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장인 구영국씨가 작업실인 분당의 황칠공예연구소에서 불상에 황칠을 바르고 있다. |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 과거와 현재는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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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 발췌 ]
지난 2012년 영종도 남쪽 영흥도 주변 수중 발굴 조사 현장입니다.
수심 10미터 아래에서 각종 도기가 엉겨 붙은 목재가 발견됐습니다.
인양해 조사한 결과, 길이 6미터, 폭 1.4미터 크기의 고대 선박의 일부로 판명됐습니다.
목재를 연결하는 방식이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 시대 선박과는 다르지만,
경주 안압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 배와는 유사했습니다.
통일신라시대 문양을 간직한 도기 병도 발견됐습니다.
도기 병 안에는 황갈색 내용물이 담겨 있었는데, 여전히 향기가 나는 상태였습니다.
문헌상으로 나오는 고급 갑옷이나 장식품에 칠했다는 도료, '황칠'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흥도선'으로 명명된 이 배는 8~9세기 통일신라의 교역선으로 추정됩니다.
SBS 2014.09.19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40919230606694
통일신라(남북국시대의 신라)의 배를 인양하는 모습
왼쪽 - 황칠이 들어있던 도기병
가운데 - 황칠이 굳은 조각들
오른쪽 - 그 황칠조각을 녹인 것
황칠 원액
1천년 이상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은은한 황칠의 향기를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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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2012년에 인천앞바다에서 발견된 통일신라(남북국시대의 신라) 배와 유물에 대한 보도인데요
황칠(黃漆) 예전에 경주에서도 발견되었죠.
2006년도에 경주에서 발견된 황칠 굳은 덩어리
http://www.busanilbo.com/news2000/html/2007/0220/060020070220.1025093905.html
한국에는 고대에 황칠(黃漆)이라는 외국에서도 유명한 칠(도료)이 있었습니다.
황칠나무에서 황칠이 나오는 모습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이라 하는데요
황칠나무는 전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산다 합니다.
제주도와 전남해안가에서만 발견된다 합니다.
예로부터 중국임금들이 한국에서 황칠을 많이 가져가서 사용했고
중국, 일본이 황칠을 얻으려고 한국의 황칠나무를 가져다 심었는데
모두 죽었다 하네요.
한국 외에서는 살지 못하나 봅니다.
고조선(마한)의 청동관 유물 복제품
사진출처 - http://cafe.daum.net/Dendropanax/Kph9/9?q=%C8%B2%C4%A5%20%B1%B8%BF%B5%B1%B9&re=1
황칠공예 구영국님 작품
이상 현대 황칠공예작품 중 몇점인데요
보시듯이 황칠은 단순한 황금빛만 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은은하고 오묘한 빛이 나서
옛날에는 진짜 금위에 다시 황칠을 하기도 했다 하네요.
황칠은 색깔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향기가 예로부터 안식향(安息香)이라 불릴만큼 좋다 합니다.
단지 향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안정시키고, 항암작용등 여러 많은 좋은 작용을 해서
황칠은 예로부터 약으로도 많이 쓰였고
지금도 약으로 먹는 식품으로 시중에 많이 나오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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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6년도에 경주에서 황칠이 발견되었을 당시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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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 전설의 황칠(黃漆) 찾았다
황칠공예가 구영국씨가 사극의 소품으로 쓸 갑옷에 황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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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금빛 천연도료로 알려진 1,000년 전 황칠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경주의 황남동 신라제사(祭祀) 유적에서
흙 그릇에 담긴 채 발견된 유기물 덩어리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 맡겨 성분분석을 한 결과 황칠로 확인됐다고 8일 발표했다.
보존과학실의 연구에 따르면 이 물질은 전남 해남에서 자라고 있는 황칠나무의 황칠과 성분이 똑같고,
해남과 완도 산 황칠에만 들어있는 베타 셀리넨 성분도 검출됐다.
황칠은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나는 신비의 물질로 고대로부터 중국까지 널리 알려졌고 여러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으나 정작 국내에는 확인된 황칠 유물이 없고 황칠 공예의 전승도 끊긴 상태다.
황칠은 황칠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서 뽑아낸 수액을 정제한 것으로, 니스나 래커처럼 투명하면서도 한 번 칠 하면 수백 년 이상 은은한 금빛을 잃지 않는 천연 도료다.
그 빛깔이 몹시 아름다울 뿐 아니라 나무나 쇠에 칠하면 좀과 녹이 슬지 않고 열에도 강해 ‘옻칠 천 년, 황칠 만 년’으로 통한다.
그러나 ‘아름드리 나무에서 겨우 한 잔 넘칠 정도’(다산 정약용의 시 ‘황칠’에서) 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것이라, 궁중 물품에나 쓰였다.
삼국시대에는 철제 투구나 갑옷, 화살촉 등에 발랐고, 고려 시대 왕의 용포나 용상 등에도 쓰였다고 전한다.
다산의 ‘황칠’ 시는 황칠을 바치라는 왕실의 지나친 공납 요구에 시달린 나머지 백성들이 황칠나무를 베어버렸다는 대목도 있다.
황칠은 중국이 탐낸 물품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무왕 조에는 백제가 당에 고구려를 제어해달라며 황칠 갑옷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중국의 북송시대 문헌인 <책부원구>은 당 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의전용 갑옷에 입힐 금칠을 요청했다고 적고 있다.
베이징의 자금성 내부를 치장한 금빛도 한국산 황칠로 알려져 있다.
오랜 세월 맥이 끊겼던 황칠은 90년대 초 전남 해남의 해안가에서 황칠나무가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면서 최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천연도료로서 황칠의 탁월함 뿐 아니라 항암성분 등 다양한 약리작용까지 밝혀짐에 따라 전남도는 지난해부터 황칠 산업화에 나섰다. 그러나 황칠로 제작된 유물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황칠공예의 맥을 되살리는 일을 해온 황칠공예가 구영국(47)씨는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인이 황칠나무 잎만 따도 잡아간다고 했던 것으로 보아 한국의 황칠이 그때 일본으로 많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는 “황칠의 특성으로 보아 황칠 유물이 국내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법 한데, 박물관의 수장고 등을 뒤져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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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2/h20070208211411843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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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2005-04-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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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사진출처 - 디시인사이드 ]
얼어붙은 땅을 뚫고 피는 복록수명초 (한국야생화)
일하는 신성함
아빠와 아이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바다를 꿈꾼다. - 강화도
한방울 물의 소중함을 모르는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변산바람꽃 (한국야생화)
꽃무릇
조국을 위해 누군가 꽃다운 청춘을 바친 계곡.
그 사람들을 위안하듯 꽃이 또 핀다.
대한민국은 산자만의 것이 아니다.
고진감래
삶의 무게에 휘청거려도
의미없는 고생은 없는 법.
[ 영원(永遠)에 합당(合當)한 삶을 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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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한국혼(韓國魂)
[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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