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소운
*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의 후광을 업은 이승만과 김일성에 의해 정부를 수립 하였다. (월간조선 수록사진 인용) * 33살의 김일성은 소련의 지원으로 박헌영 등 원로들을 제치고 권력을 움켜 쥐었다. (월간조선 수록사진 인용) 소운放談(놈, 놈, 놈) 소운/박목철 남을 얕잡아 부르거나 미운 상대에 대해 욕을 할 때 흔히 무슨 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 제목이 놈, 놈, 놈이라는 영화도 있는데 내용이 생뚱맞은 서부 영화로, 잘 나가는 배우 송강호와 정우성, 이병헌 셋이 총잡이가 돼 펼치는 기억에 별로 남는 게 없는 영화였지만, 놈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강조된 것 때문인지 제목은 오래 기억되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놈은 남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 외에도 남이라는 뜻과 사람이라는 의미의 옛말이기도 하다고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는 대륙의 끝 반도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와 국경을 이웃한 나라는 모두 군사적 대국으로 만만히 대할 나라가 하나도 없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군사 대국이고, 중국은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이다. 일본은 세계 6위의 군사 대국이고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은 세계 1위의 초 군사 대국이다. 이런 대국의 틈에 끼어 어려운 삶을 살아 온 백성이지만 주변국을 대하는 한국민의 자세가 그리 비굴하지 않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배층은 중국, 일본, 옛 소련이나 미국에 빌붙어 권력 유지에 이용하고 비굴했지만, 오히려 백성은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뙈놈, 가장 접촉이 잦았던 중국은 한국인에게는 뙈놈으로 불릴 뿐 존경의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대륙에 자리 한 큰 나라로 늘 우리를 못살게 괴롭혀 온 존재이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조선인이 중국인을 존경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일반 백성의 시각에서 중국인 하면 막연히 지저분한 민족이고, 풍속에 대해서도 농(弄)의 대상은 될지언정 부러움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었다. 사대(事大)니 조공(朝貢)이니 하는 것은 왕이나 양반들의 유교적 사고일 뿐 일반 백성의 눈에는 그냥 뙈놈이다. 현재도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중국 인하면 시끄럽고 무질서함을 먼저 떠 올리게 된다. 시진핑이 했다는, "한국은 전통적 중국의 속국으로 서로 간에는 뗄 수 없는 우정이 있는 사이이다"라는 발언은 한국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화 돋우는 망언이다. 왜놈, 일본인은 늘 왜놈으로 불려 왔다. 의외로 식민지 시절을 산 사람들도 일본인은 야만적 풍속을 가진 왜구쯤으로 생각해 언제나 왜놈이라 호칭했다는 사실이다. 왜놈들은 훈도시라 하여 성기 만 가린 벌거숭이 복장으로 살뿐 아니라, 풍기도 문란해 친척 간 결혼도 예사이고 남녀 혼탕의 대중탕 등, 풍속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이 있으셨다. (일본 순사들의 무자비한 탄압에 주눅이 들었을 법도 한데 그래도 일본인은 늘 왜놈이고, 작은 섬나라 놈답게 배포도 옹졸하다고 낮춰 보았다. 일본이 남북한 합친 것보다 땅이 두 배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일본이 작은 섬나라라는 개념은 실제 땅의 크기보다는 정신적 자부의 크기를 뜻한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서구인들은 일본을 대단한 나라라고 여기고 있다. 아마도 일본을 정서적으로 얕보는 민족은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할 것이고, 일본에 기죽지 않는 유전인자가 있는 듯하다는 설(說)도 들은 것 같다. , 러시아하고는 효종2 년(1651) 때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총병을 보내 전투를 벌여 승전한 나선 정벌이 공식적 접촉의 시초가 아닌가 싶다, 그 이전에도 그렇지만 이후에도 별로 접촉한 적이 없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일본이 패망한 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을 접하고서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옛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볼셰비키 혁명 당시 살기 위해 조선으로 피해 온 귀족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허드렛 일도 마다않는 험한 일을 하며 살았지만, 귀족 여자들이 너무 이뻐 흡사 인형 같았다는 등이 관심의 전부였다. 어쨌든 일부 접경 지역에 한정된 일이기에 러시아 인에 대한 인상이 형성된 것은 일본의 패망과 소련군의 북한 진군으로부터일 것이다) 일본군에 대한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점령군 자격으로 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죄수들을 징집해 투입해서 무식하고 난폭하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특히 부녀자에 대한 겁탈을 일삼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불안에 떨 정도였으니 소련과의 첫 대면은 악연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로스케는 야만적이라 식빵을 가지고 다니며 배게 대신 베고 자고, 그걸 또 먹는다고 비하하는 말씀들을 하셨는데, 소련인이 나타나면 빈 그릇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고 부녀자들을 숨게 하고 자경대를 조직해 밤새 순찰을 돌았다고도 한다) 그렇게 만난 소련인은 한국인에게 또 하나의 놈, 로스케 놈으로 자리매김 될 수 밖에 없었다. 