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순례자
주말에 기생충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신분들이 많이들 그러시겠지만 저도 또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삶을 산다면 박사장네 같은 삶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모든 사람이라면 기택네 가족처럼은, 반지하에서, 지하에서 살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대사에서, "부자가 착하다.", "부자니까 착하지." "돈은 다리미다. 가난한 사람의 주름을 펴준다." "내가 부자면 나는 더 착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이 되어야 그 위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인 의식주 해결의 하위단계가 충족이 되어야 최고 단계인 자아실현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 공유해 드리는 "삶의 네 기둥"을 공유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우리모두 삶의 네 기둥을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삶의 네 기둥
1994년 10월 11일 미국 콜로라도 보울더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에게 계시되었다
큰 삶은 모두 튼튼한 기반이 있어야 이루어지며, 이 기반을 다지는 데는 대체로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바로 이 기반을 다지는 것이며, 이 기반을 얼마나 제대로 구축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될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너무 일찍 알게 된 사람이 큰 삶을 지탱할 역량을 가진 예가 거의 없었으며, 처음에 대단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자신의 큰 선물을 베풀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개인적인 삶의 기반을 다지는 데도 오랜 세월 성장하고 배워야 하듯이, 목적이 있는 큰 삶의 기반을 다지는 데도 오랜 세월 준비하고 배워야 한다. 이때 깊은 신뢰와 더불어 인내심이 아주 중요하다. 처음부터 일의 결과를 알고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인내심은 꼭 필요하다.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지 못한다. 즉, 지금 쌓는 기반 위에 무엇이 들어설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기반을 다지는 일이 마치 오랜 기간에 걸쳐 힘들게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반 다지는 일은 꼭 필요하며,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 기반을 준비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만 얻을 수 있겠는가? 또한 받을 만한 자격도 없고 받아도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보상만 받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삶에서 무엇을 이룩하든 그 바닥에 다진 기반만큼만 이룩할 수 있으므로 기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단 삶에서 기반을 튼튼히 다지고 나면, 그 위에 큰 것들을 건설할 수 있다. 이때 그 큰 것들이 모든 풍파와 세파를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기반 다지는 일이 중요하며,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여 기반 다지는 일을 차근차근 해낼 수 없으며, 가능한 빨리 결과만 얻으려 한다. 그러나 이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있어야 할 기반이 없으면 큰 구조물이 들어설 수도 없고 거기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수도 없으며, 지지를 받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다.
당신 개인이 쌓아야 하는 것에는 인격과 역량이 있다. 지금부터 이것을 설명해보겠다. 인격은 의지가 강해지면서, 또 인내하고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형성된다. 인격은 성격이 아니다. 인격은 변함없는 강한 힘, 목표가 명확한 결단력, 인내심을 가진 접근, 기꺼이 기다리는 마음 등을 말한다. 이런 것들이 인격이며, 개인적 마음이 여기에서 앎의 매개체가 될 만큼 강해진다. 당신은 세상에 온 이래로 계속 축적해온 개인적 마음이 있으며, 인격 형성은 이 개인적 마음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적 마음은 강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삶의 목적·의미·방향을 정할 수 없으며, 이 세상에서 큰 삶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없다. 또한 개인적 마음만으로는 오늘날 세상의 변화와 지구의 큰공동체 진입에 대처할 수 없다. 이런 일에 대처하려면 진짜 기반인 더 큰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너머에서 세워진 기반, 많은 실수와 혼란으로 점철된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격은 개인의 성장이다. 이 인격을 가지고 당신은 기반을 다져나갈 수 있고, 필요할 때 인격을 더 쌓을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데는 평생 걸릴 수도 있지만, 성장할 때마다 그 족적은 영원히 남는다.
