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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가 몰랐던 역사이야기 - 이스라엘 성립사2

황령산산지기 2016. 9. 3. 11:24

▣이스라엘 성립사2

◉수메르 제천문화의 전승
유대족은 120세로 임종한 모세를 여리고(Jericho) 맞은 편 모압 땅에 묻고,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40년 간의 방황을 끝내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이스라엘인들은 오직 야훼 신을 받들기로 약속하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돌아왔지만, 자신들의 조상들이 수메르 시대부터 행해 오던 다신 신앙의 풍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단적인 예가 가나안인이 섬기던 바알 신과 아세라 여신을 그들도 숭배한 것이 다(「사사기」 2:13).

이스라엘인은 신을 모시는 사당을 높은 곳에 지었는 데, 이것은 지구라트라는 인공 산을 세우고 그 꼭대기 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낸 수메르인의 관습과 일치한 다. 또한 아브라함 이래로 이스라엘인이 신에게 제사를 지낸 방식에도 수메르의 전통이 그대로 배어 있다.

「레위기」에 따르면, 구약 시대에 유대인이 행한 제사는 크게 번제燔祭, 소제素祭, 화목제和睦祭, 속죄제贖罪祭, 속건제贖愆祭 등 다섯 가지이다. 번제는 가장 주요한 제사로, 가축이나 새 같은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제사이다. 번제는,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부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 족속의 구분 없이 올린 지배적 인 제사 형식이었다. 이것은 야훼신을 숭배하는 선지 자 엘리야와 바알 신을 숭배하는 선지자들 사이에 벌어진 대결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갈멜 산에서 벌어진 이 대결에서 바알 선지자들의 제물에는 불이 붙지 않았지만 엘리야의 제물에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물을 모두 태워 엘리야가 승리하였다. 승리한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였다(「열왕기」 상 18장).

소제는 곡물 가루로 드리는 제사이기에 유일하게 피가 없는 제사이다. 곡물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얹어 제단 위에서 태우면서 제사를 올린다. 속죄제는 야훼 의 금령을 범한 경우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한 것이다. 죄를 범한 사람의 지위에 따라 바치는 동물의 등급이 달랐고,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피를 제단에 바르 거나 제단 밑에 뿌렸다. 속건제는 야훼의 성물을 파손 하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 올리는 제사로, 제물로 숫양을 바쳤다. 화목제는 신의 은혜에 감사드 리는 제사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올리는 제이기 때문에, 제물을 태우지 않고 제사장에게 선물로 주거 나, 가족이나 이웃과 나눠먹을 수 있었다.

유대교의 초기신앙은 대개 제사문화의 흔적이 역력하 다.

모세5경 가운데 「레위기」는 상당 부분이 각 제사 에서 성막을 어떻게 짓고, 휘장의 색은 무엇으로 하고, 무슨 고기를 쓰고, 고기 각은 어떻게 뜨고, 향은 무엇 을 쓰고, 손 닦는 물은 어디에 두고 등등 제사의 형식 과 절차에 관한 기록이다. 유대교의 제사 예법을 정립한 점에사 모세는 참으로 위대하다. 하지만 모세는 모세5경을 기록하면서 유대교의 원형인 수메르의 신앙 전통, 특히 다신 신앙을 전적으로 은폐한 잘못을 범하였다.유대교에서는 모세5경을 모세가 지은 것으로 믿지만, 성서학자들은 대부분 야훼 일신론이 확립된 뒤에 지어진 것으로 본다.

또 하나 수메르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관습은 조상 제사이다. 수메르 문명권에 속한 중동의 여러 사회 에서는, 망자亡者는 무덤 속에서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무덤 속에 음식과 음료를 넣어 주는 관을 따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본래는 유대인도 이러한 사후관을 바탕으로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에게 예를 갖추었다.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예법인 것이다.

그러나 타민족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철저히 자기 민족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철저히 우상숭배 라하여 파괴했다. 유대조상을 타민족의 조상으로 믿도록 하는 개종과정에서 나타난 종교제국주의 악폐였던 것이다.

