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두려움(Fear)
1. 죽음(死亡:death)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들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가장 크고, 가장 무겁고, 가장 버거운 짐이 바로 '두려움(fear)'이 아닐까 하는구나. 모든 것에 걸쳐서 있으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여 너희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주관하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구나. 위급한 상황을 맞닥트렸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 가장 큰 두려움이 너희들의 의식을 완전하게 지배하게 되는 것이란다. 유한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너희들은 자신들의 인생이 유한한 줄 알면서도 막상 생명을 중단을 알리는 비상 신호가 들어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되며 긴장도가 최고도로 올라가서 자신의 생명이 끝남을 강하게 부정하게 되는데, 그런다고 해서 너희들의 생명들이 연장되거나 영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천연덕스럽게 망각(妄却:oblivion)하고 살아가고 있단다.
너희들은 매순간 자신들의 생명이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 살다보니 죽음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긴장 속에 살아가는 패턴을 지금까지 하고 있었단다. 너희들의 과학기술과 의학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여도 생명을 되살리거나 영원하게 할 수는 없음이니, 주어진 삶을 살다가 죽음이 오면 숙명(宿命:fate)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단다.
죽음은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여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너희들은 죽음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포장하여 행사들을 하고 있다만 영체(spiritual body)는 삶의 계획이 종료되어 영계로 돌아갈 날이 돌아오면 입고 있던 육체라는 옷을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벗어버리고 떠나는 것이기에 이것을 온전하게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희들 입장에서는 두려움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란다.
죽음은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너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기도 하는데, 테러(terror)를 통한 집단 학살이나, 재난을 통한 대량의 죽음을 바라보는 너희들의 시선이 바로 그런 것이란다. 작은 죽음에서부터 큰 죽음에 까지 늘 너희들의 가시권(可視圈) 안에 있어서 뉴스를 장식하고 너희들을 긴장의 끈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죽음의 사신(使臣)이나 저승사자, 또는 희곡과 소설, 영화 등의 소재로 죽음과 관련한 것들을 이용하면서 우회적으로 회피하려고 한다만 과연 그런다고 해서 죽음을 비켜나갈 수 있겠느냐! 이 세상에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죽음 이었기에 이것을 잊으려 깨달음의 길을 만들기까지 한 것이란다.
어떤 인생의 삶을 살던 상관없이 모두가 죽음을 맛보아야 하였기에, 너희들은 고서에 기록된 빛으로 올라갔다는 존재들을 부러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깨달음의 길로 연결되게 된 것이란다. 모든 두려움 중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죽음은 그래서 지금도 너희들에게 풀지 못하는 영구과제로 남게 되었으며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된 것이란다. 누구나 늙고 병들며, 그러다 죽음을 맞이하고 또 사고사나 스스로 생명을 중단하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하며, 크고 작은 전쟁이나 분쟁의 소용돌이를 통하여 죽음들을 맞이하고 있단다. 이제 너희들은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해야 되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거대한 죽음이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다가서고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바란단다.
세상은 거대한 혼돈을 앞두고 있으며, 어둠 속에서 빛이 나온 것처럼 커다란 혼돈이 너희들을 집어 삼킬 것이고, 그것의 결과로 엄청난 죽음들이 너희들을 엄습하여 집단의 두려움을 이끌어 낼 것이며, 너희들은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조각배처럼 휘둘릴 것이란다. 거대한 파도가 작은 배를 난도질 치듯이 덮칠 것이고, 그러면 너희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최고조로 증폭되어 올라갈 것이란다. 이것이 죽음이라는 기운이 너희들을 어떻게 휘어잡고 노예처럼 부려왔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아기로 태어나 인생을 알게 되는 즈음부터 죽음을 알게 되고 접하게 되면서 시간이 지나면 죽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서며 낯설지 않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이야기하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이야기하게 되었구나. 그래 업적을 쌓고 추억을 쌓으며, 재산과 명예와 부귀를 쌓았다 해도 결국에는 모두 놓고 가야만 하는 것이 ‘죽음’을 앞에 둔 너희들의 인생 아니었더냐!
