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을지로 따비 현장에서
지난 1월 을지로 굴다리에서 일입니다. 몹시 추운 겨울 일요일 저녁 노숙자봉사 현장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이 있습니다. 전재성박사와 함께 온 사람은 생활한복을 입고 모자를 썼습니다. 평소 전재성박사 혼자 차 타고 오는데 이날 두 분이서 왔습니다. 궁금해서 “어디서 오셨습니까? 누구십니까?”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김열권입니다.”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많이 들어 보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김열권법사님입니까?”라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열권법사가 을지로 굴다리 따비(봉사) 현장에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수행지도 하는 법사로서 수행처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뜻 밖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재성박사하고 친구입니다.”라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재성박사와 대불련 친구입니다. 전재성 박사 댁에 들렀는데 전재성박사가 을지로 현장에 한번 가보자고 해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물어 보니 몇 년 전에 한번 함께 나왔고 이번이 두 번째라 했습니다. 나중에 을지로따비 회향하는 날 한번 더 현장에 나왔습니다.
인터넷포교사라고
을지로 따비 현장에서 처음으로 김열권법사와 얘기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짧은 이야기입니다. 김열권법사는 글을 종종 읽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포교사’라고 칭찬하며 추켜 세워 주었습니다. 시간 되면 한번 찾아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날 있었던 봉사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김열권법사에게 문자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잘 읽었다는 답신과 함께 “고통의 뿌리를 뽑아 봅시다.”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자연치유력
3월 28일 이른 오후 김열권법사를 만나기 위해 전철을 탔습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점심약속도 약속이라 했습니다. 더구나 수행자와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습니다. 일주일 전에 잡은 약속날자 입니다. 약속장소는 두산위브빌딩 8층에 있는 ‘열린선원’입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컨디션이 몹시 좋지 않았습니다. 복부에 심한 통증 때문입니다. 이런 통증이 한번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그저 편히 쉬어야 합니다. 마치 두통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쉬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복부통증은 부정기적으로 나타납니다. 작년 허정스님 마지막 법회날일 때도 증상이 있어서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서산 천장사에 갔었는데 그야말로 영어로 말하면 “long long hard day”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슬슬 통증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시간이 지나면 낫습니다.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낫습니다. 아마 우리 몸안에서 자연치유력이 작동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도 일주일이고 가지 않아도 일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병은 그저 가만히 쉬기만 해도 저절로 낫습니다. 하루 밤 푹 자고 나면 그 다음 날 거짓말처럼 낫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몸이 조금만 아파도 호들갑 떠는 것 같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이 검사 저 검사 받아 보지만 혹떼려 갔다가 혹 붙여 올 수 있습니다. 온갖 병균으로 가득한 병원에서 병을 옮겨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느 법우님은 지나친 건강염려증으로 인하여 병원에서 병을 옮겨와 수 개월 고생한 바 있습니다.
건강의 교만에 대하여
항상 건강할 수 없습니다. 날씨가 늘 바뀌듯이, 사람의 몸 역시 늘 바뀝니다. 지금 컨디션이 최고라 하여 무리한다면 탈이 날 수 있습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하여, 지금 젊다고 하여 남용한다면 후회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건강의 교만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젊은 시절에 젊음의 교만이 있는데, 그 교만에 빠져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한다.”(A5.57) 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 건강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남용’합니다. 위가 강한 사람은 매일 소주 한두병씩 마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철과 같은 위라도 술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결국 위장병을 얻어 술을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폐인처럼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젊다고 하여 쾌락을 즐기는 자들도 교만에 빠진 자들입니다. 부처님은 이들에 대하여 젊음의 교만이라 하여 “뭇삶들은 젊은 시절에 젊음의 교만이 있는데, 그 교만에 빠져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한다.” (A5.57) 라 했습니다. 건강의 교만이나 젊음의 교만이나 결국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으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계를 지키지 않는 삶, 십악행의 삶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의 교만, 젊음의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처님은 다섯 가지 교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나는 늙음에 종속되었으며 늙음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자주 관찰해야 한다.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나는 질병에 종속되었으며 질병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자주 관찰해야 한다.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나는 죽음에 종속되었으며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자주 관찰해야 한다.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나는 모든 사랑하는 것과 마음에 드는 것과 헤어지고 이별해야 한다.’라고 자주 관찰해야 한다.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나는 업의 소유자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의 원인자이고 업의 친연자이고 업의 의지처이고 내가 선이나 악을 지으면 그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자주 관찰해야 한다.”(A5.57,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남녀구분없이, 출재가를 막론하고 다섯 가지 사실에 대해 자주 관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늙음, 질병, 죽음, 이별, 업의 주인을 말합니다. 젊음의 교만에 대해서는 늙음을 생각해야 하고, 건강의 교만에 대해서는 질병을 염두에 두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젊을 때 이 젊음이 영원할 것처럼 즐기는 삶을 살아 갑니다. 이는 젊음의 방종입니다.