야훼는 스스로 유대 백성을 향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애굽기」 3:6)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런 유대족의 창세사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인류보편사로 왜곡이 돼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대가인 하버드 대학 쿠겔James Kugel 교수가 밝힌 “유대인의 묘지에서 발견되는 그릇, 단지, 물병 등은 죽은 자에게 제사를 올릴 때 쓴 제기 였다”라는 연구 결과도 이런 사실을 말해 준다.

고대 이스라엘인이 영혼을 믿고 조상을 숭배했다는 것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마침내 통일왕국을 세운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울Saul의 일화에서도 나타 난다. 사울 왕은 블레셋인과의 전쟁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무당을 찾아가, 예언자이자 제사장이었던 사무엘Samuel의 영혼을 불러오게 하였다. 사무엘의 영혼이 나타나자 사울은 땅에 엎드려 절하며“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올렸나이다”(「사무엘상」 28:15)라고 하며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사울 왕의 행위는 동방 신교문화에서 조상을 따르고 의지하는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David Rohl이 밝혔듯이, 수메르 서사시와 『구약전서』의 강한 연관성에서도 유대교가 수메르 문화의 절대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 음을 알 수 있다.

모세가 이집트를 벗어나 히브리인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유랑한 때는 고 바빌로니아 시대의 암미사두 왕 때이다. 그때는 수메르의 서사시 가 아카드어로 번역되어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다.

모세가 「창세기」의 원저자라면, 그는 바빌론 사람 들이 자신들의 조상인 메소포타미아인(수메르인)의 전설을 널리 알리던 시기에 이스라엘 조상의 역사를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그때 모세는 「엔메르 카르와 아라타의 지배자」(엔메르카르 왕의 무용담 )와 같은 수메르 서사시를 읽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 그 서사시에 “온 우주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말로 엔릴을 찬양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엔릴을 믿었다’는 뜻으로, 대홍수 이전에는 종교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모세는 야훼를 절대자로 모시는 새로운 신앙 을 유대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사용된 언어가 하나였다’는 원래 뜻과 다른 의미를 채택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 라”(「창세기」 11:1)라는 구절이다.

모세는 또한 야훼가 ‘인간을 흩어지게 만들려고 언어 를 혼잡하게 하여 바벨이란 도시 건설이 중단되게 하였다’라고 서술하였다. 따라서 「창세기」 의 언어 혼란 에피소드는 모세가 고대 수메르 전설을 잘못 해석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문명의 창세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천문화를 연 주인공들의 신교의 소도문화는 유대교에 전수되었다. 고대 동방 문화에서는 이런 소도성지가 각지에 설치하여 죄인이라도 그곳에 들어온 자는 추궁하지 않았다 .

동북아의 소도가 “도피성逃避城”이란 이름으로 『구약전서』에 기록되어 있다. 도피성에 대해 「출애굽기」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 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출애굽기」 21:12~13).
도피성은 고의가 아니라 실수나 신의 뜻에 따라 살인한 자가 도피하여 재판을 받기까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설치한 성읍이다. 모세가 처음 설치하였고, 모세의 승계자로서 이스라엘인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간 여호수아도 요르단강을 따라 6개의 도피성을 설치하였다. 이들 성읍은 도망자가 유대 땅 어디에서든 하루 안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고 한다.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또한 동방 신교의 영생불사의 선仙 사상이 강렬하게 배어 있다. 동방 신교의 신선 사상은 수메르 문화에 먼저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 예가 수메르의 영웅이자 왕인 길가메시의 모험담을 담은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영생의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난 길가메시가 엔릴에게 기도한 후 일곱 산맥 너머에 있는 생명의 땅에서 우트나피쉬팀을 찾아낸다. 여기에서 길가메시가 여행에 나선 목적인 ‘영생’은 바로 신교의 불로장생 신선 사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을 만난 곳 ‘일곱 산맥 너머에 있는 생명의 땅’ 역시 선 사상을 표현한 다. ‘일곱 산맥’은 신교의 선 사상의 상징 언어인 칠성七星을 지리학적으로 표현한 말인 것이다.
이러한 수메르의 칠성사상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7수 사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여호수아」 6:4)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제천문화를 연 동방 신교의 토양에서 태어난 종교이다. 특히 신교의 선사상을 계승하여 불멸과 영생을 추구한 ‘서양의 선[西仙]’인 것이다.

