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붓다의 심리학

황령산산지기 2020. 3. 15. 10:07

델리아

      

동양은 매우 의미심장한 심리학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그것을 붓다의 심리학이라고 부르는 바이다. 그것의 관심사는 마음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그 구조를 활용하는 것에 집중한다. 현대의 심리학은 마음의 구조에만 몰두해서 그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다.

이 두 가지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명상에 기반을 둔 붓다의 심리학은 내면으로부터 이해한다. 물론 그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대가 외부로부터 마음을 연구할 때, 그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게 된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아니다. 그대가 심리학자들의 연구실에 가면 놀라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쥐의 마음을 연구하고 있다. 그것은 치욕적이면서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쥐의 마음에 기초를 둔 이해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명상가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할 때, 그는 고동치고 맥박이 뛰는 인간의 살아있는 마음을 관찰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관찰한다. 그것이 바로 그대가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보면, 그대는 결코 마음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외부에서 보면 추론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추론으로 머물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앎이 될 수 없다. 쥐도 그대를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쥐들은 인간을 잘 속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쥐들조차 표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쥐들의 내적 핵심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왜 쥐를 연구하는가? 왜 인간을 직접 연구하지 않는가? 인간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기본 구조만 연구하는 것이다. 마치 아인슈타인을 연구하고 싶을 때, 초등학교에 가서 어린아이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얻은 이해로부터 그대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이해를 키워간다. 말도 안 돼는 일이다. 온당한 일도 아니고 방향도 틀렸다. 모든 아이가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이 옳다면, 모든 아이가 아인슈타인으로 성장해야 맞다. 하지만 모든 어린아이가 아인슈타인이 되지는 않는다. 특정한 아이만이 아인슈타인으로 꽃피어난다. 아인슈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아인슈타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아인슈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밖에서 보면 그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특징과 독창성은 내면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혈액을 연구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혈액과 똑같을 것이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뇌는 그의 사후에도 연구가 되었지만,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별한 것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가 분명히 독창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구상에 그렇게 복잡 미묘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지만, 그 사람의 두뇌는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해보였다.

두뇌는 마음이 아니다. 어느 날 내가 세상을 떠나고 그대가 내 방에 들어가서 내 방을 연구하며 이 방에 살았던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유형이고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다.

마음은 알기 어려운 것이며,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실험관 안에 우겨넣을 수 없다. 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대의 주시하는 자기로부터, 즉 그대의 내면으로부터 그것을 아는 것뿐이다. 그대가 더 자각할수록 자신의 마음, 그 섬세한 기능을 더 잘 관찰할 수 있다. 마음의 기능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아름답다.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현상이며, 의식이 가장 섬세한 양식으로 꽃피어난 결과이다. 마음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분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시자가 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명상의 길이다.


 - 오쇼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