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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었다?

황령산산지기 2015. 3. 12. 16:41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었다 OPERA의 유령? 천재과학자들의 대실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이 세상 어떤 물체도 빛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빛의 속도, 즉 광속은 이 우주의 궁극적인 속도이다. 그 어떤 물리적인 신호도 광속이라는 속도 제한을 넘어설 수 없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이래 이 속도 제한을 넘어선 현상을 관측한 예는 거의 없었다.

이탈리아 그랑사소에 위치한 거대한 OPERA 입자검출기 <이미지 출처 : LNGS>

2011년 9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빨랐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 빔을 만들어 스위스의 제네바의 CERN에서 약 730km 떨어진 이탈리아의 그랑사소까지 쏘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지난 2011년 9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서 중성미자(neutrino)라는 입자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했음을 관측했다는 결과를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중성미자는 전자 혹은 그와 비슷한 뮤온, 타우온 같은 입자들과 짝을 이루어 약력에 반응하는 입자로서 전기적으로 중성이고 질량이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제네바 소재 CERN에서 중성미자 빔을 만들어 그로부터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의 그랑사소(Gran Sasso)로 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랑사소에는 OPERA(Oscillation Project with Emulsion-tRacking Apparatus)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입자 검출기가 있어서 CERN에서 발사된 중성미자를 검출할 수 있다.

OPERA 실험의 원래 목적은 ‘중성미자 진동’으로 알려진 현상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중성미자 진동이란 자연에서 관측된 세 가지 중성미자(전자형, 뮤온형, 타우온형) 중 어느 하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하나로 바뀌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순전히 양자 역학적인 효과로서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질 때만 나타난다. 따라서 중성미자의 진동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로 여겨진다.

OPERA 실험에서는 뮤온형 중성미자가 타우온형 중성미자로 바뀌는 것을 관측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CERN에서 뮤온형 중성미자를 만들어서 그랑사소로 쏘았다. 이때 OPERA 검출기에 도착한 중성미자 1만 6111개(이것은 3년간 모은 데이터였다. 이 정도의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서 약 1020개의 양성자가 소요되었다. 양성자를 고정된 표적에 높은 에너지로 때리면 중간자들이 생기고, 이 입자들이 붕괴할 때 중성미자가 나온다.)를 분석한 결과 중성미자가 평균적으로 빛보다 약 60나노초(1나노초는 10-9초) 빨리 도달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을 속도로 환산하면 중성미자가 광속보다 약 0.0025퍼센트 빠른 속도로 비행한 셈이다. 이처럼 광속보다 빠른 속도를 ‘초광속(superluminal)’이라고 한다.

OPERA 연구진의 연구와 결과

OPERA 연구진이 한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CERN에서 중성미자가 출발하는 지점과 그랑사소의 중성미자가 도착하는 지점 사이의 거리를 엄밀하게 측정하고, 이 거리를 중성미자가 비행하는 데에 걸린 시간으로 나눠서 속력(=이동 거리÷시간)을 구한 것이다. 물론 시간과 거리를 엄밀하게 재는 것은 대단히 힘든 과정이다. 연구진은 GPS 같은 최첨단의 장비를 총동원한 결과 거리는 약 20센티미터의 오차로, 시간은 약 10나노초 이내의 오차로 측정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체 실험 결과의 통계적·시스템적 오차도 대단히 작았다. (초광속 현상이 원래 없는데 오차로 인해 그런 데이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약 10억분의 1에 달할 정도였다.) 발표된 수치만 놓고 보면 굉장히 믿을 만한 결과였다.

