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겠네. 어느 책에서 접한 말이다. 걱정을 엑스(X)로 보고 어떤 말이든지 대입할 수 있다. “슬퍼해서 슬픔이 없다면 슬픔이 없겠네. 후회해서 후회가 없다면 후회가 없겠네.”라고. 주로 부정적인 말이다.
근심, 걱정, 슬픔, 후회 이런 말들은 불선법(不善法)이다. 불선법을 지으면 불선업을 저지르기 쉽다. 불선업을 지으면 불선과보를 받는다. 업과 업보의 법칙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과거 부처님들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업과 업보를 세간의 정견이라고 한다.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아는 것이다. 업에 따라 차별이 생긴다. 업에 따라 귀하고 천하게 태어난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모두 업의 소산이다. 자신의 지은 업의 세계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업을 짓고 있다. 육근과 육근이 만나는 순간 세상이 생겨나고 12연기가 전개된다.
참으로 쓰리고 아리고 속상하다. 육체적 고통도 괴롭지만 그것 못지 않게 정신적 괴로움도 크다. 후회의 감정이 밀려온다. “그때 조금만 더 살펴 보았더라면!”라는 후회이다. 그러나 일은 벌어졌다. 그런데 또 다시 잘못 되었다. 이번에는 자신을 책망한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했다. 고스란히 손실로 되돌아 왔다.
다시 만들어 납품해야 한다. 갑의 신입직원이 오케이(OK) 했지만 무용지물이다. 결국 을이 물어 주어야 한다. 손실을 생각하면 쓰리다 못해 마음이 무너진다. 창피해서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한다. 이런저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의 파도가 밀려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나 보다. 무언가 정신적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이면 내일 태양이 떠 오른다. 오늘 죽을 것 같은 괴로움도 내일이 되면 달라진다. 어제와 오늘의 상황이 다른 것이다. 조건이 바뀐 것이다.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다. 그때 상황과 지금 상황이 같지 않다. 그럼에도 후회로 산다면 대단히 어리석다. 그때는 그런 일이 일어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라는 말이 있다. 실수를 통해서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는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매번 반복했을 때 무너지지만 이겨내면 힘이 된다. 학습을 통해서 단련 되는 것이다. 오계를 학습계율(sikkhapada)라고 하는데 잘못을 참회하여 완성되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분노는 분노함으로써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다. 후회한다고 하여 후회가 사라지지 않는다. 자괴한다고 하여 자괴가 없어지지 않는다. 결과로 나타난 것은 바꿀 수 없다. 그대로 지켜 볼 뿐이다.
쓰리고 아리다고 하여 “아이고 아파!”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린 마음 쓰린 마음을 지켜 보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것들이다. 어떻게 결과로서 나타난 것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내야 한다. 아리고 쓰리고 자괴하지만 도움이 안된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다. 이런 것은 문제도 아니다. 시간 지나면 해결 되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시간 지나도 해결 안되는 것들이다.
2019-08-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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