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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법에 걸린 마법사 멀린 2003.10.1.

황령산산지기 2007. 2. 1. 11:22


번존스, 멀린1

기만당하는 멀린 The Beguiling of Merlin (1874)
by 번 존스 Sir Edward Burne-Jones (1833-1898)
캔버스에 유채, 186.2 x 110.5 cm, 레이디 리버 미술관, 리버풀


    바이어트 Antonia Susan Byatt 의 "소유 Possession (1990)" 라는 소설을 읽어보셨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에 나왔고 절판된 후 최근에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더군요. 평도 좋았고 작년에는 귀네스 펠트로우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으로 아는데... 사실 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 그런데도 왜 그 소설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그 책의 표지 그림이 바로 번 존스의 "기만당하는 멀린"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느 서점에서 그 책을 보고, 표지 그림과 "소유"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요....

    이 그림은 아서왕 전설 Arturian Legends 에서 마법사이자 왕의 조언자인 멀린 Merlin 이 그의 연인인 호수의 여주인 Lady of the Lake 니무에 Nimue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의 탁월한 마법으로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곳에 영원히 갇히게 되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전설이 늘 그렇듯이 이 이야기도 전해지는 문헌에 따라 약간씩 다릅니다. 공통된 것은 멀린이 니무에를 맹목적으로 사랑했고, 니무에는 멀린의 사랑을 이용해 그에게서 최고 경지의 마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마법을 이용해 멀린을 가두어버린 것이지요.

    문헌에 따라 다른 것은 니무에가 멀린을 감금한 구체적인 이유와 방법입니다. 아서왕 전설의 집대성인 토머스 맬러리 경 Sir Thomas Malory (1408-1471) 의 "아서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 (1470년 경 완성)" 에 따르면 멀린이 그녀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였고 이것에 진절머리가 난 니무에가 그를 바위 밑으로 유인해 마법으로 봉인해 버렸다고 합니다. 반면에 보론 Robert de Boron 의 "멀린 Merlin (1200년)" 에 따르면 그녀가 멀린을 독점하고자 공기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법의 궁전을 짓고 그 안에 멀린을 가두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었든지 멀린 또는 니무에의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니무에의 지식과 능력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초래한 일이었기에 이 장면을 다룬 번 존스의 그림은 그런 면에서 "소유"라는 제목의 소설과 어울리지요. 


헬러, 멀린2
◀ 멀린 Merlin (1990)
by 헬러 Julek Heller (1828 - 1905)
1990년 영국에서 출판된
"아서왕과 그의 기사들" 일러스트레이션


    아서왕 전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도 마법사 멀린의 이름이나 그의 이미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톨킨 J. R. R. Tolkien (1892-1973)의 "반지의 제왕 Lord of the Rings (1954-1955)"에 나오는 간달프 Gandalf 나 롤링 J. K. Rowling 의 "해리 포터 Harry Potter" 시리즈에 나오는 덤블도어 Dumbledore 처럼 현대의 판타지에도 자주 등장하는 오랜 연륜과 지혜를 갖춘 스승이자 조언자로서의 마법사의 이미지는 몇 세대에 걸쳐 브린튼 왕들을 도왔던 멀린에 그 원형을 두고 있지요.

    그러나 이런 고정된 이미지보다 보론의 "멀린"이나 제프리 Geoffrey of Monmouth 의 "멀린의 생애 Vita Merlini (1150)" 같은 옛 문헌들에 나타나는 멀린의 모습은 한층 복합적입니다. 이런 문헌들에서 멀린은 패기 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광기 들린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며, 니무에와의 이야기에서처럼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는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지요.

    멀린은 출생부터 특이한데, 제프리의 "브리튼 왕들의 역사 Historia regum Britanniae (1137)"와 보론의 "멀린"에 따르면 그는 수녀인 어머니와 악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멀린의 어머니는 저주받은 집안의 딸이었죠. 악마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수녀가 되었지만 그 악마는 인큐부스(37호 인큐부스를 참고하세요.)로서 잠든 그녀를 범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멀린을 잉태했는데, 악마는 자신의 아들을 세계를 파멸시킬 "적그리스도(Antichrist)"로 삼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돕던 사제가 멀린이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게 했기 때문에 악마가 손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멀린의 몸에는 악마에게서 물려받은 마력이 깃들여 있어 그가 최강의 마법사가 된 것이지요.

