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생애 끝의 최악의 사건이다!”
아무도 죽음과 죽어 감을 피할 수없는 현 시점에서 우리 모두는 잘 죽는 기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때다.
잘 죽는다(die well) 혹은 잘 죽어감(well dying)은 까다로운 주제처럼 들리지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내 영혼은 어디에서 머물까? 이런 의문은 인간존재의 궁극적인 물음들이 아닐 수 없다.
옛부터 죽음 자체는 금기시 되는 주제이다. 죽어감과 죽음은 아마도 마지막 금기시 되는 단어 중에 하나다.
새 생명의 탄생은 아름답고 축하 할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애써 모르는 체 하려 한다.
사망을 자연적 죽음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편안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실제다.
삶과 죽음은 단막극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잘 죽는다.’는 의미는 뭔가? 좋은 죽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좋은 죽음을 준비할까?
간단히 말해 좋은 죽음(good death)이란 삶의 끝을 잘 받아들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후회나 스트레스 받지 않고 조용히 떠나는 것이다.
후회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 두려움과 불안감에 싸여 죽는 것이 아닌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존엄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잘 죽는 것도 존재의 죽음이요,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인간이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삶이란 긴 죽음에 불과하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 인간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내 죽음의 과정을 어떻게 관리할까?
늙으면 힘겹게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자기 몸을 끌고 다니지 않다가 잘 죽는 것이 큰 축복이 아닌가?
독일 사회학자 ‘바우만(Bauman, 1992)’에게 있어서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잘 죽기는 일종의 ‘죽음의 기술’이다. 잘 죽는 것은 신성한 권리이며 존재의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글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 즉 피할 수없는 죽음의 성격이 확정성, 불가변성, 무규정성의 운명론적 대상이지만 우리가 소원하는 ‘좋은 죽음’이 무엇인가를 문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서 우선 잘 죽는 것의 의미를 찾아보고 이어 좋은죽음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초연한 모습을보일까? 하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실제로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잘 살아갈지라도 언젠가는 죽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 앞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 할 때 남은 삶이 더 진지해지지 않을까? 하는 동기에서 기술하였다.
1.잘 죽는 것의 의미(意味)란 무엇인가?
세상이 좋든 싫든 모두가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 죽음의 필연성을 잊고 사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는 자연스런 죽음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사망자 중에 5명중 1명만이 순수한 자연사로 죽는다. 좋은죽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항상 실존적 고통과 연민이 남는 것이 죽음이다.
존엄과 죽음은 같이 있다. 모든 사람은 좋게 죽을 가치가있다.
우리는 어떤 결말없이 죽지만 잘 죽는 것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현실적 현존의 문제다.
죽음에는 긍정 부정이 동시에 작용한다. ‘에피쿠로스(Epicurus)’는 죽음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죽음은 기대감의 상실을 가져오기에 허무와 절망일 뿐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 놀라움, 신비감, 초월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죽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선물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이 거룩한 시간이고 이별의 순간이다.
탄생과 죽음은 자연스런 삶의 일부로써, 인생의 성장과정으로써 이해된다. 곧 죽음조차도 인간의 성장과정이다.
이와 관련해 근대사회에서는 죽음의 유형을 개인의 죽음(나의 죽음), 사회적 죽음, 자연적 죽음, 갑작스런 죽음, 관리 통제되는 죽음. 행복한 죽음 등 여러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국 UCLA ‘죽음학’ 교수인‘Shneidman(2007)’은 사람이 자연사, 사고사, 자살, 타살(살인)의 4가지 형태로 나누고
‘좋은 죽음’의 기준 내지 ‘최적의 죽음’에 대해 10가지를 제시한다.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1)자연적(natural)죽음으로 어떤 사고, 자살, 타살이 아닌 정상적 노화에 의한 천수를 다한 죽음이다.
흔히 천수를 다하고 죽었을 때 ‘호상’(好喪)이라는 의미 같은것이다.
2)성숙된 죽음으로 70세 이후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병 같은 뇌질환 없이 맑은 정신을 유지하다가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이 겁나는 것이지만 병원에 가는 일없이 맑은 정신을 유지하다가 2,3일앓고 죽는 형태다.
3)예측되는 죽음으로 사고와 같은 갑작스런 죽음이 아니라
예를 들어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가 4-5개월 생존하다가 죽는경우다.
4)명예로운 죽음으로 실패 없이 혹은 어떤 상처 없이 가족과 사회에 기여하고 죽는 사람들이다.
죽어감 혹은 죽음에서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고 가족 간, 이웃 간 사랑하고 나누고 떠나는 것이다.
5)준비된 죽음이다. 자신의 가치와 명예를 지키며 자기가 하고 있던 일을 잘마무리하고 죽은 것이다.
준비된 죽음은 설사 치명적인 병이 들어도 겁을 먹거나 두려움 없이 자기 할 일을 다 해놓고 세상을 떠나는 모습 같은 것이다. 유언장을 써놓거나 장례절차까지도 당부하고 죽는 것이다.
6)나이 들어 죽어 감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것, 죽음을 겁내지 않고 초연하게 영광스럽게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죽음이다.
수술, 방사선 치료 등 적극적 치료가 아닌 돌봄을 택해 존엄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7)문명화된 죽음이다.
생명의 한계를 직시하고 꽃을 사랑하고 그림과 음악 등의 취미생활을 하다가
글쓰기, 문화예술을 즐길 때 치매 등 정신적 질병없이 죽을 수있다.