너희들은 청년(靑年:youth)시절에는 인생이 영원한 줄로 착각하여 낭비하며 살아가게 되고, 성년(成年:majority)시절에는 출세와 부귀명예(富貴名譽)에만 매어달려 끝이 없는 길 인줄 알고 인생들을 허비하며 살아간단다. 장년(壯年:manhood)이 되었을 때에는 인생을 뒤돌아보고 마무리를 하는 인생들과 그렇지 못하고 아직도 영원한 줄 알고 손을 놓지 못하고 살아가다 갑작스레 죽음 앞에서 거꾸러지는 인생들이 있단다.
죽음은 너희들을 자유롭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너희들을 억압하고 저당잡고 있음이니, 너희들이 자유롭다 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란다. ‘죽음’은 분명히 너희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지금까지 쓰여 왔으며, 아직도 너희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여 지고 있음이란다.
아이들아!
죽음에서 자유롭고 싶음이 너희들의 염원이자, 평생의 소원이었음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넘을 수 없는 산이요, 건널 수 없는 강이란다. 너희들에게 영체(spiritual body)의 경험이 종료되면 옷을 벗고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었던 장치가 지금은 너희들의 자유를 빼앗는 올무로서 자리하게 되었음이니, 너희들이 물질을 사랑하여 깊게 빠져들지만 않았어도 아무것도 아니었던 ‘죽음(death)’이라는 것이 지금은 족쇄가 되었음은 너희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결과라고 하는 것이란다.
인류들이 물질에 빠져들기 전까지는 ‘죽음(death)’을 아름다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묶여있지 않았던 탓에 두려움이라는 것이 발생하지 않았었지만, 너희들이 물질에 집착하게 되면서부터 너희들의 물질육체를 벗는 행위인 ‘죽음(death)’이 어느덧 짓누르는 형틀이 되어 갔으며, 너희들을 옭아매는 사슬이 되었던 것이란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너희들의 의식세계를 잠식하게 되었단다.
너희들은 축제의 장이었던 죽음의 행사는 본향으로의 아름다운 여행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으며, 오직 너희들의 감성을 갉아먹는 기생충처럼 두려움을 심어주게 되면서 너희들의 자유롭던 의식세계를 더욱 축소되게 하였고, 물질세계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게 하면서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게 하였던 것이란다.
너희들은 무든 추억과 기억을 종료시키고 떠나게 하는 죽음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되면서 심한 단절감과 자괴감을 갖게 된 것이란다. 모든 것이 멈춰서 버린 것처럼, 받아들였으며 그것을 끝이라고 단정 짓게 되었단다. 인생은 그렇게 한 번 태어나 한 번 종료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고, 어떤 것도 없다고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었으며, 그럼으로 해서 더욱 물질을 탐닉하고 인생을 향락하는 쪽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단다.
인생의 소비를 위하여 다양한 쾌락거리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너희들의 의식들은 더욱 더 추락하게 되었단다. 도박과 마약과 술과 쾌락을 위한 도구들은 더욱 더 발전하게 되면서 너희들의 말초신경들을 무감각하게 마비시켜서 두려움에서 언뜻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단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두려움은 너희들의 의식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자리를 틀고 앉아서 너희들의 두 발과 두 손에 족쇄를 채우고, 머리와 어깨에 올가미를 씌우게 된 것이란다. ‘죽음(death)’은 그렇게 해서 너희들의 주인이 되었으며 너희들은 죽음의 노예들이 되어 숨 한 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끌려왔던 것이란다.
어느 지역에서는 ‘죽음’이 숭고한 의식이 되어 전해지기도 하였고, 떠나갔던 영혼이 다시 돌아와 깃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미라(mummy)를 만들었으며,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에 대한 의식을 신성시하기도 하였단다. 하지만 현재의 너희들은 폭력과 테러의 남발로 인하여 죽음이 늘 곁에서 떠나가지 않다보니 일상화 되어버렸고, 무감각하게 되었단다. 인류들이 70억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너희들은 생명을 중시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가고 있는데, 죽음이 너희들을 더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고 갈 것이란다. 재난에 해당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통하여 너희 인류들의 숨통을 틀어질 것이고, 병원성 바이러스들(virus)의 활발한 활동으로 더 이상 숨을 곳도 없게 될 것이란다.