    멀린이 아직 소년일 때, 브리튼의 왕인 보티전 King Vortigern 은 색슨족과의 전투에서 영토 대부분을 잃은 후 단단한 요새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을 조금 세우고 나면 다음날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지요. 원로들이 왕에게 조언하기를 아비 없이 태어난 아이를 찾아 그 아이의 피를 회반죽에 섞어 요새를 지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아이로서 멀린이 끌려오게 되었는데, 소년은 태연하게 원로들의 말을 반박하고 요새가 자꾸 무너지는 것은 그 지반 밑에 물이 괴어 있고 거기 사는 두 마리의 용이 늘 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왕이 소년의 말을 받아들여 땅을 파보게 하자 과연 두 마리의 용이 뛰쳐나왔는데, 하나는 붉은 용이고 하나는 흰 용이었습니다. 두 용은 다시 격렬하게 싸웠고 붉은 용이 흰 용을 죽였습니다. 멀린은 붉은 용은 브리튼족이고 흰 용은 색슨족이라고 설명했지요. 또는 보티전이 왕위 찬탈자였는데, 흰 용은 보티전이고 붉은 용은 본래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들 - 아서왕의 아버지인 유서 Uther 와 그의 형 아우렐리우스 Aurelius - 라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보티전 다음 왕은 아우렐리우스였는데, 이 왕의 치하에서 멀린의 지휘로 솔즈버리 평원에 스톤헨지 Stonehenge 가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들은 스톤헨지가 멀린의 전설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던 유적이라고 하지요. 어쨌든, 어느 날 밤 멀린은 유서와 함께 용의 형상을 한 혜성을 보게 되고, 멀린은 이것이 유서의 형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했으며 이제 유서가 왕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용은 유서의 왕권의 상징이 되었고 멀린은 그에게 펜드래곤 Pendreagon 이라는 칭호를 줍니다.

    후에 멀린은 전에 25호 칼럼 아서왕의 명검 엑스칼리버에서 이야기한 대로 유서가 자신의 적인 골로이스 Gorlois 의 모습으로 변해 그의 아내 이그레인 Igraine 과 동침하도록 돕습니다. 이때 이그레인은 아서를 잉태하게 되고 그사이 골로이스는 전투에서 죽음을 맞아 유서는 곧 이그레인과 결혼합니다.

     아서가 태어나자, 멀린은 유서에게 나타나, 그가 이그레인과 동침하도록 도운 대가로 아서를 줄 것을 요구하고, 아서를 데려가 다른 기사에게 맡겨 키우도록 합니다. 그리고 유서가 전투 도중 죽은 후 아서가 돌에 박힌 검 엑스칼리버 Excalibur 를 뽑아 왕위에 오르도록 돕습니다. 멀린은 아서왕의 첫 전투에서 엑스칼리버를 사용해 이기는 법을 알려주고, 아서가 펠리노 왕 King Pellinor 과의 싸움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하고 부러진 엑스칼리버 대신 새로운 엑스칼리버를 호수의 여주인(니무에가 아닌 다른 호수의 여주인)으로부터 얻도록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러 왕들을 도왔던 멀린의 통찰력과 예지력도 그가 니무에에 의헤 영원히 감금될 불운을 막아주지는 못한 셈이지요.

카우퍼, 니무에
호수의 아가씨 니무에, 마법사 (1924) ▶
The Damsel of the Lake, Called Nimüe the Enchantress
by 카우퍼 Frank Cadogan Cowper (1877-1958)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니무에는 비비안(Viviane, Vivien)이라고도 하는데, 켈트 신화의 이계異界 Otherworld 인 호수의 여주인으로서 요정과 비슷한 존재라고도 하고 프랑스 브루타뉴 지방의 나라의 공주라고도 합니다. 그녀는 아서왕에게 엑스칼리버를 준 호수의 여주인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맬러리의 "아서왕의 죽음"대로라면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사랑을 이용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자 상대방을 떠나버리는 잔인하고 냉혹한 야심가이죠. 또 보론의 "멀린"대로라면 그녀는 연인의 힘을 빼앗고 자신에게 철저히 의지하도록 만드는 지배욕이 강한 폭군이죠.

