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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千人針 - 그 애끓는 女人의 恨

황령산산지기 2014. 12. 5. 12:07

 




千人針 - 그 애끓는 女人의 恨
      언제 만들어졌던지, 무슨 연유에서 비롯되었던지 간에 사람사는 세상에서 어버이 - 특히 어머니 - 를 두고 가지는 정서는 사람 사는 어떤 곳이든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땅이 있음으로서 하늘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어둠이 있기에 빛은 또 밝음으로서 자리를 잡으며 받아 키워 낼 터전이 있음으로 해서 뿌릴 씨앗은 소용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자리는 낮으나마 그것은 바탕이었고 어두웠으나 발산(發散)되는 것을 거두어 수습하는 도량이었으며 생명을 받아 키워내는 차마 숭고하고도 거룩한 기반이었다. 그러기에 그 자리는 기다림의 본능을 지니며 살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여린 탓에 때로는 인고(忍苦)의 한(恨)도 그것을 감수 할밖에 달리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밝고, 높고, 보다 편함을 어느 누군들 마다하랴만 '먼저 차지하려는 드셈의 자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 한(恨)과 바램〔希望〕이라는 숙명적 과제는 또 엄마라는 그들에게 숙명처럼, 운명처럼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 보다 더 사랑 받고,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삶의 기대를 품는 것이 서양적 관점에서 보는 여인들의 희망(Hope)이라면 봉건사회에서, 통제된 엄격 속의 동양 여인들의 그것은 또다른 바가 있었으니 희망(希望)이라는 글자 속에서 우리는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女人들의 한이 숨겨진 역사를 찾아 낼 수 있다. - 기다림의 恨 《바랄 망(望)》字는 亡과 月과 壬 - 이 세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亡」은 지금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月」은 한낮이 지난 뒤의 어스름이 깃든 달이니 그리워 할 시간마저 숨어 든 때를 말한다. *「壬」은 북쪽을 말함이니 먼 길 떠난 곳을 암시하는 방위이다. 따라서 「望」은 먼 길 떠난 님을 그리는 女人의 한(恨)을 담고 있는 글자이다. 그래서 님을 기다리다 선 채로 돌이 된 것을 일러 "望夫石"이라 하지 않던가..? - 떠나 보냄의 恨 【望】字가 먼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보기에 딱한 글자라면 【希】字는 자식을 품에서 떠나 보내려 하지 않은 힘 없는 엄마의 눈물겨운 몸부림으로서의 글자이다. 「希」자는 "爻"와 "巾" 이라는 두 글자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爻는 문자가 아니라 한땀한땀 바느질을 한 모양으로서의 부호이다. 그 밑에 붙여 쓴 「巾」은 "수건"의 뜻이 아니라 제부수 글자로서의 『바느질할 치(黹)』 字의 아랫부분을 빌려다 쓴 글자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인침(千人針)의 슬픈 역사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 자고나면 국가간의 싸움이 그치지 않던 때. 자식을 둔 엄마들의 노심초사는 위정자들의 야차같은 허욕에는 한 치도 감안될 리 없었고 오직 그 땅에서 빌 붙어 살 수밖에 처지라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전장터로 보내어주기는 하더라도 그저 다치지 말고 오라, 죽지만 말고 살아 돌아 오라 굶어 배고파 허기는 지지 않으려는지, 북풍한설에 추워 떨지는 않겠는지 그래서 해 줄 것이라고는 떠날 아들에게 옷 한 벌 지어 입히려는데 아무래도 혼자로서의 정성은 미치지 못할 듯 하여 동네방네 엄마들이라면 모든 엄마를 찾고자 다리 품 팔며 千名의 엄마들로부터 동냥 바느질을 얻어 지어 만든 옷이 천인침(千人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의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무림이었고 분신처럼 소중한 또 하나의 목숨에 대한 집착이었다. 천하의 어떤 권위도 함부로 침탈하지 못할 섭리의 보존본능이었음에도 그 시절의 엄마들은 그렇게들 살았다. 아내된 사람들의 所望 ! 엄마된 사람들의 希望 ! 그 속에서 역사는 흘러갔고 오늘은 그날 그 시절 그들이 염원한 열매로서 우리는 살고 있다. 차마 무겁고 가슴 아픈 그날, 그 여인들의 희망이 오늘에 결실 되었음을 애간장 쏟아 부어 키운 자식이었던 우리가 차마 잊고 산다면 그들의 한(恨)은 地下에서 아마도 아직 덜 풀린 매듭마냥, 그런 모양이지 않겠는가 ?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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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향기로운 세상
글쓴이 : 白 雲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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