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단군고기(檀君古記)

황령산산지기 2010. 4. 18. 12:16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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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 / 평안도 / 평양부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ection.jsp?mTree=0&id=kda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 환인(上帝桓因)께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셨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시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이 비서갑 하백(非西岬河伯)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夫婁)이다.

이를 곧 동부여 왕(東扶餘王)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요(唐堯 - 요임금)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禹)임금의 도산(塗山) 모임에, 태자(太子) 부루(夫婁)를 보내어 참가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 지 1천 38년 만인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신(神)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文化縣) 구월산(九月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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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 皆檀君之理。 檀君聘娶非西岬河伯之女生子, 曰夫婁, 是謂東扶餘王。 檀君唐堯同日而立, 至塗山, 遣太子夫婁朝焉。 享國一千三十八年, 至殷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爲神, 今文化縣九月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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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처럼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에 단군고기(檀君古記)》를 인용하여

환인임금, 환웅임금, 단군임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와 그 내용이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조선 세종 때까지는 단군고기(檀君古記)》라는 책이 있었다는 얘기고

조선왕조실록에 공식적으로 인용될 정도로 공인을 받았다는 얘기.

 

삼국유사는 위서(魏書)와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임금에 대한 기록을 전했는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기(古記)의 내용과 조선왕조실록이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의 내용이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그 세부적 내용은 다른 점도 상당히 있다.

 

즉 그 두 책은 서로 다른 책이라 하겠고

단군임금에 대한 기록은 여러 책이 있었다 하겠다.

 

그런데 실록이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는 지금은 왜 전해지지 않나.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심한 사대주의 풍조 때문에 유교에 대한 책 이외에는 

전부 다 사문난적이라하여 사악한 책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고

한국의 뿌리를 찾는 일이 무시당하는 면이 너무 컸기 때문.

 

심지어 중국의 뜻에 의하여 조선 조정은 여러차례 전국에 명을 내려서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 고대사서들을 거두어 들인다.

 

이는 조선을 더욱 속국으로 만들고자했던 중국 권력층이

한국민의 뿌리에 대한 기록을 모두 없애고자 했던 것.

 

한국고대사서는 한국과 일본에 아직도 많다?! <- 관련글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이

조선 때는 그랬고 일제 때는 또 일제에 의해서 한국고대사서들이 강탈당했다 해도

해방후 수십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삼국유사와는 다른 《단군고기(檀君古記)》를 인용한

이 실록의 기록이 왜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학술적으로도 다른 두 기록이 나올 때 그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비교 분석하면서 

진실에 더욱 접근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왜 실록의 《단군고기(檀君古記)》내용은 세상에 이토록 알려지지 않고 있단 말인가.

 

위 기록의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의 부분은 

단군왕검께서 각 한민족 소국들의 마음을 얻어서

[고조선 연방]을 세우신 것을 표현한 기록으로 본다.

 

[고조선 연방]의 중앙 정부가 각 지역 지도자들에게 보낸 것이 바로

비파형 동검

 

[비파형 동검]은 한반도와 만주-북경 지역에서 두루 출토된다. 

 

앞으로 중국 동해안 지역에서도 많이 출토될 것으로 본다.

 

[밝은 앞날 되시기를][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출처 : 한국고대사
글쓴이 : 高百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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