, 또한 어찌 가을만을 기다려 슬퍼하겠는가? 이상하기도 하다!


바람을 마주하여 흑흑 느끼어 울며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 달을 보면 비통하여 거의 눈물을 흘리는 것에 이른다. 저들의 그 슬픔은 무슨 까닭에 의해서인가?
슬퍼하는 자에게 물어보니, 슬퍼하는 자 또한 단지 슬퍼할 줄만 알지, 그 슬퍼지는 것에 의한 바는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알겠다!
하늘은 남자라 하고, 땅은 여자라 하는데, 여자는 음의 기운이요, 남자는 양의 기운이다. 양기는 자월(음력 11월)에 생겨나 진사(음력 3ㆍ4월)에서 왕성한 까닭에 사월(음력 4월)은 순수한 양의 기운이 된다. 그러나 하늘의 도리는 성하면 곧 쇠하니, 사월 이후부터는 음이 생겨나고 양은 점점 쇠한다.


쇠하면서 무릇 서너 달이 지나면 양의 기운이 없어져 다하는데, 옛사람이 그때를 지칭하여 ‘가을’이라고 했다. 그런즉 가을이라는 것은 음이 성하고 양은 없는 때이다.


동산이 무너지매 낙수의 종이 울고, 자석이 가리키는바 쇠바늘이 달려오니, 물(物)이 또한 그러하다.
오직 사람으로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그 가을을 슬퍼하지 않음과 같겠는가?

속담에 “봄에는 여자가 그리워하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퍼한다(春女思, 秋士悲).라고 한다.

천지의 느낌이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정말로 당신의 말대로 선비가 슬퍼함이 그 양의 기운이 쇠함으로서 슬퍼하는 것이라면 곧 온 세상의 건귁을 하지 않고 수염이 난 자들은 모두 이미 가을을 슬퍼할 것이다. 어찌 홀로 오직 선비만이 슬퍼하는가?”


내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제 저 가을이 성하면 그 바람이 놀라고, 그 새가 멀리 가고, 그 물이 울고, 그 꽃이 노랗게 피어 곧고, 그 달이 밝은데, 은밀히 양의 기운이 다하는 조짐이 소리와 기운에 넘치면 곧 닿고 만나는 자 누가 슬퍼하지 않겠는가?


아! 선비보다 낮은 이는 곧 일을 하느라 알지 못하고, 세속에 빠진 자는 또 취하여 죽는다. 오직 선비는 그렇지 않고, 그 식견이 족히 애상을 분별하고, 그 마음이 또한 사물을 느끼기를 잘하여 혹은 술을 마시고, 혹은 검을 다루고, 혹은 등불로 고서를 읽고, 혹은 새소리와 벌레소리를 듣고, 혹은 꽃을 따면서 능히 고요하게 살피고, 비우고 그것을 받는다. 그러므로 천지의 기미를 마음으로 느끼고, 천지의 변화를 밖에서 느낀다.


이 가을을 슬퍼하는 자가 선비를 두고 그 누구이겠는가? 비록 슬퍼하지 않으려고 해도 되겠는가?
송옥이 말하기를, “슬프구나! 가을의 기운이여.” 라고 하고
구양수가 말하기를 “이는 가을의 소리이다” 며 슬퍼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가히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금자(이옥)는 말한다. “내가 저녁을 슬퍼하면서, 가을이 슬퍼할 것이 없는데도 슬퍼지는 것을 알겠다.”


悲秋(슬픈 가을)는 춘추시대 초(楚) 송옥(宋玉)의 초사(楚辭) 구변(九辯) 앞머리에,

悲哉! 秋之為氣也。
슬프구나, 가을이 되는 기운이여.

蕭瑟兮, 草木搖落而變衰。
소슬하구나, 초목이 떨어지고 쇠하게 변하네.

憭慄兮, 若在遠行。
먼 길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 오는구나.

登山臨水兮, 送將歸。
산을 올라 강물에 임하니 사람을 보내는 듯하네.

