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죽음도 미리 배워둬야 한다.

황령산산지기 2020. 10. 4. 08:32

閔在鏞

 

죽음도 미리 배워둬야 한다.

 

 

죽음도 미리 배워둬야 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기도 하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얼마 전 한 친지로 부터 들은 말이다.

 

부친의 죽음 앞에 신앙이 무엇인지,

종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묻게 되다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 '는 이 사실이

인생의 문제풀이처럼 여겨지더라고 했다.

 

 

그렇다.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어렵지만 죽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순조롭게 살다가 명이 다해 고통 없이 가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가족들이 함께 시달리게 되면

잘 죽는 일이 잘사는 일보다 훨씬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음복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옴직하다.

 

살만큼 살다가 명이 다해 가게 되면 병원에 실려 가지 않고

평소 살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

이미 사그라지는 잿불 같은 목숨인데 약물을 주사하거나 산소 호흡기를 들이대어

연명의술에 의존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고통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한평생 험난한 길을 헤쳐 오면서 지칠 대로 지쳐 이제는 폭 쉬고 싶을 때,

흔들어 깨워 이물질을 주입하면서 쉴 수 없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코 효가 아닐 것이다.

현대의술로도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용히 한 생애의 막을 내리도록 거들고

지켜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평소 낯익은 생활공간에서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 곳이 바람직하다.

 

병원에서는 존엄한 한 인간의 죽음도 한낱 업무로 처리된다.

마지막 가는 길을 낯선 병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맞이한다면 결코 마음 편히 갈수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둬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들 자신이 맞이해야 할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임제 선사의 행적과 법문을 실은 <임제록>의 매력 중 하나는 보화스님에 대한 이야기다.

임제와 보화의 관계는 서로 밀접해서 어느 한쪽이 없다면 싱거울 것이다.

보화스님의 죽음은 거리낌이 없는 생사 해탈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보화스님이 자신의 갈 때를 알고 사람들에게 옷을 한 벌 지어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바지와 저고리를 주었지만 그는 받지 않고 요령을 흔들면서 지나가버렸다.

이때 임제스님이 관을 하나 전했다. 보화스님은 그 관을 메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내가 내일 동문 밖에서 죽으리라."

고을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동문 밖으로 나오자 보화는

"오늘은 일진이 맞지 않아 내일 남문 밖에서 죽으리라"고 했다.

사람들이 또 몰려들자 " 내일 서문 밖에서 죽으리라"고 했다.

사람들은 속은 줄 알고 차츰 줄어들었다.

 

넷째 날, 이제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은 것을 보고 북문 밖에서 스스로

관을 열고 들어가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관 뚜껑에 못을 박아 달라고 했다.

고을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몰려 나와 관을 열어 보았다.

시신은 보이지 않고 허공중에서 요령 소리만 은은히 들려왔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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