    그러나 니무에는 다른 이야기들에 나오는 핌므 파탈 Femme Fatale 과는 다릅니다. 이런 여인들은 대개 모든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고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되지만. 니무에는 멀린의 뒤를 이어 아서왕의 조언자가 되어 여러 차례 위기에 빠진 왕을 돕습니다. 아서왕의 의붓 누이인 모건 Morgan le Fay 이 아서왕의 검 엑스칼리버를 훔쳐 애콜론 Accolon of Gaul 에게 주고 아서왕의 살해를 꽈했을 때, 니무에는 마법으로 애콜론이 엑스칼리버를 떨어뜨리게 만들어 아서왕을 구합니다.

    또 모건이 다시 아서왕을 죽일 음모로, 화해의 표시라면서 시녀를 통해 아름다운 망토를 보냈을 때 니무에는 망토를 입지 말라고 왕에게 조언합니다. 아서왕은 그 시녀에게 먼저 망토를 입어보게 하고, 그녀는 망토를 걸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불타 재가 되어버리죠. 그리고 니무에는 아서왕이 마지막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때 그를 애벌론 Avalon 으로 옮긴 세 명의 여인들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니무에는 또 자신의 호수에서 어린 랜슬롯 Lancelot 을 양육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랜슬롯은 호수의 랜슬롯 Lancelot of the Lake 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이처럼 니무에 또한 복합적인 면모의 여인입니다.


번존스, 멀린2

멀린과 니무에 Merlin and Nimue (1874)
by 번 존스 Sir Edward Burne-Jones (British, 1833-1861)
수채, 25.25 x 20 inch,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 런던


    니무에가 사냥을 하러 왔다가 아서왕의 성 캐멀롯 Camelot 에 들렀을 때 멀린은 니무에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아서왕의 죽음"에는 이렇게 쓰여있죠.

    멀린은 그녀를 한시도 내버려두지 않고 언제나 함께 있으려 했다. 그녀 역시 그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그에게서 배우기 전까지는. 그리고 어느 날 멀린은 아서왕에게 자신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자신의 모든 마술에도 불구하고 곧 땅에 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왕에게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을 알려주었다. (중략) 아, 왕이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계시니 마술로 닥쳐올 불운을 막으시지요. 아니오, 멀린은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멀린은 왕의 곁을 떠났다. 얼마 후 호수의 아가씨는 길을 떠났고 멀린은 그녀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갔다.

    여행 중에 멀린과 니무에는 반왕 King Ban 과 일레인 왕비 Queen Elaine 를 만나게 되고 그들의 갓난아기인 랜슬롯을 보게 됩니다. 멀린은 이 아이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지요. 이것이 인연이 되어 니무에가 반왕이 죽은 후 어린 랜슬롯을 양육하게 됩니다.

    멀린과 니무에는 여행을 계속했고 멀린은 그녀에게 많은 마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멀린이 늘 옆에 있기를 고집하는 바람에 니무에는 그가 지겨워졌고 그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녀는 멀린이 악마의 아들이라서도 두려워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멀린과 니무에가 어느 숲에 이르렀을 때 그는 그녀에게 신비한 바위 밑의 동굴과 그것을 봉인하는 마법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그녀는 멀린에게 바위 밑으로 가서 대리석들을 보여달라고 해서 그를 내려보냅니다. 그리고는 마법을 걸어 그가 어떤 마법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도록 만든 다음 떠나버리죠

    멀린은 그의 통찰력으로 니무에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의 예지력으로 그녀가 그의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에 대한 정열을 제어힐 수 없었죠. 어떻게 보면 지극히 순수하고 어떻게 보면 정말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독자님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게시판에 올려주신 격려 말씀들 하나하나 참 감사히 읽었습니다.
앞으론 자주 뵙지요! 그럼...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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