젊음의 교만이라는 말은 빠알리어 ‘yobbanamado’의 번역인데, 이 말은 ‘yobbana(youth) +mado(Pride)’의 형태입니다. 그런데 교만을 뜻하는 마다(mada)라는 말을 보면 ‘pride; intoxication; conceit; sexual excess.’의 뜻이 있습니다. 특히 ‘sexual excess’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젊음의 교만(yobbanamada)은 과도한 성적행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위를 과신한 자는 매일 소주 한두병 마십니다. 그 결과 위가 망가지고 각종 질병에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젊었을 때 방종의 삶을 산 자들은 늙어서는 더 이상 쾌락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건강이 질병에 종속되듯이, 젊음에 종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체적,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만 짓는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건강의 교만에 빠진 자에게는 “나는 늙음에 종속되었으며 늙음을 벗어날 수 없다.”(A5.57) 라 했습니다. 남녀나 출재가를 막론하고 늘 자주 늙음에 대하여 관찰해야 함을 말합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건강의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젊음은 젊었을 때 가치 있게 보내야 젊음의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늘 건강하다고 하여 이 건강이 내일도 건강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 젊다고 하여 이 젊음이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무상하게 변해 가기 때문에 건강과 젊음 또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는 질병과 늙음으로 나타납니다. 남녀나 출재가를 막론하고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하고 젊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재가수행자에게서 보았습니다.
열린선원에서
김열권법사는 열린선원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린선원에서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김열권법사의 위빠사나 강좌가 있습니다. 화요일은 오전에 강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까지 열리는 것으로 착각하여 약속시간을 오후 3시로 잡았습니다. 2시 반에 도착했는데 그때 까지 일부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김열권법사의 위빠사나 강좌는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니까야위빠사나’가 있고, 화요일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니까야 강의 위빠사나 수행’ 있는데 12시 30분에 끝난다고 합니다. 또 1. 2, 3 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5시 까지 ‘호흡법-위빠사나’가 있는데 니까야 강의를 겸합니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니까야강좌와 위빠사나 수행을 병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산위브빌딩 836호입니다.
열린선원에서 김열권법사와 함께 마주 앉았습니다. 넓은 홀에 두 사람만 있어서일까 주변은 고요했습니다. 도심에 있지만 마치 깊은 산속 암자에 있는 듯합니다. 법사님은 커피로 할 것인지 차로 할 것이지 묻습니다. 차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걸려서 보이차를 한 가득 만들어 왔습니다. 최악의 컨디션에 커피 보다 차가 나을 듯 했습니다.
대화할 때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주로 경청하려 했습니다.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남는 장사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화 할 때는 경청하는 자세가 무엇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주었을 때 대화가 잘 통하는 법입니다.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일방적으로 한다면 썰렁할 것입니다.
