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조르바는 장님이다. 그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춤추고 노래할 줄 안다. 그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안다. 붓다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볼 뿐이다. 그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순수한 눈을 갖고 있지만 춤추는 재주가 없다. 그는 앉은뱅이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할 줄 모른다. 이 삶을 즐기는 법을 모른다. 세상은 지금 불길에 휩싸여 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위험에 빠져 있다. 조르바와 붓다의 만남으로 인류 전체를 구할 수 있다. 그 둘의 만남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붓다는 우리의 의식에 기여한다. 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눈을 준다. 그리고 조르바는 붓다의 비전에 온몸으로 헌신할 수 있다. 그는 붓다의 비전을 무미건조하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춤과 노래와 즐거움을 불어넣는다. (생략) 조르바는 감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신봉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는 다음 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천국에 들어갈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질지 신경 쓰지 않고 가능한 이 삶을 최대한 즐겼다. 그는 비천한 하인이었고, 그의 주인은 큰 부자였지만 심각하고 우수에 젖은 사람이었다. 어느 보름날 밤 조르바가 그의 주인에게 했던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조르바는 오두막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밤 기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해변에서 춤을 출 생각이었다. 그가 자신의 주인을 해변으로 초대했다. 그가 말했다. "주인님, 당신에게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이리 오세요. 지금은 생각하기에 어울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바다가 넘실대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이리 와서 함께 즐기세요." 그는 주인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주인은 조르바와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조르바가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밤마다 바닷가에서 춤을 추곤 했다. 주인은 조르바와 함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귀족의 체면이 깎이는 일인데, 조르바는 한술 더 떠서 같이 춤을 추자고 꼬드기는 것이 아닌가. 하늘엔 보름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춤추는 바다를 배경으로 조르바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인은 갑자기 전에 느껴본 적이 없는 에너지가 다리에서부터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주인은 조르바의 요청에 마지못해 일어나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누가 볼까봐 주변을 힐끗거렸다. 그러나 한밤중의 바닷가에는 두 사람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곧 이어 그는 세상을 잊고 조르바와 어울려 춤추기 시작했다. 바다와 달이 그와 함께 춤을 추었다. 모든 것이 잊혀졌다. 모든 것이 춤이 되었다. 조르바는 가공의 인물이고 붓다는 잠에서 깨어난 자를 가리키는 일반적 호칭이다. 나는 붓다에게 춤출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그리고 조르바에게는 하늘 너머 멀리, 이 존재계의 항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준다. 내가 말하는 혁명가는 조르바 붓다이다. - <조르바 붓다의 혁명> 오쇼 강의, 손민규 옮김 |
'알송 달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3차원계 안에만 있는 환영일 뿐이다 (0) | 2019.08.10 |
---|---|
마음이 맑은 자는 신神을 볼 수 있다 (0) | 2019.08.10 |
제 3공화국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0) | 2019.08.10 |
마야 달력 (0) | 2019.08.04 |
아베, ‘방사능 올림픽’으로 스포츠를 농락하다 (0) | 2019.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