양놈, 미국인을 양놈이라고 칭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예외의 경우라 하겠다. 여타 다른 나라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거나 호의를 느낄 만한 좋은 인연이 아니었지만, 미국의 경우 일본군을 무찔러 우리에게 해방을 안겨 준 어쩌면 은인이라고 해야 할 좋은 만남이었다. 해방 후 한동안 신탁통치라 하여 미군 군정관이 우리를 다스리는 동안 통치가 느슨하여 데모나 좌우충돌을 저지하지 못해 나라가 온통 시끄럽기 그지없을 정도로 유연한 통치를 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 땅에 욕심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전쟁에 이긴 승전국이지만, 일본도 한국도 민주주의 자유경제 체제를 받아드리는 것에 만족하고 더는 간섭이나 직접 지배를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결과로 세계 3위와 10위 권의 경제 대국이 된 것은 미국의 덕이라 해도 별반 틀리지 않는 말이라 하겠다. 물론 자신들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한국전에 뛰어들어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하고, 한국민을 잉여 농산물로 먹여 살린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인을 칭할 때, 역시 양놈이라는 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산에 가면 서면이라는 곳에 하이야리야 라는 대단히 큰 미군 기지가 있었다. 이 미군 기지를 에워싼 철조망 외에 외곽을 따라 또 하나의 철망을 치고 철조망 사이를 돌며 보초를 서는 한국군 경비 부대가 있었다. 제 나라 부대의 경비도 한국군에 맡기고 희희낙락한 미군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철조만 건너로 바라보며 졸린 눈을 비비던 한국군 병사의 시선에 미군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여름이 되면 해운대 해수욕장 중앙부를 차지하고 양쪽으로 철망을 쳐 한국인의 접근을 막은 비치 캠프가 여름 내 운영 되었다. 냉방이 잘 된 셔틀버스가 오가며 미군과 그 가족을 실어 날랐고, 모래사장에는 파라솔이 쳐지고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에 서리가 맺히는 캔 음료나 맥주를 미국인들은 마셨다.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철망 밖의 한국인은 부럽고, 기죽고, 그들의 당당함에 더욱 움츠러들었다. -한국은 미사일 사거리가 180km 이상이어서는 안 되고, IMF는 미국의 한국 길들이기라는 얘기-등, 이런 것은 일반 백성이 뭘 안다고 반감을 품을까만은, 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의 대부분은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지프를 탄 흑인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난폭 질주하기에 바라보니 뒷좌석에 우뚝 선 병사 하나가 성기를 꺼내 오줌을 갈기며 흔들어 대고 낄낄대는 장면에 울분이 치솟던 옛일, 한 달 2백-3백 달러에 한국 여자를 계약 동거하며 살다가 임기가 끝나면 물건 인계하듯 넘기고 가는 하층 미군들이 비인간적인 처사, (미군은 주말에 나와 월요일 아침에 귀대하며, 한국 식품은 불결하다 해서 먹을 음식을 종이봉투에 넣어서 들고나왔다. 동거비도 돈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싸게 산 PX의 물건을 시장 가격으로 따져서 주었다. 외제가 수입되지 않던 시절이라 것도 감지덕지 받았지만) 미국은 국가적 측면에서는 은인이 분명하지만, 인간적 측면에서 한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어렵던 이가 자수성가해 성공하면 집들이를 폼나게 하고, 옛 상전들은 이를 칭송하며 덕담으로 응원하고 이를 계기로 당당한 일원으로 대접하는 게 우리의 옛정서이다. 미국은 나름 덩치가 커졌다고 으쓱대고 싶은 한국인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 같고, 베풀고도 덕을 얻지 못했으니 역시 양놈 아니겠는가? 지금 한국은 좌우가 갈려 친일파, 친미파, 친중파를 따져 상대 진영을 공격하고 있다. 윗분들의 다툼과 상관없이 백성의 눈에는 여전히, 양놈, 뙈놈, 왜놈, 로스케 놈, 다 놈일 뿐인데도 말이다. 상대의 횡포에 복종하고 싶지는 않고, 상대의 힘이 커 저항도 못 하고 할 수 있는 건 혼자서 하는 욕이 유일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욕이 유난히 다양하게 발달한 이면에는 힘없는 민초들의 恨이 서려 있지 않을까? 반도 끝자락에서 덩치 큰 주변 강대국의 압박을 견뎌 낸 저변에는 -놈-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아마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비실대는 좀비로 남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도 살 만큼은 산다. 한을 욕으로 푸는 시대는 우리 대에서 끝내자! 지구촌 시대의 당당한 주역이 된 우리의 힘을 돌아봐야 한다. 놈이라는 호칭이 미국 분, 일본 분, 중국 분 러시아 분을 지나 님이라고 불러주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는 날, -놈이 님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코로나 19에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저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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