◉ 제정일치 대제사장의 모델, 멜기세덱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신교의 제사장 문화 또한 전수되었다. 이스라엘인의 역사가 시작되던 아브라함 시절의 제사장을 『구약전서』는 멜기세덱이라 전한 다.

멜기의 뜻은 ‘왕’이요 세덱의 뜻은 ‘의義’로서, 멜기 세덱은 ‘정의의 왕’이다. 멜기세덱은 살렘 지역의 왕이었는데, ‘평화의 왕’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제사장, 즉 지고한 하나님의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백성을 거느린 통치자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간 엘람 왕들과 대적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를 되찾아 오자,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떡과 술로 대접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축복하였다. 이에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다 (「창세기」 14:17~20).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 원문은 ‘엘 엘욘El Elyon’으로 엘의 존칭이다.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 아브라함을 축복해 줄 것을 간청한 이 사건은, 멜기 세덱의 신분이 유대인과 하나님을 이어 주는 대제사 장이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지금의 『구약전서』에서는 멜기세덱의 자세한 행적 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고대 제정일치 시대에 제사장의 본분은 천신에게 올리는 천제를 주관하는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이 그들의 최고신 야훼(하나 님)에게 수많은 제사를 올린 것을 생각할 때, 멜기 세덱은 이스라엘 제천문화의 주관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 천산을 넘어온 수메르 제사장 의 제천문화가 유대 사회에 전파되었고, 멜기세덱은 동방 제사장 문화의 원형을 계승한 인물로 당대의 제사장으로 제천을 집행하였을 것이다. 그 흔적이 바로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산제천문화 피라미드다. 이미 피라미드의 원형이 홍산유적의 원형제천단이었다는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수메르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발굴을 통해서 고증을 한 바이다.

그런데 『신약전서』의 기록자들은 그를 조상과 부모도 알 수 없고 생몰연대도 알 수 없는 신화의 인물로 만들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브리서」 7:3).
이렇게 신화적 인물로 만든 것은 그를 신성시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수메르를 통해 유대 사회에 전수된 동방의 고대 제천문화의 자취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제천을 주관한 제사장의 생애를 전혀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유대의 제천 문화의 역사적 연원을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에 따라 유대 문화와 그 뿌리인 수메르 문명 사이의 연관성을 부정하였다. 이처럼 사실을 감추는 수법은 일본이 초대 왕 진무의 실체를 감춤으로써 일본과 고조선의 연결을 단절시킨 것과 똑같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왕과 제사장을 겸한 멜기세덱은 후대 이스라엘인에게 이상적인 군주 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신약 시대 를 연 예수를 ‘멜기세덱의 맥을 따른 자’라 칭하였다.
너(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좇아 영원히 제사장이라(「시편」 110:4).
예수는 멜기세덱의 계통을 전수받아 그리스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 는 것은 곧 제사장이 되었음을 뜻한다. 이것은 고대 환국과 배달의 신교 제천문화가 유대 사회에서 신약 시대까지 꾸준히 전승되었음을 시사한다.

예수의 죽음 과정에서도 신교와의 밀접한 관계가 보인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솔기 없이 통으 로 짠 천의天衣를 입었고(「요한복음」 19:23),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여러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감람산에서 승천하였다고 전한다. 구약 시대 의 멜기세덱과 그를 계승한 신약 시대의 예수, 이 두 제사장의 행적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고대 동방 신교의 제천문화와 불멸의 선 사상을 계승하였음을 암시한다.(문명이창세기,환단고기 역주본,성서의뿌리 인용 )

출처 : ─┼★불가사의에 답이있다★┼─
글쓴이 : 깨어있는 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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