너희들은 인류들의 종말을 이야기 할 것이고 인류문명이 드디어 문을 닫을 것이라고 서로 주장할 것이란다. 석학들과 종교가들과 과학자들도 모두가 두 손을 들고 자신들의 무능함을 절실하게 체감할 것이며, 자신들조차도 죽음 앞에서 꼬꾸라질 것이란다. 너희들은 서로들을 물어뜯고 죽이기 위하여 원자를 이용한 거대한 무기들을 개발하였으며, 다양한 세균무기들을 저장고에 축척하여 언제든지 인류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반의 준비들을 마쳐놓고 있단다.
강대국들의 대표들이 모여 무기 감축 협상들을 한다 하여도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너희들은 절대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있어서, 요원하다는 것이란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조건 원자핵무기들을 만들려는 세력들과 자신들만의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들의 어긋난 테러(terror)행위들이 오늘날 너희 인류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음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란다.
행성지구는 죽음의 그림자가 짓게 드리워져 있으며 모든 인생들과 모든 생명들은 주기적인 패턴에 따라 죽음을 통하여 물질계를 떠나도록 하고 있는 것을 하나의 질서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종결되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그만큼의 충격이 바로 두려움으로 너희들의 감정체계를 지배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너희들은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고, ‘공포’를 느낄 정도로 너희들의 의식세계를 잠식해 들어왔다는 것이란다.
일상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은 극한의 공포를 일으켜서 너희들의 의식을 모두 얼려버리며, 평화를 파괴하여 질서가 훼손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도 바로 죽음이란다. 너희들이 죽음을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고 두려움을 갖지 않고 평화를 파괴하지 않으면 그 어떤 두려움도 발생하지 않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하며, 기도를 통하여 침묵 속에 평화를 찾는 것도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이 목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삶과 죽음은 인생의 균형을 맞추어 질서를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란다. 따로 떨어뜨려서 볼 수 없다는 것이며, 삶도 죽음이 있기에 공존하는 것이고, 죽음도 삶이 있기에 공존하는 것이란다. 서로가 서로를 뒤받치고 있으면서 회전하도록 하는 것이란다. 그렇게 해서 인류들의 역사와 문명사는 태동되어 왔던 것이었고, 족보나 계보를 통하여 연결되었던 것이란다.
삶과 죽음의 균형이 무너졌다면 너희들의 세계는 그 어떤 역사도 문명도 없었을 것이란다. 너희들의 표현대로 종말이라는 형태로 죽음의 행성만이 태양계에 남겨졌을 것이란다. 모든 생명들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살지 않는 죽음의 행성으로서 말이구나. 이것이 죽음의 결말이란다. 모든 생명들은 진화를 멈추고 죽음을 통하여 행성을 떠나게 되는 것이 마지막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단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죽음은 행성의 환생프로그램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것이고, 더 이상 생명들의 진화가 일어나지 않음을 알리는 것이란다. 우주에는 이러한 방식으로 죽음의 행성으로 남겨진 곳들이 산재하고 있단다.
한 단계의 과정이 이렇게 죽음으로 종료되게 되어 있는 것이 우주의 질서이자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란다. 모든 생명들은 진화의 커다란 과정이 종료되면 이러한 형태를 빌려서 행성을 떠나게 되는 것이며 그 행성은 다른 차원계의 새로운 행성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고 기존의 진화의 장소로서의 물질계는 종말이라는 상태를 이용하여 문을 닫게 하는 것이란다.
모든 행성들이 죽음의 행성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너희들의 수준으로 개발된 카메라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정보는 한정될 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너희들을 탓할 수는 없다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작은 세계가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너희들이 그저 불쌍하기 때문이란다.
너희들은 인생에 죽음을 두었다는 것에 분노할 수도 원망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기 바라는구나. 나 ‘스스로 있는 이’는 너희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공부를 위하여 인생을 허락하였으며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다음 과정으로 전진하는데, 필요한 도구로서 죽음을 두었던 것이었으나, 너희들은 과정과 과정 사이의 장치일 뿐이었던 죽음에 집착하게 되면서 두려움을 불러들였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너희들은 죽음의 포로들이 되고 말았던 것이란다.
죽음은 과정을 종료시키는 도구로 출발하였으나 인생의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좌지우지하는 형태로서 너희들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죽음으로 야기된 두려움은 너희들의 의식을 떨어뜨렸으며 우주의 기운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동맥경화(動脈硬化)가 걸린 것처럼 막히게 되었구나.