대화 중에는 때로 침묵도 필요합니다. 반드시 끊임 없이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침묵도 대화가 될 수 있습니다. 침묵 속에 한마디 씩 나오는 말이 진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잘 경청하려 하고 때로 침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경청하고 서로 침묵하려 한다면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법에 대한 대한 대화에는 이런 원리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잡담은 자제해야 하지만 ‘담마토크(Dhamma Talk)’ 하는데 있어서는 얼마든지 떠들어도 됩니다.
약 2시간 반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열린선원에서 뿐만 아니라 대추찻집에서도, 그리고 전철에서도 짤막하면서도 간결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고 단 한번 만의 만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 대하여 알려면 오래 함께 있어 보아야 합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 몇 가지 기억 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격적 변화’이고 또 하나는 ‘수행지도’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수행과 관련된 인격적 변화입니다.
인격적 변화가 일어나야
수행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격적 변화가 일어 나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절에 10년, 20년, 30년, 심지어 평생을 다녀도 인격적 변화는 커녕 ‘아상(我相)’만 높아진다면 역효과일 것입니다. 수행을 하고, 교리를 공부하는 목적은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으로 나아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격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격적 변화를 수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욕망으로 살아 갑니다. 세 살 먹은 아이나 여든 먹은 늙은이나 세상을 살아 가는 방식은 똑 같습니다. 그것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사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들은 세상 사람들과 거꾸로 살아 갑니다. 세상사람들이 탐, 진, 치로 살아 갈 때 수행자들은 무탐, 무진, 무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세상사람들이 눈과 귀 등으로 오욕락을 추구하고, 식욕과 성욕 등으로 또 다른 오욕락을 추구할 때 수행자들은 이런 흐름을 거슬러 삽니다. 역류도(逆流道)의 삶입니다.
오욕락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는데
역류도의 삶을 사는 자에게 있어서 오감에 따른 오욕락이나 세속의 오욕락은 그 다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즐거움입니다. 이를 선정삼매의 즐거움이라 합니다. 흔히 스님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신도가 “스님은 이 깊은 산속에서 무슨 낙으로 살아 가세요?”라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스님은 “세상사람들이 모르는 더 큰 즐거움이 있지요.”라며 선정삼매의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말을 증명할 증거가 되는 경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뭇삶이 최상의 즐거움과 만족을 누린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그러한 즐거움 보다 더욱 탁월하고 더욱 미묘한 다른 즐거움이 있다. 아난다여, 그러한 즐거움 보다 더욱 탁월하고 더욱 미묘한 다른 즐거움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세상에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불건전한 상태를 버리고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윔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든다. 아난다여, 그러한 즐거움 보다 더욱 탁월하고 더욱 미묘한 다른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S36.19,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최상의 즐거움에 대하여 선정삼매에 드는 것이라 했습니다. 경에서는 상수멸에 이르기 까지 아홉 가지 선정단계에 대하여 동일한 정형구를 적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눈과 귀 등 오감으로 얻는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은 오감으로 얻는 행복입니다. 일종의 거친 행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경에 묘사된 신체의 접촉에 따른 감촉의 행복에 대한 것을 보면 “촉각으로 인식되는 감촉도 훌륭하고 아름답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다.” (S36.19)라 했습니다. 이런 행복은 힘과 노고가 들어 갑니다. 욕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욕망을 내려 놓으면 탁월하고 미묘한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오욕락의 행복이 욕망에 바탕을 둔 ‘거친 행복’이라면, 선정삼매의 행복은 욕망을 내려 놓음에 따라 얻어지는 ‘잔잔한 행복’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가장 쉽게 설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호주의 테라와다 빅쿠이자 세계적인 명상가인 ‘아잔 브람’은 오욕락과 선정삼매에 대하여 “ 불교 명상의 즐거움이 대학 시절 여자친구와 나눈 섹스의 쾌감보다 100배는 큰 황홀함이었어요. 그러니 어찌 출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겨레신문, 2015-10-17) 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 했습니다.