당신이 인격을 쌓으면 당신에게는 삶에서 앎을 기다리는 역량, 분별해내고 체험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기고, 앎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커질 것이다. 이 역량이 당신 기반의 일부가 된다. 이 역량이 없으면, 당신이 아무리 진리와 평화를 원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해도 그럴 능력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찾았다 하더라도 담고 있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인격과 역량은 함께 쌓인다. 그러니 당신은 매사에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 삶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니, 규정하지 않은 채로 놓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당신은 큰 힘이 당신 삶 안팎에서 일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큰 힘이 당신의 온갖 불행을 야기하거나 자잘한 성공과 엄청난 시련을 일으킨다고 보는 일 없이 큰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창조주는 당신에게 앎을 주었으며, 이는 대단한 은총이다. 당신이 앎을 찾으면 길을 찾을 것이고, 앎을 피하면 혼란과 환상 속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앎길을 따르면 삶의 기반을 쌓을 것이고, 다른 길을 따르면 목적도 의미도 없는 여행을 또다시 계속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만 보면 매우 단순한 선택이지만, 너무 실제적이고 완벽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환상 속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환상 속에 있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뭐, 어디로 가면 어때! 어차피 모든 길은 진리로 통하니, 결국 목적지에서 만날 거야.”라고 자위한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말라. 이것은 당신이 삶에서 만나는 진짜 기회, 내려야 하는 진짜 결정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길은 사방팔방으로 나 있으니, 당신은 그중에서 바른 길을 찾아 그 길을 따라야 한다.
이때 당신의 결정에 따라 성공이 좌우된다. 함부로 결정하지 말라. 당신이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당신 삶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준다. 오늘 내린 결정이 내일 당신 삶이 된다. 지금 당신이 무슨 결정을 내리냐에 따라 미래에 당신이 무슨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정해진다. 자신의 운명도 아니고 아무 의미도 없는 길을 선택하면, 당신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데 세월을 다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가기로 한 길, 내면의 앎이 인정하고 확인해주는 길을 가면,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앎을 향하고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것이다.
기반 다지는 일은 영적성장에 기초 작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완전히 성취한 자신의 최종 상태를 혼자 상상 속에서 보고 싶어 하므로 기반 다지는 일을 소홀히 한다. 그러면서 상상 속에서 그린 그 상태가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원하고 기대한다. 심지어 창조주에게 그것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확언을 하고 남들에게 공언을 하며, 자신이나 남들에게 엄청난 요구를 한다. 그들은 기도하는 척하지만, 실은 그들 소원이 성취되어야 하며, 그것도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바라지 않으며, 진실을 체험할 능력도, 자신의 운명을 직시할 힘도 없다.
일단 당신이 삶에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되돌아오기가 매우 어렵고, 너무 멀리 가버리면, 되돌아올 수가 없다. 그러니 삶을 재미로 살지 말라. 관계를 맺거나 사회활동을 할 때 장난삼아 하지 말라. 원하는 것을 당신에게 가져다주고, 당신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니, 필수적인 일을 찾아내려고 하라.
우리는 거창하거나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마치 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갖는 마법처럼 순식간에 부자가 되거나 사랑을 얻는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며, 순식간에 의미를 찾거나 목적을 성취한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환상 속에서 헤매는 몽상가들이 꿈꾸는 목표다. 우리가 알려주는 것은 길이자 수단이며 현실이다. 또한 당신 내면에 앎이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주로 당신 내면에 있는 앎에게 말한다. 당신의 앎이 우리를 부르고 큰 진리인 이 메시지, 이 가르침을 부르듯이 우리가 하는 말도 당신의 앎을 부른다.
삶에는 네 기둥이 있으며, 당신은 이 기둥들을 가지고 기반을 다진다. 관계, 건강, 일, 영적 성장으로 이루어진 네 기둥이 삶의 기반이 되는 주춧돌이다. 삶의 네 기둥을 다지는 일은 당신의 일상 활동이면서 동시에 배우기 위한 큰 도전이다. 세상에서 하는 활동은 주로 이 범주 안에 있으므로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은 당신이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당신이 얼마나 잘 다지고 있느냐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영역들 하나하나를 잘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에 몰두하여 다른 영역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영역을 잘 다져야 한다.
