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墓碑銘)
“너희들은 죽지 못해 살지?
나는 살지 못해 죽는다."
우리 시대의 최고의 코미디안인 서영춘이 암으로 죽기 직전에
후배들에게 했다는 말이다.
코미디의 대가다운 웃기만 할 수는 없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사람에게는, 아니 동물에게는 생존과 생식 두 가지 본능이 있다.
그래서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한다.
살다보면 죽음은 저 멀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생물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시간을 두고 점진적
으로 진행되어 소멸에 이르는 생물학적 형태’라고 했다.
가문의 자랑도
권세의 호강도
美와 富가 가져다 준 모든 것들이
다 같이 피치 못할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榮華의 길은 무덤으로만 뻗어있다
이 시는 토마스 그래이가 쓴 영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시로
알려져 있는 시인데, 죽음을 너무나 단호하게 표현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2012년 0월 00일을 허락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또 하루를 주셨아오니 주님의 뜻에 합당한
하루를 살게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한다.
대학교 때부터 시작한 것이니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러나 이 기도가 어떤 날자인가에서는 멈출 것이다.
나는 직업상 많은 노인들을 상대하게 되어있다. 노인들의 이
야기는 정말 그럴듯하다
“ 이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화장실에 가고 밥을 하고 설거지
를 하고 불을 피워야 하고 가게 에 가야 하고, 병원에
가고 모든 것아 귀첞아 죽겠어 꼭 죽었으면 얼마나 편할까
싶어요.”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끝없이 움직이고 흐른다. 그 움직임
과 흐름이 멎을 때 거기 서리가 내리고 죽음이 찾아온다.'(법정)
이처럼 저절로 오는 죽음도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한 노인은 죽음이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죽음은 어떤 형태로든 갑짜기
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잦은 것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데 이를 수도 있게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한다. 그 이름을 비석이나 묘비명으로도 남는다.
그 비석이나 묘비명을 통해서 그 사람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
살아서는 볼 수 없었던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무슨 찬사가 있음직한 나폴레온은 아직도 그의 공과를 말 할 수
가 없다하여 묘비명을 공백으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또, 프랑스의 거인 드골 대토령도 묘비명은 없다. 드골보다
훨씬 일찍 죽은 손자가 묻힌 고향 공동묘지의 손자 옆에 묻였는
데 그의 이름' 사를르 드골 이라는 이름과 그의 생존기간을 쓴 작은
표지석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드골의
유언에으한 것이었다.
잔인한 정치 이론으로 유명한 마키아 베리는 ‘ 아름다운 이름에는
찬사가 필요 없다’는 의외의 묘비명을 스스로썼다.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것은 버너드 쇼의 묘비명이라고 들었다.
독일 뮌헨 대학 독문과를 나오고 서울대 이대 성균관 대학에서 강
의를 하기도 한 전혜린이라는 천재로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수필이 포함된
책을 냈고 잘 알려진 교수와 결혼을 해서
더 유명해진 그녀가 31살이라는 너무나 젊은 나이에 자살을 했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 사랑에 사랑을 보태고, 시간에 시간을 보탠 후 여기 눈감아 잠든 이,
아 아 그 이름 전혜린이여!’
전혜린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였는데 한창 나이의 시인 김남조가 썼다
고 한다.
나는 멋진 묘비명을 생가해본 일이 있다. 그것은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아주 심할 때였다. 평소에 죽음이란 생각해
본 일도 없는 나였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은 정신마저 혼미하게 하였고
드디어 신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정도가
되니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묘비명을 생각하는 단계에
까지 이른 것이다.
내 묘비명에는 어떤 글이 쓰일까를 생각하다가 김남조가 썼다는 전혜린
의 묘비명이 자꾸만 생각났고 나중에는
욕심이 나게까지 되었다. 묘비멍을 가지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글이
너무나 멋 있었기 때문이다.
‘ 시간에 시간을 보태고,
사랑에 사랑을 보탠 후,
여기 눈감아 잠든이,
아 그 이름 전혜린이어! ‘
마치 사랑에 사랑을 보태고 시간에 시간을 보탠 것이 나의 삶이었던 같
이 생각 되었다.
가을에는 낙엽이 되고 싶고 초상집에서는 시체가 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던가.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것 같다.
또, 내가 너무 좋아하는 김남조 시인이 쓴 글이래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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