泬寥兮, 天高而氣清;
寂寥兮, 收潦而水清。
적막 하늘은 드높고 기운은 청명하여, 고요히 흐르는 가을 물은 맑기도 하다고 했다.

이후 ‘슬픈 가을’(悲秋)은 시인묵객들의 단골 시제(詩題)가 되었다.

? 두보(杜甫)의 등고(登高)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세찬 바람, 높은 하늘, 슬피 우는 원숭이,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
말간 물가, 하얀 모래, 빙그르르 나는 새.

無邊落木蕭蕭下(무변락목소소하)
가없는 수풀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不盡長江滾滾來(부진장강곤곤래)
끝없는 장강엔 강물이 넘실넘실 흐른다.

萬里悲秋常作客(만리비추상작객)
만 리 에 슬픈 가을, 항상 나그네 몸이요,

百年多病獨登臺(백년다병독등대)
백년에 많은 질병, 혼자 오르는 산이로다.

艱難苦恨繁霜鬢(간난고한번상빈)
가난한 삶이라, 흰 살쩍이 몹시 한스럽고,

潦倒新停濁酒杯(요도신정탁주배)
노쇠한 몸이라, 탁주잔을 새로 멈춘다.

(註)
*등고는 음력 구월 초아흐레, 즉 重陽節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는 민속놀이이다. 767년에 지었다.

*장강 : 이 시를 지은 곳은 사천성 奉節縣, 장강 연안에 있다.

*백년 : 즉, 평생을 가리킨다. 시인의 나이는 이때 56세. 백년이란 말은 앞 구절의 萬里라는 말과 짝을 채우기 위해서 쓴 것이다.

*새로 멈춘다 : "병(폐병, 당뇨병)이 들어 몹시 쇠약했으므로 술을 금했다."고 풀이한다. 일설에는 "잡은 잔을 내려놓고 새삼 한숨 쉰다."고 풀이한다.


? 가을 회포(秋懷) 허목(許穆)

宋玉悲秋切
송옥이 그렇게도 가을을 슬퍼한 건

感時憂思多
시절을 감지하고 근심 많아진 탓이리

苦吟風雨夕
비바람 부는 밤에 괴롭게 읊조리니

蕭瑟撼庭柯
스산한 가을바람 뜰의 나무 흔드누나

(註)
송옥(宋玉)이 … 건 : 송옥은 전국 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굴원(屈原)의 뒤를 이어 초사(楚辭)의 대가로 일컬어진다. 그의 구변(九辯) 중 첫 번째 작품에 “슬프도다, 가을 기운이여. 소슬하구나, 초목이 떨어지고 쇠락함이여(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고 하여 가을의 서글픈 정서를 잘 나타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文選 卷34)

? 비추(悲秋) 신종호(申從濩)

月子纖纖白玉鉤
하얀 옥갈퀴에 가는 달이 걸려 있고

霜風露菊滿庭秋
서리 바람 이슬 국화 가을 뜰에 가득

天翁不辦埋愁地
시름 묻을 곳을 하느님은 마련 못한 채

盡向寒窓種白頭
모두 한창을 향하여 흰 머리만 심었다오


? 비추(悲秋)이식(李植)

金飈憀慄露零團
서풍이 으스스 엄습하며 이슬도 방울져 떨어지고

萬樹秋聲挾早寒
이른 추위 묻어나는 만 그루 나무의 가을 소리

日照淸江下鳧雁
맑은 강물 햇빛 속에 떠내려가는 물오리요

天開宿霧見峯巒
하늘에 안개 걷히면서 절로 보이는 산이로다

行年晼晚悲黃落
벌써 시드는 나의 나이 낙엽을 보니 서러웁고

逸志蹉跎恥素飧
어긋나 버린 청운의 꿈 공밥 먹는 게 부끄럽네

詩費精神徒自苦
시에 정신 허비하며 괜히 혼자서 신음할 뿐

酒澆胸次可能寬
가슴속에 술 적신들 이 슬픔 어찌 풀리리요

 

 

출처: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원문보기 글쓴이: 무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