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스크랩] 죽음은 끝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황령산산지기 2015. 5. 27. 07:23

 

 

[인문학강의] 죽음은 끝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SBSCNBC | 기자 | 입력 2015.05.12. 14:05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50512140513675

 

 

■ 인문학 특강 시즌3 'Beautiful life'


CHAPTER 3.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일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일종의 죽음의 해석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물음과 함께 동시에 우리가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의문을 던져보자면 어떤 의미에서의 죽음은 의미의 무하, 의미를 없애 버리는 것, 또 어떤 목적의 배반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해볼 수 있는데요. 이와 관련된 건 크게 두 물음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은 정말 끝인가 시작인가. 그 다음 또 다른 하나는 죽음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이 두 물음을 가지고서 우리가 죽음은 우리에게 선한가 악한가, 끝인가 또는 새로운 시작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이걸 제가 무슨 논리적으로 펼쳐나가기 보다는 몇 가지 고전적인 예들을 통하여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드릴게 장자와 관련된겁니다.

중국 고전 장자를 읽어보면 그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장자 아내 죽었을 때 혜시가, 우리 혜자라고 부르죠, 혜시가 이제 방문을 했죠. 그래서 장자가 두다리 쭉 뻗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이제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것을 보고 혜자가 이제 힐난을 하죠. 아내하고 살고 자식도 낳고 아이도 키우고 했는데 어떻게 곡도 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질그릇을 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그렇게 말을 했죠. 그러더니 장자가 이제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아내가 죽은 당초에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런데 인간의 그 삶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고, 삶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체를 형성하는 기(氣) 조차도 처음에 없었던 거다. 삶이란 모두 기가 변해서 이루어 진 것인데 마치 춘하추동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났다가 살다가 죽어서 또 사라지는 것도 자연적 현상이 아닌가.

우리가 장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 장자도 처음에 죽음, 그렇게 좋은 경우로 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는 마음에 왜 없었겠느냐, 그렇게 표현을 하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것은 원래 무에서 나온 거니까 죽음이라는 것도 결국 무일 수밖에 없는 것인거죠. 자 세 번째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 슬퍼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라는 것을 우리가 장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나쁜 사건이 아니라 좋은 사건이라고 보는 그 입장을 우리가 소크라테스한테도 다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소크라테스의 파이돈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이돈이라는 작품은 거기 보면 아주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데요. 영혼은 불멸하는가. 영혼은 불멸하는가에 대한 불멸한다고 하는 네가지 논쟁이 나옵니다. 아주 어려운 철학적 대화를 끝낸 다음에 이제 클리톤이 소크라테스한테 그렇게 묻죠.

"알겠네. 소크라테스. 자네 자식이나 그 밖의 일들에 관해서 이 사람들이나 나에게 뭔가 일러 줄 것은 없나? 뭐든 우리가 그걸 해서 자네를 가장 기쁘게 할 일 말일세." 그러니까 소크라테스가 한 답이 뭐냐면요. "내가 늘 말하던 바로 그 일이네. 크리톤. 더 새로운 뭔가가 아니고. 그 희랍말로 보면 휘페르 아에 레고 에페 후 크리톤 나고 우덴 카이노 테로. 그러니까 어떤 새로운 본래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 그러면서 호토 휘모 아르톤 그러고 에피멜로메노 히메스카이 이렇게 쭉 나오는데요. 저기 보면 거기 휘몬 아우톤 에피 멜로, 멜로우 메노이 이게 아까 제목의 멜레테 타나투하고 비슷한 말인데요. 너희들 영혼을 잘 돌본다면 이런, 다시 말하면 너희들 영혼, 너희, 너희 자신을 돌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의 만일 유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 자신을, 너희들 자신을 잘 돌보라. 너희들 자신을 잘 돌보는 것, 그게 내가 너희들한테 부탁하고 너희들한테 바라는 것이라. 이게 소크라테스의 일종의 스완송, 백조의 노래입니다. 백조의 노래란 표현이 파이돈에 나오는데요. 백조가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가운데 가장 핵심적 구절이 너희 자신들을 돌보라, 라는 겁니다. 너희 자신들을 돌보라. 너희 자신을 돌보라. 너희 자신을 돌보라 라는 말은 크게 이게 어떤 의미의 두가지가 포함되어있죠.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장자가 이제 그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아내가 죽은 당초에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런데 인간의 그 삶의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고, 삶 뿐만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체를 형성하는 기(氣) 조차도 처음에 없었던 거다. 삶이란 모두 기가 변해서 이루어 진 것인데 마치 춘하추동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났다가 살다가 죽어서 또 사라지는 것도 자연적 현상이 아닌가.

 

 

쌍봉사 목조지장보살상.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 중에서...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무명도 없으며 무명의 다함인 지혜도 없으며 그리고,늙고 죽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으로 끝나는 다함도 없으며,

고와 고의 원인인 집과 고가 해결된 멸과 멸에 이르는 실천방법인 도도 없으며,
지혜(육바라밀)도 없으며 지혜를 실천함으로써 주어지는 공덕의 얻음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원래 얻을 바가 없기 때문이니라.

 

 

 장자가 두다리 쭉 뻗고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죽었다고 이제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것을 보고 혜자가 이제 힐난을 하죠. 아내하고 살고 자식도 낳고 아이도 키우고 했는데 어떻게 곡도 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질그릇을 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

 

질그릇?

 

질그릇은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는 타임 캡슐 인것입니다.

 

당신 몸뚱아리가 질그릇과 같으니 깨닫고 살으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가면 누구도 고노병사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건강챙기며 사십시오.

 

20세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몸은 병들어 고통뿐이 없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앉아만 계십시오(좌욕)건강을 지킬수 있습니다.

 

오전,오후30분이상 매일 실행하십시오.

모든병든자 장애인 여러분 현대의학의 가장적합한 치료방법과 병행해 실행하십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좋으며,1분1초라도 더 물에 앉으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나, 힘이들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이것도 못해 먹겠다고요?

 

아픈것도 못 아프겠다고 해서 않 아플수 있으면 좋으련만,죽는것도 못죽겠다고 해서 않 죽으면 좋으련만,마음대로 않되지요.

 

 

노력과 극복없이 기쁨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모두에게 꼭 좋은일이 있다고 말씀 드릴수는 없으나,인연있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너희 자신들을 돌보라. 너희 자신을 돌보라. 너희 자신을 돌보라.

 

 

 

죽어서 이런 모습보다 살아있는게 낫지 않을까요?

 

 

죽고 싶지 않은분은 물에 앉는것을 실행하며 살아가십시오.

 

 

저승사자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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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물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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