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우리가 몰랐던 역사이야기- 이스라엘 성립사1

황령산산지기 2016. 9. 3. 11:24

▣ 이스라엘 성립사

●유대족의 첫 조상, 아브라함
기독교는 히브리 문화, 즉 유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고, 유대 문화는 약 6천 년 전 중앙아시아의 천산을 넘어 지금의 이라크 남부 지방으로 남하하여 개척한 수메르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구약의 에덴동산은 이라크 남부이다. 『문명의 창세기』에 따르면, 에덴은 수메르인이 원래 ‘딜문’이라 부르던 곳이다.

성서고고학에서는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를 BCE 2091년으로 말한다( 『뉴베스트 성경』,).4,000여 년 전 수메르 문명권의 갈데아 우르에 살던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수메르의 생활 풍습과 신관, 자연관, 영원불멸의 선仙 사상 등 수메르 문명의 진액을 모두 뽑아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길을 떠난 것이 유대 문화 탄생의 출발점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에서 노아까지, 그리고 노아에서 데라(아브라함의 아버지)까지의 역사는 수메르 땅에 살았던 수메르인으로서의 역사였다. 동방의 고조선 초기였던 아브라함 때부터 비로소 유대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담과 이브로부터 20대째, 대홍수 때 방주를 만든 노아로부터 10대째에 해당한다. 족장 아브라함의 지도 아래 우르에서 위로 올라간 유대족은 하란에 잠시 살다가 다시 서남방으로 내려와 지중해 연안의 가나안 땅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유대족의신, 야훼로부터 자손을 약속받은 지 25년 만인 100세에 이삭을 낳고
175세의 천수를 누렸다. 이삭도 천수를 누려 180세 까지 살았다.

그런데 이삭의 아들 야곱 때에 이르러 ‘유대’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역사로 바뀌었다. 야곱이 얍복Jabbok 강에서 당시 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최고신으로 받들던 ‘엘 ’신과의 씨름에서 이겨 (「창세기」 32장) ‘엘을 이긴 자’ 즉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아들 열둘을 낳았고, 그 열두 명이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조상이 되어 12지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2지파의 구성에 대해 르낭은 야곱의 아들들에 의해 처음에는 10개의 지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거기에 요셉 지파가 더해져 11개 지파가 되었고, 그 후에 레위 지파가 빠지고 그 대신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들어가 12지파가 되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 노릇을 하여, 출애굽 후에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땅을 분배받는 대신 여러 곳의 도성을 받았다(E. Renan, 『History of the People of Israel』, Vol. I , 94-95쪽).

나중에 출애굽 사건을 통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이스라엘 역사는 열두 부족의 동맹체로 전개되었다.

◉수메르의 다신多神 숭배 전통에서 태어난 유대교
원래 아브라함 부족은 수메르 지역의 풍습대로 다신을 숭배하였다. 아브라함이 옮겨간 가나안의 토착민도 엘신을 비롯하여 여러 신을 받들고 있었다. 엘은 수메르의 엔릴Enlil 신을 말한다. 데이비드 롤은 엔릴을 ‘하늘의 주인’(데이비드 롤, 『문명의 창세기 』, 342쪽)으로 정의한다.

제카리아 시친은 엔릴에 대해 “안An의 큰아들로 아주 일찍부터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왔으며 그런 이유로 하늘과 땅의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 되었다 (제카리아 시친,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145쪽)”라고 하면서, ‘신들의 아버지’로 정의한다.

엘은 에블라 유적지에서 나온 BCE 2300년경의 점토판에 적힌 신의 명부名簿에 최고의 신으로 기록되어 있듯이, 신의 우두머리였다. 엘 신의 구체 적인 모습은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점토판 문서에 묘사되어 있다. 엘 신은 지혜를 상징하는 수염이 난 늙은 모습이고, 신의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보이기 도 한다.

가나안으로 이주한 초기 시절, 아브라함 부족은 엘과 야훼를 함께 받들었다. 이때 야훼는 엘이 거느린 신 가운데 하나였다.
‘지존하신 이’께서 만방에 땅을 나누어주시고, 인류를 갈라 흩으실 때, 신들의 수효만큼 경계를 그으시고 민족들을 내셨지만, 야곱이 야훼의 몫이 되고 이스라 엘이 그가 차지한 유산이되었다 (「신명기」32:8~9).

여기서 ‘지존하신 이’는 원문 ‘엘뤼온’의 번역이다. ‘주권을 지닌’을 뜻하는 엘뤼온은 바로 최고신 엘의 별칭이다. 이 구절에 따르면 최고신 엘이 각 신에게 민족과 나라를 부여하였는데 야훼는 야곱 족속과 이스라엘을 배정받았다. 야훼는 엘이 이끄는 신단神團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유대족이 초기에 다신 신앙을 하였음은 「창세기」 제1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세기」 1:26)
하나님이 ‘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지 않고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고 했다.

