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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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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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아시는 미당 서정주의 자화상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하여 민족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미당 서정주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 출생이니 30세까지의 젊은 시절을 일제치하에서 보냈습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종인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자식들에게도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인 종의 신분 뿐만이 아니라
나라(국가)도 일제의 식민지였으니 더욱 처참한 이야기라 할 것입니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미당 서정주는 그가 23세가 되기까지 그를 키운 것이 바람(시련, 고통)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또한 '바라는 것' 즉 꿈을 의미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지없이 찬란했던 것으로 자꾸 드러나는 한민족의 상고시대가 지나가고
언제부터인가 역으로 한민족이 중국에 사대한 기간도 꽤 길었지만
나라 자체가 망한 적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에 한민족 임금이 없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어이없게도 일제 때 한국은 역사상 최초로 나라 자체가 망해버리는데
'애비는 종이었다.'를 넘어서
당시 민족 자체가 '일제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쓰라린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민족이 수십년간의 '일제강점기'라는 시련을 겪은 것은
지나놓고 보니 전화위복으로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 강한 독립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시련에 꺽이지 않고 그것을 극복해 내면 더욱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시련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 시련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개인, 민족의 앞날이 달라지겠죠.
미당 서정주는 한국적인 정서를 잘 표현한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
그는 치명적 잘못을 해버립니다.
일제 말기에 그는 친일글들을 씁니다.
( 위 시 자화상은 그가 친일글들을 쓰기 이전에 쓴 시입니다.)
후에 해방이 되고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친일글들을 썼나.
언젠가 그는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합니다.
" 일제가 그렇게 금방 망할 줄 알았더라면 몇년간 어디 도망이라도 가서 숨어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분위기가 일제가 최소한 수백년은 더 한국을 식민통치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보았다.
그래서 죽지 못해 그런 글들을 썼다."
( 언론기사 참조)
일제의 압박으로 죽거나 그런 글을 쓰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상황이었고
죽지 못하고 그런 글들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미당 서정주는 해방 후에도 평생을 자신의 그러한 잘못 때문에 가슴에 못이 박혀 살았다 합니다.
일제의 강압때문이었다고는 해도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위는 역사에도 남을 것이니
그 자신의 마음의 괴로움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 후손들의 마음의 괴로움도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반면 만해 한용운 선생은 [3.1 운동 대표자] 신분으로 일제의 재판을 받았는데
일본인 판사가 " 앞으로도 계속 독립운동을 하겠느냐" 고 묻자
대답하기를
" 나는 죽어서 영혼이 되어서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합니다.
" 나를 죽이려면 죽여라. 나는 죽어 영혼이 되어서도 계속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는 얘기지요.
이를 보아도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위를 비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비자발적인 것이었다 해도.
일제가 아무리 위협하더라도 그는 좀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소신을 지켰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는 별개로 미당 서정주의 시 중에는 한국의 정서를 잘 표현한 시들 많습니다.
이는 한국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평가 할 때 그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하듯이
사람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맛있게 잘익은 사과(애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과의 일부가 벌레 먹어서 썩었습니다.
그 사과를 통째로 버릴 것인가
아니면 썩은 곳을 잘라내고 먹을 것인가.
미당 서정주의 친일행위 사실은 벌레먹은 곳이라 하겠는데
그렇다고 그의 모든 작품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죠.
음악가던 미술가던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한 것은 인정해 주고 그것을 세상을 위해서 적절히 써야 할 것이며
잘못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저렇게 하면 안되지 하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잘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 모든 것이 잘한 것은 아니며
일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한 모든 것이 잘못한 것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남이 잘한 것은 배우고 잘못한 것은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는 것
잘한 것, 잘못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참으로 중요한 마음의 자세라고 봅니다.
별볼일 없는 야산에도 산삼이 있을 수 있으며
금강산, 백두산에도 독버섯은 있으니까요.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명산(名山)에서도 온통 잡목, 잡풀만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마음의 눈이 밝으면 야산에서도 오묘하고 신비한 생명의 아름다움이 보이겠지요.
친일행위를 한 분들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조국을 위해서 지극히 헌신하여 그 성의가 하늘에 닿는다면 결국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보지만
어떤 사람이 그 선조가 일제에 빌붙어 매국한 댓가로 일제로부터 받은 거액의 돈을 다시 찾겠다고 재판 걸고 그런일이 있다면 이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겠지요.
사람이 일부가 썩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썩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썩은 것을 반성하지 않고 계속 더욱 썩어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문제일 것입니다.
나라(국가)도 마찬가지겠지요.
감사합니다.
한국 동해안 어느 곳의 아침
구름이 가린다고 태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련이 닥친다고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 터.
이상 한국의 궁궐 사진들
이상 4장 - 매화마름 (한국야생화)
[남한산성에서]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
[ 이상 다 퍼온 사진들 : 출처 - 디시인사이드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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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의 정신은 [사해동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민족, 다른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공연히 배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다이나믹 코리아, 게이트웨이 투 더 월드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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