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지바다는 '천년 사랑'을 기억할까

황령산산지기 2014. 11. 27. 08:36

낙조와 갯바위가 어우러진 태안의 해변

 

↑ 충남 태안의 꽃지해변에 위치한 할아비바위(왼쪽)와 할미바위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서해안 3대 낙조 중 하나인 꽃지해변은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2위를 차지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래 작은 사진들은 태안군청 공무원들이 지역 홍보를 위해 촬영한 작품이다. 박강섭 기자

↑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을 배경으로 한 낙조(위)와 오메가 현상을 연출하는 몽산포해변의 낙조. 박강섭 기자

↑ 등대와 어선, 그리고 해가 어울리는 만리포해변의 낙조(위)와 거북바위 실루엣이 멋스런 먼동해변의 낙조. 박강섭 기자

↑ 소분점도의 반영이 아름다운 학암포해변의 낙조(위)와 수면에 비친 소나무 반영이 이색적인 운여저수지의 낙조. 박강섭 기자

지아비 승언과 지어미 미도의 천년 사랑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다. 다시 바위로 태어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눈치 챈 때문일까. 황금빛 날개가 눈부신 갈매기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분주히 오가며 밀어를 전한다. 꽃지바다를 붉게 채색한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마지막 남은 한줄기 빛조차 허공 속에서 분해된다. 이어 하루 두 번씩 부부를 떼어놓은 꽃지바다가 원망스러운 듯 검은 바닷속으로 침잠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가 파도소리에 흐느낌을 실어 보낸다.

솔향 그윽한 충남 태안은 한반도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고장이다. 531㎞에 이르는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32개의 해변과 45개의 항·포구, 그리고 서해안에 흩뿌려진 119개의 보석 같은 섬 곳곳에서는 저녁마다 환상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날씨가 청명하고 수평선이 뚜렷하게 보이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이맘때면 수평선과 입맞춤을 하는 해가 불기둥 같은 장관을 연출한다.

태안반도가 품은 첫 번째 낙조 명소는 학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형상의 학암포이다. 분점도의 학바위를 축으로 W자형의 해변이 양쪽으로 펼쳐지는 학암포는 조선시대에 중국과 질그릇을 교역하던 무역항이었다. 한창 때는 수십 척의 무역선이 드나들던 항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학암포의 낙조 포인트는 썰물 때 해변과 연결되는 소분점도이다. 해송이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분점도는 물이 빠지면 주변 바다에 흩뿌려진 바위가 드러나 수중 산봉우리를 연상케 한다. 하늘과 바다를 붉게 채색한 낙조를 배경으로 소분점도를 비롯한 민어섬, 벗섬, 장구섬, 소리섬, 대뱅이, 여뱅이, 거먹뱅이, 수리뱅이, 꽃뱅이 등 이름조차 정겨운 태안의 섬과 바위가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학암포 남쪽에 위치한 먼동해변은 태안이 꼭꼭 숨겨놓은 비경 중 하나로 해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먼동해변은 아름다운 해안선과 갯바위가 어우러진 곳으로 본래 이름은 안뫼이다. 1993년 드라마 '먼동'이 촬영되면서 이름도 먼동해변으로 바뀌었고, 이후 '용의 눈물' '야망의 전설' '불멸의 이순신' 등이 먼동해변을 무대로 삼았다.

먼동해변을 대표하는 풍경은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린 거북바위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거북바위와 왼쪽의 삼각형 바위 사이로 해가 떨어지면서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해변을 따라 이동하면 거북바위 소나무 가지에 걸리는 붉은 해를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다. 먼동해변이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받는 이유는 해변을 비롯해 바다 건너편 구름포에 인공 구조물이 없기 때문이다.

태안의 낙조 중 가장 이색적인 풍경은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펼쳐진다. '한국의 사막'으로 불리는 신두리 해안사구는 길이 3.4㎞에 폭 500∼1300m로 바람과 모래, 그리고 시간이 빚은 모래언덕이다. 사구에는 어김없이 '바람의 땅'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운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붉은 모래언덕의 능선은 청과 적의 경계이자 명과 암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해가 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면 햇살에 젖은 모래언덕이 붉게 빛나고 반원 형태의 모래언덕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신두리 해안사구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모래언덕을 채색한 노을이 해당화처럼 붉게 빛나는 저녁 무렵이다.

만리포를 비롯해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에서 펼쳐지는 낙조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만리포해변은 대천, 변산과 함께 서해안 3대 해변으로 꼽힌다. 가요 '만리포 사랑'의 무대인 만리포해변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빨간 등대를 배경으로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는 어선이 수평선과 맞닿은 해 속으로 들어가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전복으로 유명한 파도리의 어은돌해변은 새끼섬을 거느린 도루섬 낙조가 유명하다. 해가 두 섬 사이로 떨어지면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와 갯가에서 바지락을 캐는 아낙도 붉게 물들어 풍경화의 주인공이 된다. 멀리 안흥 앞바다의 사자바위, 가의도, 정족도, 옹도 등 작은 섬들은 도루섬 낙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에 충실하다.

백사장항과 드로니항을 연결하는 250m 길이의 해상인도교 '대하랑꽃게랑'을 비롯해 꽃지해변과 방포해변을 잇는 꽃다리는 인공 구조물과 어우러진 낙조의 황홀미를 보여준다. 반면에 안면도 운여해변의 운여저수지와 방풍림이 연출하는 낙조는 강원도 삼척의 속섬 일출을 닮았다. 갈수기인 요즘은 운여저수지의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에 비친 방풍림의 반영이 여인의 눈썹처럼 아름답다.

태안 최고의 낙조는 안면도 꽃지해변의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배경으로 삼는다. 꽃지해변은 변산 채석강, 강화 석모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 명소로 손꼽히는 곳. 100m 정도 떨어진 두 개의 바위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가 시시각각 빚어내는 낙조는 한 편의 대하 드라마처럼 웅장하고 장엄하다. 2012년에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2위를 차지한 꽃지해변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굴이나 조개를 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로 불리는 30m 높이의 바위섬은 해상왕 장보고의 부하 승언 장군이 전쟁터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자 아내 미도가 죽어 망부석이 됐다는 순애보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기도 하다. 애달픈 전설 때문인지 검은 실루엣으로 침잠한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품은 꽃지해변의 하늘과 바다는 서럽도록 붉다.

서해안에서도 태안의 낙조는 자연이 빚은 최고의 풍경화이다.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포구로 돌아오던 어선 한 척이 오메가 모양의 해 속에 갇히고 갈매기들이 무시로 해 속을 드나들 때쯤 태안반도는 거친 질감의 유화로 거듭난다.

태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