중성미자의 속도를 측정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미국 시카고 인근에 있는 페르미 연구소에서는 가속기에서 만든 중성미자를 이번 실험과 거의 비슷한 거리인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미네소타 주의 검출기로 쏘는 실험을 하고 있는데(이 실험은 MINOS(Main Injector Neutrino Oscillation Search) 실험이라고 불린다.), 2007년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중성미자(여기서도 뮤온형 중성미자를 관측했고 그 개수는 473개였다)의 속도가 OPERA의 경우와 비슷한 정도로 광속보다 빠른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MINOS 실험의 데이터는 오차가 워낙 커서 아무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또 다른 데이터로는 초신성에서 온 것도 있다. 1987년, 대마젤란 성운의 SN1987A라는 초신성(지구에서 약 16만 광년 떨어져 있다)이 관측됐을 때 과학자들은 초신성 폭발 때 함께 나온 중성미자(엄밀하게는 전자형 반중성미자였다) 29개를 세계 각국의 검출기에서 관측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중성미자의 속도와 광속의 차이는 10억분의 1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OPERA의 결과가 정확하다면 1987년의 중성미자는 3년쯤 전에 관측되었어야만 했다.

OPERA 연구진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빛보다 빠른 입자의 발견에 대한 발표는 하는 장면. <이미지 출처 : CERN>

뜨거웠던 언론과 학계의 반응

OPERA의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매스컴과 학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OPERA의 발표가 있은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전 세계에서 100편이 넘는 논문이 쏟아졌다. 언론에서는 연일 아인슈타인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넘쳐났다. 그 해 10월에 있었던 한국 물리학회에서는 OPERA 특별 세션이 열리기도 했다. 입담 좋은 과학자들은 이번 실험 결과를 두고 ‘오페라(OPERA)의 유령’이라는 논문 제목을 뽑기도 했다.

OPERA의 결과에 대한 논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일단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부류이다. 다른 하나는 실험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실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온갖 오차들을 재검토하는 부류이다. 그러나 내 짐작에 OPERA의 결과를 당시 시점에서 100퍼센트 받아들인 과학자는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OPERA의 결과는 그저 한 번의 실험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실험 결과 때문에 과학 이론이 뒤집어진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거의 없다.

OPERA의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OPERA 연구진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OPERA의 연구진은 175명이다. OPERA의 결과는 예비 논문의 형태로 인터넷에 올랐는데, 전체 연구진 중에서 15명 정도의 이름이 빠져 있다. 그들은 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예비 논문을 학술지에 제출하는 데에는 절반 정도가 반대해 심한 내홍을 앓기도 했다. 결국 OPERA는 11월 자신의 실험을 재검토했고 향상된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2011년 10월 21일부터 11월 7일까지 감지된 20개의 중성미자를 분석한 결과도 포함되었는데 그 결과는 9월의 첫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 터널 <이미지 출처 : CERN>

극적 반전과 허무한 결말

이런 상황이 극적으로 바뀐 것은 2011년 말부터였다. OPERA 실험의 시간 측정 과정을 점검하던 과학자들은 2012년 2월, GPS 위성의 신호를 OPERA 컴퓨터에 연결하는 8.3킬로미터짜리 광케이블의 접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생기는 시간차는 약 73.2나노초로서 OPERA에서 문제가 됐던 시간차와 거의 비슷했다. 광케이블의 접속 문제를 해결하자 73.2나노초의 시간차는 없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관련링크). 이것과는 별도로 시간을 기록하는 진동자에도 문제가 있음이 밝혀졌으나 그 영향은 광케이블에 의한 것보다는 크게 작은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이 효과는 입자를 검출하는 장치에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곧 확인되었다. 그랑사소에는 LVD라는 또 다른 중성미자 검출기가 있는데, OPERA 검출기와는 약 160미터 떨어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 검출기가 설치된 곳 주변의 산악 지형에서 발생하는 고에너지 뮤온이 OPERA를 거쳐 LVD를 관통해 두 검출기를 모두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뮤온을 이용해 LVDOPERA 사이의 시간차를 조사하면 광케이블에 의한 시간차가 정말로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LVD 연구진은 광케이블 연결에 문제가 있었던 기간(2008년 8월~2011년 12월, 기간 B)과 그렇지 않은 기간(2007년 8월~2008년 8월, 2012년 1월~3월, 기간 A)에 포집된 뮤온을 따로 분석해서 LVD-OPERA 사이의 시간차를 조사했다. 그 결과 기간 A 동안에는 595±8나노초의 시간차가 있었던 반면 기간 B 동안에는 668±4나노초의 시간차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기간 동안의 시간차는 73±9나노초로서 광케이블 접속 불량의 효과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관련링크). 즉 기간 B 동안에는 OPERA에서 LVD까지 똑같은 160미터를 뮤온이 진행하는 데에 약 73나노초가 더 걸린 것으로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LVD의 시간 측정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미루어 이 시간차는 OPERA의 시간 기록과 관련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뮤온이 OPERA에서 LVD 방향으로 진행하므로, 기간 B 동안에는 OPERA가 시간 기록을 약 73나노초 정도 더 빨리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시간차가 OPERA에서 검출된 중성미자의 속도가 광속을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든 것이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시간이 짧게 측정되면 그만큼 속도는 커진다.)