8)세대전승의 죽음이다.
혈육의 계승, 삶의 지혜, 가풍 등을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죽는 것이다.
9)후회 없는 죽음이다.
죽음에 임박해 후회한들 소용이 없지만 지난생애를 돌아보며 후회나 슬픔 없이 죽는 것, 하던 일을 잘 끝내고 죽는 것이다.
가능하면 “If only”(이랬으면 좋았을턴데)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죽는 것이다.
10) 평화로운 죽음이다.
죽으면서 가슴에 독을 품지 않고 떠나는 죽음이다. 아니면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고통은 중병환자의 70%가 경험한다.
신체적 상실 없이 자유의지 속에 가족 및 이웃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련없이 평화롭게 죽는 것이다.
기타 우리가 볼 수 있는 죽음의 형태는 또 있다. 이를테면 좋은 죽음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1)안타까운 죽음이 있다. (2)부정적 죽음이 있다. 이는 집이 아닌 병원, 호스피스병동, 요양원등 공공시설에서 외롭게 허망하게 죽는 것이다. (3)나쁜 죽음이 있다. 이 죽음은 자살 하거나 갑작스런 사고 혹은 고독 사, 무연고 사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죽음보다 나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2.좋은 죽음을 어떻게 만들까?
우리는 큰 고통 없이 집에서 편안하게 죽는 것을 원한다.
1)고통 없이 길게 앓지 않고 가족들 곁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거두는 죽음이다.
가족은 첫 사랑의 둥지들이고 또한 마지막 이별하는 사랑의 식구들이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두렵고 외롭지만 따뜻한 주위 사람들 옆에서 위로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족들은 환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평화롭게 죽도록 돕는 일이다.
2)나이와 관계없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다가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지성과 직관 모든 신체운동 명상과 기도를 통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다가 건강하게 죽는 것이다.
물론 안정적으로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조차도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적당한 운동과 영양섭취, 건강 검진 등을 통해
농담이지만 “9988, 2,3,4”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앓고 죽는 것이다.
3)가족과 이웃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죽음이다.
죽음에는 본인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들이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죽은 자와 산자의 관계는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내가 죽으면 가족들 이웃들은 그는 “열심히 살았어!”하며 기릴 것이다.
4)수많은 질병은 물론 치매, 알츠하이머병을 피하는 ‘품위 있는 죽음’이다.
속된 말로 노망이들어서 똥오줌 가리지 못하는 상태를 피하는 죽음이다.
치매를 앓다가 죽으면 가족들에 대한 영원한 수치다.
치매는 경제적 손실, 믿음의 손실, 희망의 손실, 신뢰의 상실, 사회적 손실을 겪는다. 치매는 온 집안을 황폐화 시킨다.
5)갑작스런 사고, 심장 마비 등을 대비한 임종 없는 죽음을 피하는 일이다.
이른바 ‘덜컥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다.
밖에 나갔다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죽을 수 있는 ‘객사’를 피하자는 말이다.
6)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의지에 따른 죽음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엄이 내재돼 있고 타인이 아무리 끔찍한 짓을 하더라도 빼 앗을 수 없는 권리다.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도 수명연장의료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생명의 선택권을 인정하는 추세다.
의사들 역시 가족들의 의사를 물어 심페소생술 등을 포기하는 이른바 ‘관리되는 죽음’으로 유도할 수 있다.
말인즉 나쁜 죽음을 피해야 한다. 나쁜 죽음은 도저히 회복 될 수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 불필요한 투약,
약에 의한 안락사를 당하는 것이다. 약물의 부작용, 메스꺼움, 구토 등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이 나쁜 죽음이다.
7)정신이 맑을 때 유언장 써놓기, 의료지시서 작성, 유산 분배, 장례기획, 장기기증 여부 등을 명확히 해 놓는 것이다.
유언의 표시는 구두 유언, 공정성 유언(2명이상 증인 변호사 공증필요), 그리고 유언내용은 임종방식에서 생명보조 장치 사용여부(의료지시서 작성), 장기기증 등을 표시하며,
장례식은 장지, 규모, 시신처리방법(매장/화장)을 당부하고,
마지막으로 유산분배 문제로써 자녀 가족에 대한 재산 분배 방식 혹은 사회 환원 여부 등을 명확하게 해 놓는 일이다.
8)종교적으로 구천을 떠도는 죽음이아니라 천당극락으로 안착하는 믿음이 확고한 죽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죽음이 아니라
신의 인도를 받는 죽음이다.
영국의 철학자 ‘스티븐 케이브(Cave, 2012)’는 영원, 영생, 불멸의 꿈을 강조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혼으로서 살아남기다.
이상의 내용들은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잘 사는 것이 강조되었다면 현재의 트렌드는 생이 끝나는 순간에 잘 죽자는 것이 강조되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그저 노년기 심심풀이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제는 남아있는 삶의 질을 좌우하고 각자 삶의 불변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가 가능하겠지만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으로써 잘 죽을 수 있도록 임종 시까지
|
'죽음이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죽음도 미리 배워둬야 한다. (0) | 2020.10.04 |
---|---|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 (0) | 2020.09.26 |
타나토노트 (0) | 2020.09.06 |
사는 순간, 죽는 순간 (0) | 2020.08.21 |
우리는 매일 죽는다. (0) | 2020.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