인격적 변화의 조건
김열권법사에 따르면 감각적 욕망은 극복 될 수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음식 먹는 즐거움, 술을 마시는 즐거움, 담배를 피는 즐거움 등 갖가지 즐거움 등이 있지만 더 큰 즐거움을 알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선정삼매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굳이 힘들게 노력을 기울여 거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다는 말로 들립니다. 오히려 욕망을 내려 놓았을 때 깃털처럼 가벼워 지기 때문에 욕망에 바탕을 둔 거친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합니다. 이런 수행의 맛을 알았을 때 심산유곡에서 홀로 살 수 있고, 외딴 곳 빈집에 있어도 두렵지 않음을 말합니다.
선정삼매와 같은 더 큰 행복을 알았을 때 인격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합니다. 그것은 욕망을 내려 놓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경에서도 첫 번째 선정에 진입하는 조건으로 욕망을 내려 놓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불건전한 상태를 버리고”라는 문구에서도 확인됩니다. 인격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가장 먼저 욕망을 내려 놓고 착하고 건전한 삶을 사는 것이 요청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구도자로서의 삶
두 번째로 김열권법사는 ‘수행지도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현재 열린선원에서 뿐 만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도 수행을 지도 하고 있는데, 수행을 지도함에 따른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배우는 사람에게서 변화된 모습을 보았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까지 삼사십년 구도자로서의 삶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열권법사가 수행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5년의 일이라 합니다. 그때 당시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일년 정도만 하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 갔다고 합니다. 이후 5년 동안 성철스님, 전강스님 등 선지식을 찾아 구도여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쫒아 다닌 것으로 봅니다.
간화선 수행이 진척이 없는 상태에서 거해스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거해스님의 소개로 깨달음을 찾아 태국, 미얀마 등 남방 테라와다국가로 간 것입니다. 그때가 1990년이라 합니다. 그때 당시 까지만 해도 아무도 가지 않을 때라 합니다. 이후에 남방불교 수행열풍이 불어 수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 등지로 떠났다고 합니다.
김열권 법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남방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 갔습니다. 가서 유명 수행처와 유명 사야도를 찾아 가르침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위빠사나 수행 선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90년대 미얀마로 수행을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위빠사나 1세대 수행자그룹’이라는 말이 있는데 더 이른 시기에 남방에 간 것입니다. 그런데 태국, 미얀마 뿐만 아니라 달라이라마가 머물고 있는 곳에 가서 티벳수행법도 배웠다고 합니다. 이렇게 티벳불교까지 접하게 된 것은 대승위빠사나 때문이라 했습니다.
대승위빠사나
김열권법사는 미얀마계통의 순수위빠사나와는 다른 수행법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를 ‘마하위빠사나’라합니다. 대승불교와 위빠사나를 접목하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여기에는 중관과 유식이라는 두 개의 큰 축에 기반을 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대승위빠사나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 했습니다.
대승위빠사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대승의 교리에 바탕을 둔 위빠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강좌를 할 때에는 니까야를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대승경전이 니까야에 근거한 것이라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승위빠사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법사가 준 ‘위빠사나 워크 북’이라는 자료가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 ‘마하위빠사나명상원(위빠사나붓다선원)의 지향점’이 있습니다. 이 중에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에 근거한 정통 수행법 수련”이라는 문구나 눈에 띕니다. 니까야와 대승경전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깨달은 수행법이라 하여 “아나빠나삿띠(호흡관)를 주 수행법으로 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순수위빠사나와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은 남방 테라와다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대승위빠사나라 해서 대승불교에서도 위빠사나 수행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를 아나빠나사띠라 하여 호흡관 수행이라 합니다. 대승위빠사나는 호흡관을 근본으로 한 수행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처에서는 위빠사나이든 아나빠나사띠이든 모두 다 지도한다고 합니다.
