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물에서 놀던 성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너울성 파도에 떠밀려 순식간에 해안가에서 70m 정도 떨어진 바다로 밀려갔다.
급히 바다에 뛰어든 임창균(48) 포항북부경찰서 경위가 남성 1명과 여성을 구조했고, 다른 남성 1명은 자력으로 헤엄쳐 나왔다.
이날 사고는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바닷물이 빠르게 흘러나가는 이안류(離岸流, Rip Current) 현상 때문이었다.
흔히 ‘역(逆)파도’라고도 불리는 이안류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등 국내 여러 해안에서 관찰된다.
이안류 탓에 국내외에서는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푸른 바닷속의 공포, 이안류는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 대처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빠삐용’에도 등장>
거기에는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했다가 다시 잡혀 온 죄수가 있었다.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금고털이범 ‘빠삐옹’이었다.
그는 절벽 위에서 파도를 응시하며 탈출을 꿈꾼다.
빠삐옹은 마침내 파도의 주기를 알아냈다. 일곱 겹의 파도가 섬을 향해 밀려오는데, 그 일곱 번째 파도가 오면 섬에서 빠르게 멀어지는 파도가 물살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안류였다. 그는 야자 열매를 담은 포대를 안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1973년 개봉한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 역의 스티브 매퀸은 그렇게 악마의 섬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월 개봉한 리메이크 영화 ‘빠삐용’에도 이안류가 등장하지만 73년 영화만큼 상세한 설명은 없다.
대신 주인공 역의 찰리 허냄은 야자 열매를 바다에 던져 파도를 관찰한다.
그는 섬에서 멀어지는 조류(潮流)를 발견하고는 “자유를 향한 조류(current)”라고 외친다.
이안류가 없었다면 ‘빠삐용’ 영화가 그냥 단조롭게 끝나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안류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현실에서는 비극을 부른다>
1955년 7월 28일 일본 미에(三重) 현 쓰시(津市)의 나카가와라 해안에서 벌어진 사고가 대표적이다.
사고 당일 오전 10시쯤 시키타(橋北) 중학교 여학생 200여명은 수영 수업을 받기 위해 얕은 바다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100명 정도가 갑자기 파도에 휩쓸려 바다 가운데로 밀려 들어갔다. 교사와 수영부원들이 구조에 나섰지만 36명이 숨졌다.
호주에서도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안류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이나 충남연구원 등에 따르면 2010년 이안류로 인해 대천해수욕장에서 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특히, 2010년 7월 18일 오후 5시 10분쯤 고교생 2명이 물놀이를 하다 파도에 휩쓸려 해안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해경은 이 사고를 이안류 탓이라고 분석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2007~2010년과 2012년 매년 100여 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되는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
특히, 2008년의 경우 5~63명씩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30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됐고, 2010년 8월 9일에는 90여 명이, 2012년 8월에도 143명이 구조됐다.
2014년 8월 5일에도 제주 서귀포 중문색달 해변에서는 10명이 이안류에 휩쓸렸다가 구조됐다.
이튿날인 6일에도 37명이 이안류에 휩쓸려 바깥 바다로 밀려 나간 뒤 자력으로 탈출하지 못해 해경에 구조됐다.
이안류의 영어 표기인 ‘rip current’에서 rip은 ‘찢다’란 의미이지만, ‘격조(激潮)’, 즉 거센 물살이란 뜻도 있다.
그리고 RIP(Rest in peace, 고이 잠드소서)라는 표현 때문에 이안류에 ‘죽음의 물살’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이도 있다.
<이안류가 생기는 원인은>
폭은 10~40m, 길이는 500m 정도이지만, 물살은 초속 2~3m로 빠르다. 한번 휩쓸리면 수영을 잘하는 사람도 빠져나오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안류는 지형적 요인, 파도의 특성, 기상학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고 말한다.
이안류가 발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닷물이 해안으로 밀려와 쌓이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에서는 파도가 에너지만 전달하고, 바닷물 자체는 제자리에서 위아래로 요동치기만 한다. 반면,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파도가 깨지면서 바닷물 자체가 해안으로 밀려온다.
밀려온 바닷물은 다시 바다로 빠져나갈 곳을 찾으면서 해안을 따라 옆으로 이동한다. 옆으로 이동하던 바닷물은 육지를 향해 들어오는 파도가 약한 지점, 즉 바다 아래 골이 생긴 곳 등에서 깊은 바다 쪽으로 빠져나간다.
강둑이 무너진 곳에서 물이 넘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안류는 오래 지속하지는 않는다. 계속 나타난다면 그곳을 피하면 된다.
하지만 하루 중에서도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언제 나타날지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안류의 지속 시간은 대부분 2~3분 미만이다. 미국 스토니브룩대학 해양대기과학과 헨리 보쿠니에비츠 교수팀이 이스트 햄프턴 비치에서 500시간 동안 20초 간격으로 사진을 촬영해 분석한 결과다.
이안류는 미국의 오대호(Great Lakes) 같이 큰 호수에서도 발생한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잦은 이유>
보통 이안류는 파도가 해안에 직각으로 들이닥칠 때 잘 생긴다.
해운대해수욕장은 남쪽으로 트인 구조인데, 남풍이 우세한 여름에는 파도가 정면으로 몰아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광안·송정 해수욕장은 남동쪽으로 열려 있어 여름철에는 파도가 비스듬히 들어와 이안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다.
전문가들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7~8월 남쪽으로부터 파도가 똑바로 밀려들기 때문에 이안류가 자주 관찰된다”고 말한다.
더욱이 해운대는 해안의 경사가 완만해 파도가 부서지는 지점, 즉 쇄파대가 넓은 편이다. 이런 해안에서는 파도의 에너지가 많이 축적되고 이안류도 잘 생긴다.
해변은 넓고 경사가 완만한 모래 해변이었지만, 육지에서 작은 강이 들어오면서 바다 밑에 고랑이 생겼고, 이 고랑을 통해 바닷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생긴 게 원인이었다.
암초가 파도를 한곳으로 집중시키기도 하고, 분산시키기도 하면서 파도를 헝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안류에 휩쓸렸다면…>
국립해양조사원은 2011년 해운대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현재는 부산 송정·임랑과 충남 대천, 제주 중문, 강원 경포대·낙산 해수욕장에서도 실시간 감시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안전요원과 관계기관에는 하루 두 차례 이안류 위험 상황을 문자 메시지로 전송하기도 한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도 8개 해수욕장에 대한 이안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안류에 휩쓸리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물 흐름의 좌우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이안류에 휩쓸렸을 때 곧장 해안 쪽으로 헤엄치기보다는 45도 각도로 헤엄을 쳐야 한다.
이안류 흐름에서 좌우로 벗어나면서, 동시에 해안을 향해 헤엄쳐야 한다는 의미다.
수영에 익숙하지 않으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수영하는 게 안전하다.
구명조끼 없이 이안류에 휩쓸려 먼바다로 밀려 나갔다면, 당황하지 말고 수면에 누운 자세로 가만히 떠 있으면서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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