이 영역은 관계, 건강, 일, 영적 성장을 말하며, 이 안에서 앎을 체험하고 표현하며 공헌한다. 당신 주위를 둘러보면, 모든 영역을 골고루 다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기반이란 엄청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관계는 건전하고 집중되어 있으며 그 안에 목적이 있음을 뜻한다. 건강은 삶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행할 수 있을 만큼 적절해야 한다. 일은 이 목적을 이루도록 돕고, 또 표현하는 것이다. 영적성장은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적절한 균형을 말하고 있다. 삶의 네 기둥을 식탁의 네 다리처럼 생각하라. 한 다리만 부실하거나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도, 식탁이 불안정하여 그 위에 어떤 것도 올려놓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삶의 기반을 말할 때, 우리는 삶의 네 기둥을 말하지, 경이롭고 환상적인 영적 여행이나 형이상학, 멋진 개념들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삶의 주춧돌들을 말하며, 이것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두 중요하다. 세상에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강을 소홀히 다루고 경제기반을 제대로 다져 놓지 못해 항상 땜질하듯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또는 많은 돈을 벌고 훌륭한 경력을 쌓았지만, 참된 관계는 하나도 맺지 못하고 영적성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의 기둥 중 어느 한 기둥, 드물게는 두 기둥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대가로 다른 기둥들을 방치하여 균형을 잃어버렸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관계에 자신의 삶을 몽땅 바쳤지만, 건강이나 재정 문제로 발목이 잡히거나 의미 있는 일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네 기둥은 모두 중요하니, 당신은 모든 영역을 골고루 다져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목표가 현실적이 되고, 당신의 삶이나 이 시대의 현실에 부합된다. 모든 영역을 골고루 다지면 모든 영역에서 도움을 받는다. 만약 한 기둥이라도 소홀하면, 당신이 혼신을 다하여 다른 영역에서 이룬 성공도 해를 입을 것이다.
모든 영역을 골고루 다지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많은 야망이 있어 그들 삶이 자신이 바라던 대로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으며,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관계를 갖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간혹 성자나 스승이 되어 남들에게 감명을 줄 만한 영적인 일을 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이런 동기들은 모두 자부심을 갖고 싶은 데서 생긴 것이지, 앎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진짜 동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잘 보라.
여기서 정말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당신은 기반을 골고루 다져 생활을 해나가면서 당신 내면에서 앎이 드러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자랑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찾고 있으며, 삶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하는 능력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균형을 가지고 접근할 때, 당신의 욕망이 누그러질 것이고, 두려움 또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기둥에는 두려움을 느끼며, 심지어 모든 기둥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균형을 갖출 때 욕망과 두려움이 누그러지며 인격이 쌓이고 역량이 커진다. 당신이 야망이나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앎이 이끄는 삶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성장을 관장하는 위대한 스승들, 즉 불가시존재들은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굳은 결의와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을 지켜본다. 불가시존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가장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당신이 앎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다. 당신은 앎과 진리를 원하고, 평화를 바라며,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기반 위에 놓이는 것에만 관심을 쏟지만, 불가시존재들은 기반에 관심을 쏟는다. 불가시존재들은 시작점에서 출발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은 끝에 서있기를 원한다. 앎길을 배우고 따르는 삶을 사는 데 기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가시존재들은 알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두려움을 품거나 거창한 생각만을 한다.
당신은 기반을 다지면서 기반 다지는 법을 알게 된다. 달리 길이 없다. 기반을 다지는 데 철학이나 가설이 있을 수 없으며, 그저 기반 다지는 일만 있다. 당신은 길을 따름으로써 길을 배우고, 해봄으로써 할 줄 알게 된다. 또한 앎으로 가는 계단을 함으로써 앎으로 가는 계단을 배우고, 지혜를 써봄으로써 지혜를 얻는다. 길을 따르는 데는 이것 말고 달리 길이 없다. 그래서 이 길은 아무런 꾸밈이나 장식이 없이 신선할 정도로 단순하고 솔직하며 열려 있다.
기반을 다지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니 기꺼이 하라. 이 기반 위에 세울 것은 당신과 불가시존재들, 영적가족이 함께 세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먼저 기반을 다져야 한다. 기반 다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당신은 기반을 다져나가는 동안 그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인내심을 갖고 기반을 잘 다져나가면, 삶은 당신에게 참으로 경이로운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 일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에 당신을 돕는 신비로운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이들 도움은 참으로 진실하다.
진짜 관계는 세상에서 참으로 희귀해 보이지만, 당신은 기반을 다지고 있으니, 금방은 아니더라도 진짜 관계가 여기저기서 날마다 조금씩 분명해질 것이다. 기반을 다지면 또 다른 보상이 있으며, 이 보상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큰 목적을 위해 기반 다지는 일이 삶의 첫 번째 단계를 마무리한다. 과거에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도 그 일들이 이제 모두 기반 다지는 데 쓰이게 된다. 어떤 실망스러운 일을 겪었든, 어떤 실수를 했든, 재난을 자초했든 당했든, 또 그 재난이 얼마나 컸든,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는 목적을 가진 큰일에 쓰이게 된다.
앎길은 당신 자신의 일부나 삶의 일부를 버리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모두 의미 있게 결합하도록 한다. 이처럼 어떤 것도 폐기 처분하지 않고 모두 다시 가져다 쓴다. 당신의 손실을 한탄하거나 실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배운 것을 인격과 역량을 쌓는 데 쓰고 남들을 돕는 데 쓴다.