수행지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삶에 대하여 지행합일이라 합니다. 이런 지행합일의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을 지난 1월과 2월 을지로 굴다리에서 보았습니다. 노숙자, 독거노인, 탈북청소년 봉사단체 ‘작은손길’ 사람들입니다. 특히 김광하 대표의 13년 봉사활동을 보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라며 지행합일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는 것은 많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로지 자기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이기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능력껏 보시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는 만큼 알려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김열권법사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김열권법사는 수행지도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라 합니다. 수행 지도 했음에도 변화가 없다면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수 십년간 국내외에서 스승을 찾아 다녀서 배우고 익힌 것을 회향하는 삶입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명상마을 짓기 등을 하지 않습니다.
명상마을 짓기에 대하여
속된 말로 ‘개나 소나’ 한적한 곳에 명상마을 짓기가 대유행입니다. 그 과정에서 ‘모연’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진척되는 것도 아닙니다. 십년전 추진했던 일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방치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오해 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작은손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봉사단체 ‘작은손길’은 3월 5일 완전히 회향 했습니다. 13년 동안 노숙자 등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입니다. 건물도 남기지 않았고 통장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자동이체 통장을 모두 해지 함으로 인하여 완전히 무(無)로 돌아 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봉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 봅니다. 진정한 ‘무주상보시’라 볼 수 있습니다.
김열권법사는 명성에 비하여 가진 것이 없습니다. 열린선원을 빌어서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도단체를 만들어 세력화 하지 않았습니다. 수십년 동안 구도의 결과 치고는 너무나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더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수행도 일천한 자가 마치 교주라도 되는 듯이 조직화 하고 더구나 명상마을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모연행위를 하는 것과 대조 됩니다.
귀가길에 대추차를
3월 28일 오후 최악의 컨디션으로 김열권법사를 만났습니다. 을지로 굴다리에서 인연이 되어 찾아 간 것입니다. 이미 구면이지만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열린선원에서 차담이 끝나고 귀가했습니다. 귀가길에 대추차를 함께 했습니다.
종각 지하도 입구 들어 가기 전 이면 길에 작은 찻집이 있습니다. 대추차 등이 있어서 커피점과는 다릅니다. 김열권법사가 단골로 가는 곳이라 합니다. 대추차 한잔에 3,000원 합니다. 시중의 커피값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가치는 커피 이상입니다. 큰 대접에 가득 따라 주는 대추차를 마셔 보니 마치 보약같습니다. 최악의 컨디션 상태가 조금은 나아 보입니다. 종로에 자주 갈 일이 있는데 나중에 사람 만날 일이 있으면 이곳을 활용할까 합니다.
큰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것처럼
종각에서 노량진역까지 지하철을 함께 탔습니다. 지하철에서 사띠에 대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사띠가 가능한지 물어 본 것입니다. 하루 종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마 ‘수행력’일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생기듯이, 또 글을 오래 쓰면 ‘필력’이 생기듯이, 수행을 오래 한 사람은 ‘수행력’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렇게 늘 사띠 하다 보니 사띠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김열권 법사는 늘 근엄한 모습 같습니다. 무표정하지만 눈빛은 형형합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지 평정을 잃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팔풍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 가는 것 같습니다.
김열권법사는 겉보기에는 냉정해 보이는 듯합니다. 그것은 좀처럼 표정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항상 ‘바른 생활’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늘 바른 말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사람에 따라 재미없고 무미건조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수행을 하고 지도를 해 왔지만 그다지 인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기를 끌기 위해 과도한 액션을 취하는 사람 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지식이나 수행이 일천한 사람이 마치 원맨쇼 하듯이 과도한 몸동작이나 과도한 의성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때로 불편함과 불쾌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앎과 봄이 있는 자들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큰 강물이 소리 없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여울들이나 골짜기들과
흐르는 강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릅니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못과 같습니다.
수행자가 많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자각적으로 가르침을 설하며,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각적으로 자제해서
자각적으로 많이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성자의 삶을 누릴만하며,
그는 성자로서 성자의 삶을 성취한 것입니다.”(stn.720-723)
2017-03-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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