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

군을 흔들지 말라

황령산산지기 2006. 3. 26. 16:13
며칠 전 군복무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를 찾아가 그의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그의 사무실 근처를 지나가다 말고 문득 그가 떠오르면 스스럼없이 찾곤 한다.
만나 봐야 고초와 질곡을 같이했던 군 시절 얘기로 어린애들처럼 낄낄 웃기나 하고 차 한잔 마시고 작별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도 그를 만나는 것은 즐겁고 보람된 일로만 기억된다. 일선의 전방부대에서 연탄난로를 껴안고 마주앉아 할 말 못할 말 가릴 것 없이 거리낌 없이 나누고, 한솥밥을 퍼서 눈 힐끔거리며 게걸스럽게 먹고, 좁은 침상에서 서로 부대끼며 잠자고, 얼음장을 깨어 마른 목을 축이던 젊은 시절의 추억이 이토록 오래도록 끈끈한 정으로 남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것이 심각한, 어쩌면 치명적이기도 한 정서적 결핍 상태를 겪고 있는 이 황폐화된 세상에선 너무나 소중한 것이란 생각을 했었기에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군대란 자원해서라도 갔다와야 한다고 강변해 왔었다.

그런 군대가 요즘에 이르러 전통적인 정체성이 침해되거나 훼손되는 일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 군대뿐만 아니라, 국경선이나 치안 상의 긴장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느 나라 군대라 할지라도 변해서는 안 될 불변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결연한 각오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겪고 있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나라에 대한 충성심 한가진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나라와 군대의 명예를 지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조금이라도 의심받게 되거나 손상을 입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군대는 곧장 그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릴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이런 군의 정체성들이 군대 내부의 어긋남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당리당략에 의해, 혹은 개인의 정치적 명분 세우기나 이해득실에 따라 방해되거나 교란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어 염려스러운 것이다. 결코 발설해서는 안 될 군사기밀을 공개한 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참으로 국방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는 개탄을 쏟아냄 직하다.

한쪽에선 군이 가지는 본연의 임무 이외에 당의 이념에 걸맞은 행동과 정신무장을 요구하는가 하면,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것조차 안중에 없는 듯하다. 한쪽에선 군대가 내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핀잔하고, 다른 한쪽에선 군대의 목소리는 클수록 좋다고 부추겨서 도대체 군대가 어떤 목소리를 가져야 하고, 어떤 이념적 패러다임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쓰디쓴 입맛을 다셔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군대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들이 뒤틀린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전혀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측면에도 염려스러움이 있다.

과거 70년대나 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군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고정관념으로 깔려 있다. 그들은 자신 혹은 그 세대가 겪었던 군 생활의 경험만을 통해 군대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신문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군과 관련된 기사가 나면 그들이 가진 고정관념의 틀에서 분석하려 든다.

어째서 군대를 군대 자신이 가져야 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하게 자신의 정치적 이해 득실에 따라, 혹은 고정관념의 틀로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고 있는가. 지금은 군대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도록 도와 주고, 또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려는 노력을 조용히 지켜봐야 할 때다.

김주영소설가