시대를 불문하고 위대한 이들 모두 많은 실수를 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실수를 인격과 역량을 쌓는 기회로 삼았으며, 바로 그 점에서 그들이 달랐다. 실수는 신성한 의도로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지만, 실수를 신성한 목적에 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유용한 것이 되었다. 이처럼 당신도 실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수를 유용하게 쓰는 법이며, 이때에만 유일하게 실수에 가치가 있다. 실수를 긍정적으로 쓰지 못하면, 실수는 오직 당신의 오점으로만 남을 것이다.
기반을 다지면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생성되지만, 이전에 구축한 것들도 모두 기반 다지는 데 재료로 쓰인다. 의미 있는 공헌을 위해 기반 다지는 일을 한다면, 이 일은 모든 것을 유익하게 해준다. 이것이 창조주 계획의 일부다. 모든 것이 다시 쓰이게 된다. 당신이 앎 없이 무슨 일을 저질렀든 그 일들이 이제 모두 앎에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당신이 자신이나 남들에게 해가 되는 무슨 일을 했더라도 그 일들이 이제 모두 지혜와 연민, 분별력을 키우는 데 쓰이게 된다.
용서가 실제로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이 뜻이 아니면, 용서는 단지 자신의 체험에 부정직하겠다는 결심, 체험을 감추거나 잊어버리겠다는 결심일 뿐이다. 진짜 용서는 낡은 것을 새 것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며, 쓸모없는 것을 쓸모 있는 것으로,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이때 당신의 잘못은 고통과 불안의 원천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많은 사람이 당신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나도 똑같은 잘못을 했다. 거기에서 나는 이것을 배웠고,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하고 있다.”라고 당신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려 깊은 말인가! 또 듣는 사람에게나 가르쳐주는 사람에게나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이와 같이, 기반을 다지는 일은 단순히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즉, 과거를 활용하여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데 돕는다. 이런 기반 다지기가 없다면, 과거는 단순히 현재를 암울하게 하고 미래를 이해할 수 없게 할 뿐이다. 그래서 과거에 묶여 사는 사람은 현재를 체험할 수 없고 미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체험을 항상 과거에 끼워 맞추어 기존 관념이나 믿음, 가정을 더욱 강화하는 데 쓴다. 그 결과 그들 삶은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같은 것이 된다. 거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것이 없으며, 신선함이나 활력이 전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과거 기억뿐이어서 그들의 고통은 뼛속까지 스며 있고, 판단은 콘크리트처럼 굳어 있다.
생각하는 마음은 활기차게 배울 수 있도록 새로운 체험으로 끊임없이 휘저어 새로운 체험과 이해에 적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치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것과 같다. 콘크리트에 물을 넣고 젓듯 마음에 새로운 것을 넣고 끊임없이 저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굳는다. 마음은 한 번 굳으면 깨질 수밖에 없다.
앎길을 배우고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 가까이 있고 앎에 가까이 있으므로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신선해진다. 그들은 생각이 바뀌고 관념이 바뀌며 결론이 바뀐다. 그래서 생각과 관념, 결론이 모두 계속 성장하고 진화한다. 이처럼 생각이 바뀌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더 큰 것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 내면은 물론 세상과 큰공동체 안에도 앎이 있고, 삶의 활력이 있기 때문이다. 앎은 당신을 삶의 가장자리로 데려가 그곳에서 배우고 적응하며 소통하고 공헌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당신을 젊게 하고 살아있게 하며 삶의 중심에 다가가게 한다. 이때 당신 마음은 항상 현재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게 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삶의 첫 번째 단계를 마치려면, 당신은 삶의 두 번째 단계와 마지막 단계를 밟아야 한다. 삶의 첫 단계는 개인 성장이다. 두 번째 단계는 큰 목적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당신의 과거와 평화로이 지내기 위해 새 삶을 구축해야 하고, 과거를 이해하여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쓰기 위해 새 기반을 구축해야 하며, 당신을 항상 괴롭히는 두려움과 걱정에서 해방되기 위해 삶과 새롭게 결합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당신에게 <앎길을 따르는 삶>을 알려주는 것은 바로 이처럼 구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큰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다. 자, 이제 세상 현실과 앎의 진리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앎길을 배우고 따르는 것인지 네 기둥을 하나하나 탐구해 나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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