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아이 앰 더 나이트>
1965년 미국 네바다주, 16살 팻(인디아 아이슬리)은 엄마 지미 리(골든 브룩스)와 단둘이 어렵게 살아간다. 겉보기엔 전형적인 백인 소녀지만, 유색 인종의 피가 섞인 팻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날, 흑인 소년 루이스와의 교제 문제로 엄마와 갈등하던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관한 뜻밖의 진실을 접하게 된다. 한편, 예전에는 천재 기자로 불렸으나 현재는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 제이 싱글테리(크리스 파인)는 한 여성의 사망 사건 취재를 맡는다. 로스앤젤레스의 백인 지식인 남성과 네바다의 유색 인종 소녀, 너무도 다른 세계의 두 사람은 이 살인 사건을 통해 접점을 찾게 된다.
미국 케이블채널 <티엔티>(TNT)의 신작 <아이 앰 더 나이트>(I Am the Night)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스터리 드라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미제 사건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일명 ‘블랙 달리아’ 살인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외모의 피해자, 잔혹하게 훼손된 시신 등 선정적인 언론들이 집착할 만한 요소를 갖춘 이 사건은 실제로 엄청나게 과열된 취재 경쟁을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사건 보도의 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이면에는 또 다른 미제 사건과 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다. 1949년, 외과 의사 조지 힐 호델이 딸 타마르 호델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그의 변호인단은 14살이었던 타마르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갔고 이 전략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조지 호델은 무죄로 풀려난 반면, 딸은 거짓 고발로 소년원에 갇히게 됐다. 조지 호델은 엘리자베스 쇼트 살인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 중 하나였다.
<아이 앰 더 나이트>의 주인공 팻은 바로 이 조지 호델의 손녀 파우나 호델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아직 십대 초반이었던 타마르가 낳은 파우나는 흑인 청소부에게 비밀리에 입양되어 흑인 사회에서 자랐다. 훗날 할아버지의 추악한 범죄와 가족사를 알게 된 파우나는 자신과 엄마 타마르의 이야기를 직접 글로 썼다. 1991년 영화로 개봉할 예정이었던 파우나의 이야기는 석연치 않은 사정으로 끝내 공개되지 못했으나, 좌절하지 않은 파우나는 2008년 다시 회고록을 출간한다. 드라마는 바로 이 회고록에 근거한 이야기다.
영화 <원더우먼>의 감독 패티 젱킨스가 연출한 <아이 앰 더 나이트>는 엘리자베스 쇼트와 마찬가지로, 잔혹한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선정적으로 소비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녀들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드라마에서 팻은 비극의 희생양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과거의 비밀을 추적해가는 모습은 수사물의 탐정 못지않다. 출생의 비밀을 두고 ‘부유한 백인 가족 출신'이라는 배경을 강조하는 엄마와 달리, 팻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제 첫회가 나갔을 뿐이지만, 그동안 여성착취적으로 소비된 ‘블랙 달리아’ 사건의 다른 시점 이야기가 될 것이라 기대하는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80925.html?_fr=mt3#csidxa71856e0bab4390a629593b9f25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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