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스크랩]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집

황령산산지기 2016. 5. 20. 10:42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 족두리봉



마음놓고 울 수 있는 집


이어령 선생님의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신혼 때 삼선교 어디서 단 셋방살이하다가

청파동으로 이사 갔는데 알고 보니 하필이면

세든 집주인이 부인의 여고 동창생이었단다.

그 셋방살이가 어떠했을지는 불문가지.


"한 마디로 그 때의 너는

마음 놓고 울 수도 없는 집에서

 생명의 첫 호흡을 한 거란다.

네가 밤중에 너무 심하게 울어 대면

엄마는 너를 급히 들쳐 업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어.

아빠가 글을 쓰는 데 방해될까 봐 그랬다지만

진짜 이유는 좀 더 심각했지.

집주인인 동창생의 눈치가 보였던 거야.

(직업 군인이었던) 주인 남편이

근무지에서 돌아와 집에 머무는 동안엔

그런 일이 더욱 잦았으니까...."


이 부분을 읽는 데

오래 전 우리집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울생활이 처음인 시골출신의 신혼부부가

갓 첫돌을 지낸 어린 아기와 같이 살아갈

(집이 아니라) 단칸방을

세로 주는 집주인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서 시내버스 타기 좋은

서대문 현저동에서 무악재를 넘어 홍제동까지

 셋방이 있다는 광고를 따라 찾아다녔다.

하지만 갓난 아기가 있다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댓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단칸방이

지금 홍제동의 세무서 골목에 있었다.

부엌도 따로 없는 단칸방이었지만 늘 감사했다,

추운 겨울, 연탄불에 손을 녹이며 상을 차리면

수저와 그릇이 얼어서 미끄러져 내렸다.


당시 집주인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기가 낮에는 잠을 자다가

밤이면 밤마다 깨어서 울어댔다.

그렇게 잠 잘 시간에 아기가 울어대면

 건넌방에서는 짜증스런 소리가 들렸다.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젊디 젊은 아기 엄마.

업고 안고 달래다 달래다가 그치지 않으면

아기를 업고 달리듯이 골목길로 나갔다.

살을 에는 듯했던 그 추운 겨울밤에....

걱정스러워 잠을 잘 수가 있나.

밖에 나가보면 아기와 엄마가 같이 울고 있었다.

그러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로 기가 막혔다.

그렇게 자란 아기가 중3 엄마가 되어 있다.


'오 하나님, 초가집이라도 좋습니다

단칸방이라도 좋습니다

내 집을 하나 주십시오.'

피눈물 나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사십 여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너무 좋다.

30년 가까이 살던 강남 대치동을 떠나

지난 가을 북한산 자락 불광동으로 이사왔다.

세 아이들 모두 출가시키고

둘이서 살기에는 넉넉한 집이다.

북한산의 사계를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가 가까와서 좋다. 

큰 복을 받고 살아간다.

좋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아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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