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집착이 눈을 멀게 한다 / 배영순 어제는 어제의 것이 있고 오늘은 오늘의 것이 있다. 어제의 것에 의해서 오늘을 미리 도배하거나 물들이지 않아야 한다. 물들이지 않는 것을 청정하다 하고 물들인 것을 염습(染習)이라고 한다. 때가 묻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을 만난다. 어제 만난 그 사람을 오늘도 또 만나는데 어제 만날 때의 그 감정과 그 기분과 그 인상을 갖고 만난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미 어제의 그 사람을 만날 때의 그것으로 도배가 된 것이다. 이것을 선입견이라고 하고 선입견이 아주 누적되어 무의식이 되는 것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이런 것으로부터 우리가 정말 얼마나 자유로울까? 우리가 청정이라면 그냥 피상적으로 ‘자성(自性) 청정(淸淨)’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닦고 닦아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갖고 있다. 그러나 청정이란 것은 마냥 닦아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감하게 그 순간에 자기를 탈각하는 것, 그때 그때 마주하는 상황에서 어제의 것으로 물들지 않고 현재를 그대로 마주하는 것, 그것을 청정이라고 한다. 어제의 것으로 오늘을 도배하고 염습되니까 귀가 자꾸 닫히고 눈이 어두워지게 된다. 오늘 보고 있는 사람을, 지금 마주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제 보았던 사람으로 자꾸 보고 있으니까 눈이 봉사가 된다. 눈이 뜨이지 않고 귀가 열리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열려 있다’고 말하는데,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있는 상태로 마주하는 것을 열려 있다고 한다. 이를 청정하다고 한다. 어제에 의해서 도배가 되어 있는 바탕에서는 ‘열림’을 말할 수 없다. 간혹,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과거의 좋았던 기억 또는 슬펐던 기억 하나에 집착하고 그것을 계속 갖고 간다. 그 사람에게는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 오로지 어제의 그 기억 하나만 계속 갖고 간다. 이렇게 심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저마다 상처가 다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과 만나서 사기를 당했다거나 배신을 당했다면 B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너도 그럴지 모른다’는 식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서 한 번의 상처가 자꾸 이어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재생산하게 된다.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을 굉장히 궁핍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만든다. 비록 한때의 상처가 있었다 해도, 또 상대가 설사 좀 빗나간 그런 마음을 갖고 있더라도 나는 그렇지 않아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고 나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 어제의 상처로부터, 어제의 나로부터 뛰쳐나오지 않으면 어제의 상처로 오늘을 물들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 상대와의 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게 된다.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는 각자의 상처에 대해 전전긍긍한다. 도저히 치유될 수 없을 것처럼, 마치 운명적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처라는 것은 어느 일순간에 생긴 것이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한때의 상처는 한때의 상처일 뿐 영원히 지속되는 상처란 것은 있을 수 없다. 한순간이다. 청정한 한순간이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한순간이고, 나의 상처로 인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도 한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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