수메르 신화에서처럼 하나님을 한 분이 아닌 여럿 으로 말한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신의 세계를 다신의 세계로 인식하였음을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란 말이 ‘신들’이라는 복수 명사라는 것에서도 다신 신앙의 흔적이 보인다.

요컨대 유대교와 기독교는 엘을 최고신으로 모신 수메르의 다신 신앙에서 생겨난 것이다. 초기 히브리인이 엘 신을 모신 것은 신을 나타내는 명칭에 ‘엘뤼온’, ‘엘로힘’ 등 엘과 유사한 이름이 많은 데에서 도 알 수 있다. ‘벧엘’, ‘브니엘’ 등 옛 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종교 성지의 이름에도 ‘엘’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엘 신과 씨름하여 이긴 후로 히브리인은 엘을 최고신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엘뿐 아니라 그 지역의 다른 신도 하나하나 야훼의 영역 안으로 동화되었고, 야훼가 히브리인의 최고신이 되었다. 대략 3,900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족은 야훼 중심의 유일신 신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오직 야훼만 받들게 되다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은 이후 더욱 확고해지는데, 이는 히브리인의 수난 역사와 맞물려 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열 두 아들 중에서도 열 한번째 아들 요셉을 각별히 총애하였으므로 다른 아들들의 반감을 샀다. 형제들의 시기에 요셉은 결국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꿈을 해석하는 특별한 재능 덕분에 파라오의 신임을 얻어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다. 그 후 형제들을 용서하고 나일강 유역의 고센 지방에 살게 하였다.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이었던 때는 힉소스라 불리는 셈계 아시아인이 이집트 전역 과 팔레스타인, 시리아까지 통치하던 때(BCE 1730~ BCE 1567)로 추정된다. 힉소스 왕이 자기네 종족이 쓰는 셈어를 구사하는 민족을 특별 대우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요셉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분석된다(고야마 시게키,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 52~53쪽).

요셉의 부름을 받고 이집트로 옮겨간 이스라엘 백성 은 그곳에서 점차 노예로 전락하여 벽돌을 만들고 온갖 공사에 동원되었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무섭게 불어 났다'(「출애굽기」 1:7). 이에 이스라엘인에게 강한 경계심을 갖게 된 이집트의 파라오는 급기야 모든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 던지도록 명하였다.

이에 히브리인의 한 어머니가 아기를 담은 바구니를 나일강에 흘려보냈고, 때마침 목욕을 나온 파라오의 딸이 아기를 건져 올렸다. 멀리서 이것을 지켜 본 아기의 누나 미리암이 공주에게 유모를 천거하겠다고 하여 아기의 생모를 불러 왔다. 공주는 아기의 이름을 ‘모세’라 정하였고, 모세는 40년 간 생모와 함께 생활 하였다. 그 기간 중 모세는 생모에게서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추방에서부터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 요셉의 이집트 생활,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이주, 이집트인에게 받은 핍박까지 유대 역사 의 전모를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대족의 뿌리 인 수메르의 역사와 문화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일꾼이 채찍질 당하는 모습에 격분한 모세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이고 시나이의 광야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미디안족의 사위가 되었다. 양을 치며 나날을 보내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내라’(「출애굽기」 3:10)는 야훼의 명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모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수호신인 야훼를 처음으로 영접한 사건이었다.

세 번의 거절 끝에 마침내 명을 받아들인 모세는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사람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출애굽을 시작하였다. 430년 동안의 이집트 생활(「출애굽기」 12:40)이 청산되는 순간이었다. 모세는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 산에 이르러 야훼로부터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로 시작되는 십계명을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은 열 가지 계율을 지키며 오직 야훼만 받들고, 그 댓가 로 야훼는 그들이 이집트로 오기 전에 살던 가나안 땅을 되돌려 주기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야훼 신이 서로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은 히브리인의 한 독특한 풍습에서도 알 수 있다. 바로 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표로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여 시작된 할례割禮이다.

아브라함이 99세, 그 아들 이스마엘이 13세 때 그 일족의 남성이 할례를 하였고, 그로부터 유대 남자 아이는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게 되었다 (「창세기」 17:12). 기독교에서는 할례를 정신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자는 바울의 주장에 따라 할례가 폐지되었다.

야곱이 엘 신을 이긴 것이 히브리인이 유일신 신앙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그들의 유일신 신앙이 유대교라는 종교로 굳혀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모세 10계명은 이집트 지배를 받던 시절 아크나톤왕이 유일신인 아톤신을 모시는 18계명과 거의 똑같다. 성서고고학자들은 모세 10계명을 아크나톤 18계명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세 이후에 여러 신을 믿던 유대족은 유일신을 숭배하는 유대교가 확립됐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나이의 광야를 방랑하면 신과의 계약인 십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인이라는 민족의 첫 조상이고, 모세는 유대교라는 이스라엘 신앙의 창시자인 것이다.(성서의뿌리참고)

출처 : ─┼★불가사의에 답이있다★┼─
글쓴이 : 깨어있는 마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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