마음은 두려움이 들어서는 순간에 냉동된 것처럼 얼어버리고, 영과의 소통의 길 또한 폐쇄되어 버렸단다. 이렇게 너희들은 죽음 앞에 패배자들이 되어 좌절하였으니, 그 원인을 제거하고자 하는 의지마저도 꺾여버리고 말았단다.
죽음은 이렇게 영의세계와 물질세계를 이어주던 역할자에게 너희들을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하는 포악자로 군림하게 되었고, 너희들의 인생전반을 좌우하는 형국이 되었단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곳에서 헤어 나올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으며, 자포자기(自暴自棄) 하여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단다. 종교계에서는 인류들의 이런 마음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천국이나 극락을 이야기하며 종교를 세일(sale)하는데 열중한 결과가 지금의 너희들 세계라고 하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이야기할 때 늙으면 죽어야지, 병들면 죽어야지 하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막상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삶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떠나기를 회피하고 있단다. 살아있음이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다고 하면서도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너희들의 모습 속에서 이율배반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단다. 너희들은 늙지 않기 위해서, 또는 병들지 않기 위하여 최선들을 다하고 있는 것도 실상은 죽음을 멀어지게 하려는 자구책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한다 하여도 인류들 어느 누구든지 죽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란다. 그것을 늦추는 것조차도 지금의 기술과 솜씨로는 해결할 수 없음이란다. 너희들의 평생소원이 바로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물질계에 사로잡힌 너희들은 물질계가 영원하기를 바라고 있음이니, 헛된 욕심이라고 하는 것이란다. 모든 물질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유한성을 가지고 있으며 순환주기를 가지고 있어서 주기가 돌아오면 종료되었다가 다음주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하게 된단다. 그래서 하나의 주기가 종료될 때에 그곳에서 이용하였던 물질육체를 ‘죽음(death)’으로 벗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그 ‘죽음(death)’이라는 과정이 너희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된 것이란다.
'죽음(death)‘은 하나의 주기를 끝내게 해주는 통과의례일 뿐이란다. 이것을 통하여 너희들은 과정들 속에 준비된 여러 유형의 공부들을 하게 되는 것이고, 경험들을 체험하며 다음 과정으로 전진하는 것이란다. 이렇게 영체들(spiritual body)은 진화를 하면서 준비된 물질육체의 옷들을 상황에 따라 갈아 입어가면서 준비된 여정을 통과하는 것이란다.
‘두려움(fear)’은 여정 중에 배우는 과목이지만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많은 시간과 기간을 필요로 한단다. 그 중에서도 ‘죽음(death)’이라는 과목은 너희들을 힘들게 하고 배움의 기간 동안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란다. 과거 너희들은 육체를 벗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고 즐거운 축제로 여겼으며, 영체가 영의 세계로 돌아감을 축복했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때에 너희들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당당하게 임했으며 다시 환생하여 돌아온다는 것을 믿었었기에 추락하는 일은 결코 없었단다. 하지만 물질문명이 도래하고 돈이라고 하는 물질이 너희 인생들을 주관하게 되면서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단다.
이후부터 너희들은 ‘죽음(death)’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없게 되었으며, 담담하게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이란다. 우선 두려움이 앞섰고 회피하여 도망가려고만 하기 시작했단다. 그런 후부터 너희들은 죽음의 그림자에 온전하게 갇히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론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란다. 죽음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은 치기에 지나지 않았고, 어떤 것으로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란다. 수행과 수련도 벗어날 수 없었으며, 단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까지의 수준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었단다. 이것을 너희들은 해탈(解脫:deliverance)이나 열반(涅槃:nirvana)이라는 용어로 포장하여 사용하고 있다만 ‘죽음(death)’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란다.
단지 육체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이라는 과정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죽음조차도 뛰어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란다. 그러니 온전하게 두려움을 극복했다라고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란다. 너희들은 몇몇 역사에 기록된 죽지 않고 물질육체를 가지고 다른 세계로 들어간 존재들의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서 모든 인생들이 다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방법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수행방법들과 기도 방법들이 나오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 방법이라는 것이 쉬운 듯 하면서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던 것이란다. 방법을 찾아 공부하던 너희들은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하여도 두려움은 극복하게 되었으며, 평화로움을 되찾았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란다. 영체가 돌아가고 육체가 남겨짐을 슬퍼하지 않았으며,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니, 이것이 마음비우기가 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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