2012년 6월 8일, CERN은 공식 언론 발표를 통해 그랑사소에 있는 4개의 검출기에서 모두 중성미자의 속도가 광속을 능가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6월 3일부터 9일까지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중성미자 국제학회에서도 OPERA 연구진은 더 이상 초광속 중성미자를 논하지 않았다. 이로써 약 6개월간 과학계는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오페라의 유령’ 소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은 무덤에서 다시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랑사소연구소의 LVD 중성미자 검출기 <이미지 출처 : LNGS>

과학 발전의 과정

요란했던 소동에 비하면 그 결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이 사건은 과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언뜻 보기엔 과학자들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남긴 듯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OPERA 연구진이 얻은 데이터는 아주 양질의 데이터였고, 상대성 이론이라는 거대한 지배적 과학 이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험 결과를 믿고 공표한 것은 그 자체로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OPERA 연구진은 이 결과를 발표하면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전 세계 과학계가 다 같이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 자신들의 결과를 공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CERN의 관계자가 말했듯이 실제 과학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발전하고 성숙한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본다면 OPERA가 좀 더 신중했더라면, 혹은 내부 연구자들 사이에 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또한 OPERA가 세간의 주목을 끌기 위해 (잊을 만하면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나듯이) 다소 무모한 면이 있었다는 소문도 그냥 흘려 버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2011년 9월 당시의 OPERA 연구진의 인터뷰 동영상(영어). OPERA 연구진은 발표하면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전 세계 과학계가 다 같이 고민해 보자는 의도에서 자신들의 결과를 공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출처 : CERN>

만약 상대성 이론이 틀렸다면?

만약 상대성 이론이 정말로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황은 단순하지가 않다. OPERA 실험만 하더라도 시간과 위치 측정에 GPS 위성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GPS에 내장된 시계는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팽창 효과가 보정되어 있다. GPS는 시속 1만 4000킬로미터 정도의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른 시간 팽창 효과를 느낄 뿐만 아니라, 약 2만 킬로미터 상공에 떠 있기 때문에 약해진 중력으로 인한 시간 수축의 효과도 동시에 느낀다. 전자에 따른 효과는 하루 동안 100만분의 7초 정도이고 후자에 따른 효과는 하루 동안 100만분의 45초 정도이다. 따라서 하루 동안 총 100만분의 38초 정도 시간이 빨리지는 효과가 있다.

정말로 상대성 이론이 틀렸다면, 우리는 우선 보다 정확한 새 이론에 따른 시간 팽창 효과를 다시 계산해서 GPS 시간 측정 장치를 보정한 뒤에 OPERA 실험을 다시 해야만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번거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가 상대성 이론을 대체할 만한 이론을 전혀 알고 있지도 않다.

이종필 이미지
이종필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특별연구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입자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등과학원과 연세대학교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물리학클래식],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등이 있다.
홈페이지 http://www.tenelux.com
물리학클래식 이미지
출처
물리학클래식 2012.08.31
아인슈타인에서 후안 말다세나까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서 표준 모형과 초중력 이론까지 현대 물리학의 창조자들. 20세기 물리학의 논문 10편을 싣는다면 어떤 10편을 실어야 할까? 고에너지 물리학자로 기본 입자의 세계를 탐구해 온 이종필 박사가 현대 물리학의 근원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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