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오시엔)는 누적 조회 수가 8억회에 달하는 김용키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이끼>나 <소름>이 그랬듯이, 낯설고 폐쇄적인 장소에 들어간 주인공이 겪는 밀실 공포를 그린 스릴러물이다.
<이끼>가 시골 마을, <소름>이 철거 직전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했다면, <타인은 지옥이다>는 고시원을 배경으로 삼는다. 드라마는 원작이 제공하는 탄탄한 서사와 더불어, 촬영, 조명, 미술, 음향, 편집, 연기, 연출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만듦새를 보여준다. 특히 실물 크기로 지은 고시원 세트는 굉장한 사실감을 자아낸다.
원작이 웹툰의 특성상 1인칭 시점을 활용한 심리 스릴러적 묘미를 극대화한 반면, 드라마는 일찌감치 사건의 실체를 드러낸다. 즉 웹툰에서는 주인공의 심리가 이상한 건지,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이상한 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쌓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의 곤경을 일찌감치 납득시키고, 잔혹하고 섬뜩한 범죄 묘사에 치중한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고시원이 어떤 곳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에서 서울로 온 26살 종우(임시완)는 고시원을 알아본다. 선배가 창업한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동안 머물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 55만원의 괜찮은 방에서 월 45만원의 방과 월 27만원의 방을 거쳐, 월 19만원의 에덴고시원에 이른다.
변두리 재개발 지역 꼭대기에 위치한데다, 전에 살던 외국인 입주자가 자살해서 방값이 싸단다. 4층 여성전용실은 화재로 불탔지만, 수리를 못해 폐쇄돼 있다.
종우는 좁고, 더럽고, 쾨쾨한 방에 누워본다. 방음이 안 돼 전화도 받을 수 없고,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옆방의 누군가 말한다. “고시원에는 세가지가 없다. 고시생이 없고, 햇빛이 없고, 우릴 찾는 사람이 없다.” 드라마는 ‘에덴’고시원이라는 역설적인 공간에서 고립된 개인이 겪는 불안, 우울, 착란, 자살, 범죄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흔히 고시원을 ‘21세기 판자촌’이라 부른다. 과거 빈민촌들이 재개발되어 사라지자, 보증금 없는 싼 월세방이 필요한 빈민들이 고시원을 찾았다. 2000년대 이후 고시원·고시텔은 3배 이상 늘어, 지난해 국토교통부 보고서에 따르면 15만여가구가 그곳에 살고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180만원이다. 2014년 논문에 따르면 서울 지역 고시원 거주자 평균 연령이 52세로 입주자 중 상당수가 일용직이나 무직의 중장년층이다. 또 고시원 화재 사건에서 보듯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꽤 많다.
종우가 복도에서 마주친 입주자들은 중년의 조폭, 발달장애인,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 등이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이 몇명이나 있겠어?” 종우의 여자친구가 말한다. 종우도 고시원에 사는 자기 처지를 떠벌리는 선배가 못마땅하다. 음침한 복도를 지날 때마다, 서로를 벌레 보듯 하는 혐오의 시선이 교차한다. 벽
은 얇고 구멍이 나 있으며, 자물쇠도 헐거워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지만, 함께 산다는 느낌도 없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무더운 여름 옆 사람과 살을 맞대고 붙어서 잔다는 것은 고역입니다. 당연히 옆 사람이 미워집니다. 이러한 증오가 잘못된 것이란 결정적 반성은 겨울을 기다려야 합니다. 겨울철엔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옆 사람을 증오하지 않고 따뜻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최대의 은혜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과거의 판자촌이 서로를 온기로 느꼈던 ‘겨울 징역살이’였다면, 현재의 고시원은 ‘여름 징역살이’에 가깝다. 옆 사람은 짜증과 증오를 유발하는 존재고, 고시원은 ‘타인은 지옥이다’란 명제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영화 <기생충>이 그랬듯이, 드라마는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서서히 쌓이다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는 순간을 보여준다. 종우는 직장과 고시원에서 점차 증오의 압력이 차오른다. 더욱이 그에게는 군대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있다. “왜 고시원에만 오면 머리가 아프지?” 종우의 두통은 누군가 먹인 약 때문이지만, 비단 약물이 아니어도 죽거나 미치거나 병나는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드라마는 엽기적인 범죄를 펼쳐 보인다. 원작과 달리 연쇄살인의 주범은 말쑥한 치과 의사다. 그가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와 입주자들을 하수인 삼아 살인을 벌인다. 드라마는 그들이 시신을 훼손해 육회로 먹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범죄 묘사는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관습적이다. 드라마는 사회적 편견을 이중으로 강화한다. 즉 연쇄살인의 수괴를 대단히 냉철하고 이지적이며 탐미적인 인물로 그리는 한편, 고시원의 빈민들을 위험한 존재로 각인시킨다.
실제 연쇄살인범들은 탁월한 존재가 아니다. 여성 등 약자를 골라 폭행하는 비루한 자들로, 대개 사회화에 실패한 인물이다. 이들을 천재적인 악마인 양 재현하는 것은 할리우드 장르물의 관습을 따르는 것이다. 고시원 입주자들도 목돈이 없어 주거에 고통을 겪는 약자일 뿐, 기괴한 좀비 떼가 아니다.
그들의 칼끝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하기 쉽다. 즉 연쇄살인을 저지르기보다 자살이나 고독사할 확률이 훨씬 높다. 박민규의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는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밀실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난 혐오’를 멈추고, ‘주거 인권’과 ‘주거 복지’를 말할 때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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